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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속의 한국문화답사 - 고분시대의 한일문화교류

전방후원분 축조, 한반도에서 鐵·馬 전래 되면서 가능
고대일본 목간에서 백제군·백제부 명칭도 볼 수 있어
아스카박물관 첫번째 마주하는 것도 한반도 도래유물
오사카 나니와, 한반도 문화 등 유입됐던 지리적 길목

  • 웹출고시간2015.09.03 15:36:46
  • 최종수정2015.09.03 15:36:50

오사카에 위치한 '가까운 아스카박물관(近つ飛鳥博物館)'

[충북일보] 3세기 중엽이후 일관되게 나라분지의 야마도에 축조된 왜국왕묘(倭國王墓)가 4세기말엽 이후 오사카평야의 이즈미(和泉)의 모즈(百舌鳥)와 가와치(河內)의 후루이치(古市)에 축조되었다는 것은 3세기 중엽부터 4세기 후반에 걸쳐서 나라에 건설된 왜국의 왕묘가 4세기 말엽 오사카평야 남부로 이동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고사기(古事記)』ㆍ『일본서기(日本書紀)』가 말하는 일본의 왕권이 '만세일계(萬世一系)'였다는 사실과 배치된다. 고분은 어디까지나 그 정치세력의 본거지에 만들어지는 것이고 오사카평야 남부에 대왕묘가 축조되었다고 하는 것은 오사카남부의 세력이 왕권을 장악하였다는 것을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모즈고분군의 닌토구(仁德)릉이 위치한 사카이시나 나니와(難波)는 나라의 야마토정권의 해외창구, 즉 주로 한반도를 통해 유입되는 문화ㆍ정보유입의 창구였다. 왜왕은 하카타를 거쳐 사카이나 나니와를 출입하는 외교사절을 통해 국제정세의 정보를 독점하고 중국왕조의 책봉을 받는 것에 의해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 했다.

또한 주로 한반도를 통해 유입되는 선진문물을 독점하여 그것을 나눠주는 것을 통해 그 권위를 획득하였다. 3세기 중엽이후 일관되게 나라분지의 야마도에 축조된 왜국왕묘(倭國王墓)가 4세기말엽 이후 이즈미의 모즈고분군, 특히 사카이시에 일본 최대규모의 닌토구릉이 축조되었다는 것은 한반도를 통해 유입되는 선진문물이 모이는 항시(港市)의 정치권력이 주변지역을 지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횡혈식석실묘, 우측 세번째가 필자

5세기 단계의 왜국왕묘가 이즈미의 모즈고분군과 카와치의 후루이치고분군으로 나뉘어져 축조된 것도 주목된다. 후루이치고분군은 나라에서 오사카평야로 나아가는 협곡의 요충에 위치하고, 모즈고분군은 서쪽의 사카이의 항진(港津)을 바라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카와치(河內)와 이즈미(和泉)의 세력이 3-4세기 이래 야마도(大和)에서 카와치(河內)를 거쳐 이즈미(和泉)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교역ㆍ교섭의 실무를 담당하는 세력이었던 것과 관계가 깊다.

이들 두 세력이 연합해서 야마도세력에 대신해서 왕권을 장악하였을 것이고, 적어도 5세기의 전반에서 중엽에 이르는 단계에는 카와치와 이즈미에 있는 2개의 왕가(王家)가 각각 교체해서 왜국왕의 지위를 누렸을 것이다.

'가까운 아스카박물관(近つ飛鳥博物館)'은 1994년 오사카부립박물관으로 개관되었다. 이 박물관은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까운 아스카박물관(近つ飛鳥博物館)'에 전시돼 있는 가야계 갑주와 금동신발

닌토쿠릉의 웅장한 스케일을 형상화한 것으로 유명한 이 건축물에는 카와치와 이즈미의 고분군에 대한 설명과 고분출토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금동말안장, 가야계갑주, 금동신발, 스에키 등의 도래유물을 맞이하게 된다.

건립 당시 '가까운 아스카박물관'의 초대 관장은 오오바오사모(大庭脩)였다. 1960년대에 교토대학인문과학연구소에서는 모리시카죠우(森鹿三)을 중심으로 한 거연한간공동연구반(居延漢簡共同硏究班)이 조직되어 일본에서의 목간연구가 시작되었는데, 이 시기에 탁월한 연구업적을 낸 연구자가 오오바오사모(大庭脩), 나가다히데마사(永田英正) 등이었다.

일본에서는 박물관장은 대체로 학계의 권위자가 임명이 되고 한국과 달리 지위도 매우 높다. 주로 고분시대를 주제로 한 '가까운 아스카박물관'에도 아스카와 헤이죠코 일대에서 수습된 목간이 이처럼 정성스럽게 전시되어 있는 것은 '가까운 아스카박물관'의 초대 박물관장였던 오오바오사모가 목간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점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두 번째 목간에 백제군(百濟郡), 백제부(百濟部)의 명칭이 보인다.

일본의 박물관에는 흔히 목간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일본의 목간연구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길고 연구 수준이 높은 점과도 관련이 있다 하겠다. '가까운 아스카박물관'에 전시된 목간은 7세기에서 9세기경에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그 내용과 형식은 습자용 천자문, 운송업무기록, 하찰 등이고 백제라는 지명이 기록된 목간도 보이고 있다.

박물관 앞의 야산은 수많은 횡혈식석실묘가 즐비한 야외박물관이다. 5세기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해 사람과 기술이 일본열도로 빈번하게 유입이 되어 여러 분야에서 기술혁신이 발생하였다.

그 기술 중의 하나가 스에키(須惠器)로 스에키는 경사지에 반지하의 터널식의 가마에서 1,000도 이상에서 구운 토기로 짙은 회색을 띠며 내구성이 우수한 특징을 보여준다. 스에키를 굽는 가마는 연료를 넣는 입구, 연료를 태우는 연료부, 제품을 두는 곳, 연기가 나오는 곳 등으로 구분되었다.

박물관의 지하밑바닥에는 닌토쿠릉 모형도가 나오고 모형도를 따라 내려가면 일본 고분을 장식하는 토우인 하니와의 전시가 압권을 이룬다. 인물모양의 하니와는 장례의식 때의 인물들을 보여주는 장례풍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까운 아스카박물관(近つ飛鳥博物館)'에 전시돼 있는 말과 마구로, 역시 한반도 도래계 유물이다.

4세기말에서 5세기경의 고분이 집중된 오사카지역의 고분에서는 가야제 철제갑옷과 마구 등이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일본 고분시대의 철과 도기는 가야와 백제의 도래인에 의해 왜가 개명되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일본열도에서 이런 방대한 규모의 전방후원분은 한반도로부터 유입된 엄청난 재화, 특히 철과 말이 전래되면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일본이 자랑하는 거대한 고분시대는 비와호(琵琶湖)ㆍ요도가와(淀川)ㆍ오사카만(大阪灣)에 이르는 도래인 집단의 힘을 그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전방후원분은 영산강 유역에서도 14기가 발견되었다. 국내 학계에서는 고대 한반도의 선진 문화가 일방적으로 일본열도에 전해진 것은 물론 열도의 모든 문화가 한반도에서 기원한다는 인식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열도에서 자체 진화하여 성립된 전방후원분을 한반도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양 지역 간 문물과 사람의 이동을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의 일방적인 흐름으로만 볼 수는 없다. 문물과 사람의 이동은 일방통행이 아닌 어느 정도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 임병덕(충북대 사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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