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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군 이제 기록으로 남다 - 초정약수

톡 쏘고 알싸한 맛의 정체는 이산화탄소와 철성분
80년대 '미네널워터' 붐, 90년대 '워터 러시'
무분별한 천공으로 용수량 줄고 물맛도 변해
전국에서 인산인해 욕객… 내수역 크게 붐벼
일제시대 국어학자 최현배 한글 성지로 인식

  • 웹출고시간2014.06.30 19:12:01
  • 최종수정2014.06.30 19:43:13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에 위치한 초정약수(椒井藥水)는 랴듐 성분이 다량 함유된 천연탄산수로 하루 용출량이 약 8,500l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지화학적으로는 낮은 pH(5.0∼5.8), 높은 이산화탄소 함량 등의 특징으로 지니고 있다.

초정약수가 분출하는 모습으로, 1973년에 촬영됐다.

초정약수는 대략 5단계를 거쳐 땅위로 용출하게 된다.흐름을 살펴보면 '마그마 기원 CO₂'→'압력이 낮은 곳으로 이동'→'지하 심층수와 만나면서 용해·탄산수 형성'→'화강암과 반응하면서 각종 광물질 용해'→'지표수와 일정정도 혼합'→'땅위나 관정으로 용출'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초정약수는 보통 지하수와 달리 이같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높은 이산화탄소 분압,높은 산화조건, 낮은 PH,높은 총용존고체함량(이온함량) 등의 지화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높은 이산화탄소 분압이 입안에서는 '톡 쏘는 느낌', 목욕 중에는 '따끔거리는 느낌'을 갖게 한다. 초정약수는 또 '알싸한 물맛'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의 정체는 철(Fe) 성분이다. 이산화탄소와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탄산수는 다음 단계로 암석층(초정은 화강암)과 반응하게 된다.이 과정에서 암석의 철 성분이 물속으로 녹아들면서 '알싸한 물맛'을 나타내게 된다.

초정약수(椒井藥水)가 역사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444년(세종 26)이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아뢰기를, "청주(淸州)에 물 맛이 호초(胡椒) 맛과 같은 것이 있어 이름하기를 초수(椒水)라 하는데,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고, 목천현과 전의현에도 또한 이러한 물이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듣고 장차 거둥하여 안질(眼疾)을 치료하고자 하여 내섬시윤 김흔지(金·之)를 보내어 행궁(行宮)을 세우게 하고, 이 물을 얻어 가지고 와서 아뢴 자에게 목면(木·) 10필을 하사하였다.'-<세종실록 26년 1월 27일자>

그해 2월 28일(음력 기준) 세종은 왕비와 세자(후에 문종)을 대동하고 초정약수로 가기 위해 한양 도성문을 나섰고 5일 만인 3월 2일 초수리에 도착했다.

세종은 눈병 치료를 위해 초정약수를 찾았으나, 와중에도 훈민정음 다듬기 노력을 계속 했음을 최만리(崔萬理··-1445) 상소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언문같은 것은 국가의 급하고 부득이하게 기한에 마쳐야 할 일도 아니온데, 어찌 이것만은 행재(行在)에서 급급하게 하시어 성궁(聖躬)을 조섭하시는 때에, 번거롭게 하시나이까."-<세종실록 26년 2월 20일자>

인용문 중 '이것'은 훈민정음 창제작업, '행재'는 초정약수 행궁, '성궁'은 임금의 몸, '조섭'은 발병후 몸조리하는 것을 일컫고 있다. 세종은 그해 하반기 초정약수를 다시 찾았다. 역시 봄과 같이 눈병 치료가 목적있다.

초정약수는 일제 강점기 동안에도 전국적인 명소였다. 일본인 오오꾸마쇼지(大熊春峰)는 『청주 연혁지』(1923년)에서 초정약수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매년 여름철에는 이 영천을 개방하는 관습으로 가까운 고을이나 가까운 곳에서 찾아 들렸으며 50리, 1백리, 멀리는 수 백리를 가리지 않고 이 지역으로 모여들어 몇 만명이나 되는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처럼 수만명의 인파가 일시에 초정약수로 몰려들 수 있었던 것은 1923년 충북선이 청안까지 연장 개통된 직후였기에 가능했고, 그 관문 역할을 한 공간은 내수역이었다.

'충북의 특산이고 전조선에서 유명한 청주 초정 물탕은 오는 8월 3일부터(20일간) 개방하게 되었다 하는데 음수객의 편의를 위하야 충북선 각역에서 내수역까지 기차 할인과 자동차 할인이 있다는데 위장병에 더욱 효과가 있다 한다.'-<동아일보 1923년 7월 29일자>

이 처럼 욕객(浴客)이 전국으로부터 몰려들다 보니 작은 시골마을 초정에는 임시 주택과 노점이 행렬을 이뤘다. 청주 연혁지는 그 모습이 마치 '시장과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상류의 사람은 임시로 설치된 작은 집에서 숙박하며, 주야에 관례없이 약수를 마셔도 싫증을 내지 않았다. 이에 따라 그곳 주변지 일대에는 노점의 행렬이 생겨나게 되었고, 음식물 기타 것들을 거래하여 마치 시장과 같았다.'-<〃>

초정약수 원탕 모습이다.

초정약수가 욕객만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경성에 거주하던 일본인 中原鐵臣은 1921년 초정약수 원탕 소유권을 매입하고 그 자리에 탄산음료 제조공장을 세웠다.

