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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두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쉽게 잊고 사는 현실 속에서 좋은 추억을 되살려주는 것을 하나 쯤 보관하고 소중히 나누는 시간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에게 무엇이 소중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물건과 대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이제는 현재의 일상이 힘들어 그것들을 잊고, 버리는 것에 익숙한 것은 아닐까. 일상 속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물건과 대상이 하나쯤 있다는 사실은 정말 소중한 일이다. 마치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을 찾는 매개인 마들렌처럼 말이다.

우연히 들른 화장실에서 노란 비누를 만났다. 투박하게 생긴 겉모양에 영문로고가 새겨져 있는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비누였다. 하지만 나에게 남다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색과 향으로 순간 예전 이발소에서 손톱 끝을 세워가며 머리를 감겨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요즘은 남자들이 미용실을 이용하는 것이 낯선 풍경이 아니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자들은 이발소에서 미용이 아닌 이발을 했다. 시큼하면서 상큼한 오렌지 향, 거품이 잘나서 기분 좋았던 노란비누의 기억은 몸이 기억하고 있어 그 노란색 비누 향기를 맡으면 그때의 기억이 난다.

비누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쓰는 물건이지만, 비누마다 독특한 향은 그 향기를 통해 추억을 떠 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개인적으로 오이 냄새나는 비누와 럭비공 모양의 알뜰한 비누처럼 때로는 지겹고 불쾌할 수도 있지만, 비누에 대한 대부분의 추억은 그때의 기분 좋은 추억을 상기시켜준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꼬질꼬질하고 햇빛에 건조돼 말라버린 딱딱한 비누의 불쾌한 기억도 있지만 하얗고 깨끗한 비누의 추억, 여름방학이면 놀러갔던 친척집 욕실에서 등목하며 만난 비누, 우연히 놀러간 친구 집에서 만난 뽀얀 비누 냄새는 지금도 우연히 그 비누 냄새를 맡으면 좋은 기분으로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에서 기억저장소에 대한 소재로 다양한 기억들이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으로 나뉘고 필요 없는 기억들이 폐기처분되는 장면이 나온다. 누구나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모두 갖고 있다.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는 반면, 기억하고 싶지만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잃어버린 기억들도 있다.

이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의 경계에서 모든 기억을 되돌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소중한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고 지속된다. 그것을 상기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있다면 한순간 그 기억이 되살아 돌아온다.

추억속의 앨범을 오랜만에 꺼내 쾌쾌한 먼지 냄새와 함께 빛바랜 사진을 볼 때, 또는 오래된 일기장, 음악, 영화, 음식, 친구 등 소중한 사람과 함께했던 장소로 이동했을 때, 다양한 기억의 열쇠들은 우리 주변에 맴돌고 있고 우연히 만난 대상들은 그때의 순간과 감성으로 나를 이동시킨다.

가정의 달 5월 가족들에게 어떤 기억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어린 아들에게 준 어린이날 선물이 소중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시원하고 상쾌한 향이 일품이었던 노란비누의 추억을 우연히 마주하는 것처럼 단편적으로 흘러가는 일상이 아닌 오랫동안 지속되는 추억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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