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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두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

우연히 지나치다 오래전 내가 살던 집을 발견했을 때 순간 낯설게 느껴지는 묘한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집들과 상가들 사이, 그 거리와 골목, 골목안의 풍경들이 그대로 일 때 추억의 단상들이 슬라이드처럼 흐릿하게 떠오르며 일상 속에서 순간적으로 익숙한 낯설음을 경험하게 된다. 오래된 구도심 한가운데 아직도 그 자리에 용케도 헐리지 않고 자리하고 있는 집들, 그것도 차를 타고 움직이며 우연하게 마주치는 내가 살던 집, 이제는 누가 사는지, 집안의 모습도 예전 그대로인지 스치듯 지나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머니는 오래된 집에 살고 계신다. 아흔이 넘으신 시어머니와 잔소리 많은 아버지를 모시고 그 집에서 오래도 사셨다. 좀 더 편안하고 깨끗한 곳으로 이제는 이사 가자고 해도 어머니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직은 자식들의 생활이 불안하신지 그곳에서 좀 더 살아야 한다고 하신다. 이제는 예전처럼 부지런하게 살림을 모두 살피시지 못해 먼지 쌓인 선반이며 제대로 닫히지 않는 현관문, 오래된 주전자와 식기, 먼지 쌓인 피아노와 장롱 위 치우지 않은 박스들, 추운 화장실, 창고같이 변해버린 방들이 지난 추억과 숨결이 남아있지만 어머니의 잔소리처럼 집안의 모든 물건들이 마냥 살갑지는 않다. 어머니의 집도 처음엔 멋지게 지은 3층 양옥집이었다. 빨간 벽돌로 멋을 내고, 이사 가는 날에는 낡은 가구대신 새 가구와 전자제품으로 꾸며진 남들 사는 만큼 사는 집이었다. 자식들 방 하나씩 내어주고 1층과 2층은 세를 내어 수입도 올리고, 한때는 인근학교 여고생들에게 인기 좋은 하숙집으로도 유명했다. 엄마의 집도 한때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새집이었다.

청주도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도시풍경이 변화고 있고 도시규모도 확대되어 구도심과 신도시로 나눠지며 아파트 사이에 또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내가 살던 오래된 집은 세월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그 자리에 있다. 언젠가는 헐리고 그곳에 새로운 건물이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돌아갈 수 있는 곳, 추억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남아있다. 우암동에서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은 가게와 가정집이 함께 붙어있는 주택에서 생활했고, 가겟방은 사무공간은 물론 식사도 하고, 잠자리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줄 곳 우암동 일대에서 대학에 들어갈 때 까지 가겟방이 붙어있는 주택에서 살았다, 아니 '자랐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살았던 주택들 전부는 아니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때는 요즘처럼 아파트 중심의 단지가 아닌 동네였다. 동네에는 가게도 많았고, 계절마다 골목과 골목이 마치 미로처럼 느껴져 호기심 많은 동네 꼬마들을 자꾸 멈칫거리게 만들었으며, 계절마다 다른 모습이 많다 보니 집을 오가는 느낌이 신선했었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그래서 오래된 집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번거롭더라도 그곳에는 추억이 있다. 마치 어릴 적 학교를 끝내고 돌아오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어머니의 가겟방처럼 말이다. 지금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서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즐거웠던 나의 집에 대한 추억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매번 통화의 내용은 자식과 손주들 걱정이다. 먹을 것 챙겨 놓았으니 가져가라는 전화, 그렇게 자식 걱정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까지 자식 걱정으로 통화의 끝을 낸다. 하지만 나는 듣기 싫은 잔소리처럼 살가운 소리 먼저 못하고, 짜증내며 통화를 서둘러 끊는다. 낡고 해진 옷이 편하고 익숙해서 차마 버리지 못한다는 어머니의 낡은 조끼처럼 우연히 지나치다 만나는 우리가족이 살던 오래된 집에는 익숙한 기억이 있다. 한편으로 내가 그곳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 집이 현재를 살고 있는 나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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