'청주 연혁지'는 그 후의 세평과 가동상황을 "탄산수라는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3군데 밖에 없고 (…) 지금은 제품을 계속 만들어도 용출량이 많아 연간 생산량이 1백만 상자에 이르렀다'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판매 이익은 고스란히 일본 소유주 中原鐵臣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자 당시 청주에 살았던 '최재옥'이라는 사람이 동아일보에 이런 내용을 투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다섯해 전에 일본인의 소유가 되야 그 자가 청량음료수로 제조허가를 얻어가지고 천연탄산수의 천연사이다를 만드는 농장을 세우고 일년에 백사십만여명이나 만들어 낸답니다. (…) 그러나 실속은 남에게 다 뺏긴 것이외다. 그럼으로 그저 우리 고을에는 이러한 이름있는 물건이라고만 자랑하고 그만둡니다.'-<1926년 9월 26일자>

동아일보 1932년 8월 24일자.

일제 강점기인 1932년 8월 최현배 선생이 청원의 궁벽한 마을인 초정약수를 이례적으로 찾았다. 초정약수 일대를 '한글의 주요 유적지'로 인식한 결과로, 당시 감회가 무척 컸는지 당시 동아일보에 '한글巡禮 청주에서' 제목의 특별 기고를 했다.

'김공은 나에게 세종의 뒤를 이어 눈을 씻으라 권한다. 두 눈을 씻으면서 이 약물로 눈을 씻치면 한글이 잘 보이리라 한즉 김공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아 이왕이면 낯도 머리도 씻치라고 세수대야를 빌어다가 새 약수를 하나 부어주신다. 나는 500년 뒤에 있으면서 세종대왕 세례를 받고 그 정통을 이은 감이 있었다.'-<동아일보 1932년 8월 24일자>

1980년대 들어 수돗물을 불신하는 여차로 '미네럴 워터'로 불리는 천연생수를 찾는 사람이 급증했다. 여기에는 국민소득 증가도 한몫을 했다. 당시 국내 생수업체로는 '초정약수', '일화생수', '용천약수', '한국미네널워터', '미주만' 등 5개사가 영업활동을 했고, 채수지역은 충북 초정리와 괴산읍 증평은 남하리 일대였다. 당시 경향신문이 '忠北산골에 불붙은 藥水전쟁'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경향신문 1983년 4월 25일자.

'노다지 물'을 캐려는 사람들로 조용하던 산골마을이 법석이다. 충북 청원군 북일면 초정리와 괴산군 증평읍 증평리, 남하리 일대는 예부터 약수의 본고장으로 널리 이름났던 곳. 구녀산을 중심으로 수맥을 따라 남북으로 갈라진 이 두마을에는 요즘 '생수'와 '약수'를 퍼내 팔려는 대기업들의 물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일반가정에서 약수, 생수의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이고 86아시안게님, 88올림픽 때쯤은 그 매상액이 연5천여억원에 리를 것으로 보여 기존업체는 공장을 늘리고 신규로 뛰어든 기업은 산속에 대형 파이프를 박고 취수탑, 병공장을 차리는 등 '물공단'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경향신문 1983년 4월 25일자>

이 날짜 경향신문은 기사 말미에 '일제 때는 일본인들이 이곳에 물공장을 세워 천연탄산수를 생산, 동남아 등지의 일본군 구급수로 사용하거나 일본 국내용으로 썼다'라고 기사화했다.

1990년대가 되자 청원군내 생수취수 지역은 미원면으로까지 확대되면서 관련 업체가 무허가까지 포함할 경우 20개 업체로 급증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일보는

'물좋기로 이름난 충북청원군미원면일대와 북일면초정리 주민들은「골드러시」에 비유되는「워터러시」에 들떠 있다. 미원면일대의 산자락은이미 개발업자의삽자루에 의해 붉게 파헤쳐졌으며 초정리 주민들은 생수생산조합까지 구상하고 있다. (…) 미원면과 초정리는 생수 유·무허가업체 10여개가 몰려 있다. 진로석수 풀무원 스파클 산청수 등국내 유명생수가 모두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지난해말까지 7개에 불과하던 생수업체는 벌써 20개로 늘어났다.'(1994년 3월 17일자) 라고 보도했다.

생수업체 난립은 수자원 고갈 위기와 함께 폐정 방치로 인한 지하수 오염 문제를 야기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한겨레> 신문이 '초정약수 갈증 위기' 제목 하에

한겨레신문 1993년 11월 12일자.

'청원군 관계자에 따르면 초정리는 지난 90년 이전 이미 1백28곳에서 우물을 판 것을 비롯해 91년 38곳, 92년 24곳, 등 지금까지 모두 2백11곳에 지하수 개발을 위한 시추공이 박힐 만큼 무분별한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따라 10년전까지만 해도 지하 30-40m에서 발견되던 수맥이 지금은 지하 2백m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아 초정약수 고갈론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 청원군도 군관광소득사업의 하나로 이고셍 약수 목욕탕을 짓기로 하고 지난 10월 두 곳에서 시추공을 박았으나 모두 실패했다. 특히 10여년 전부터 일화, 스파클, 풀무원 등 청량음료 및 광천음료(생수) 제조업체와 음식점, 식당 등이 들어서면서 하루 1천8백-2처톤의 지하수를 퍼올리는 것도 초정약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1993년 11월 12일자)라고 기사화했다.

충북대 환경공학과 이상일 교수는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쪽에서 물을 퍼올릴 경우 지하공간이 부압이 높아져 폐정을 통한 빗물과 오수의 유입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며 지하저수량과 암반 여과과정을 거쳐 재생산되는 지하수량, 탄산가스 매장량 등에 관한 과학적인 조사를 거쳐 초정약수의 약효를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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