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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군, 이제 기록으로 남다 - 인간상록수 하상돈

누에치기로 '돌꼬지' 마을에 '富의 꽃'을 피우다
미호천 잦은 범람, 마을 50여 농가 만주로 이주
하씨, 폐허된 고향으로 돌아와 뽕밭 조성 시작
마을 농가소득 8년 동안에 무려 5배나 올려놔
박대통령 특별 관심, 육여사는 '권잠실' 건립

  • 웹출고시간2014.07.07 15:37:15
  • 최종수정2014.07.07 15:37:15
청원군 강내면 석화리에 '돌곳'(石串·혹은 돌꼬지) 마을이 있다. 청주에서 조치원 방향의 우측 야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교통도 편리한 편하다. 그리고 충북선 열차가 동네 앞을 지나가고 있고, 더 서쪽으로 가면 미호천이다.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돌곳'은 지금은 부촌이 됐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촌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의 경우 미호천의 범람으로 수해와 흉작이 계속되면서 50여 농가가 만주 등지로 이주했다. 따라서 주인없는 초가는 흉가로 변했고, 그런 초가지붕 위에 망초가 자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난과 무지로 낙후된 이런 돌곳 마을에 21년간 객지생활을 하던 하상돈(河相惇·작고) 씨가 귀향했다. 그는 숙고 끝에 잠업(蠶業)을 발판삼아 고향 석화리를 부촌으로 변모시키고자 했다. 그는 다섯 가지의 실천 가능한 안을 선정했다.

첫째, 미호천 연안 침수 지역에 상전조성.

둘째, 제대군인을 중심으로 한 청년 상조회 조직.

셋째, 정신개발과 주민 공동의식 제고를 위한 마을회관 전립.

넷째, 야산 개간으로 상전확장.

다섯째, 농가 지붕 개량사업 등 5개 사업계획을 정했다.

생전의 하상돈 옹 모습.

하씨는 먼저 마을 뒤에 위치한 선산 5정보를 개간하는 등 솔선수범을 보였다. 그는 집안 노인들의 책망을 들었지만 "내일의 우리 자손들이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닦는 일"이라며 오히려 개간질하는 괭이에 힘을 주었다. 그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추수라고 한 것이 콩 5가마로 종자 값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에 굴함이 없이 누에를 쳐서 시범을 보이기로 결심하고 상묘업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양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상전을 조성한 마을 안 독농 양잠가 청년 6명의 도움을 받아 잠종 20상자를 소잠하였다.'-<새마을운동 시작에서 오늘까지>

'소잠'(掃蠶)은 알에서 깨어 나온 누에를 누엣자리에 떨어 놓는 일로, 달리 '누에떨기'라고 불렀다. 하성돈 자신도 양잠에 대한 경험이 별반 없고 또 시설도 충분치 않은 상황 속의 모험이어서 적지 않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한 칸 방에서 누에가 한잠을 자고나니 누에는 치는 채반인 '잠박'의 숫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뽕잎을 미처 대지 못하자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통사정하다시피 도움을 요청하고는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모자라 원두막 같은 간이 잠실을 짓고 그곳에서 누에를 쳤다.

간이 잠실은 누에치는 곳으로는 안전한 장소는 아니었다. 쥐와 개구리가 허술한 잠실로 들어와 피해를 입히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굳건한 집념에 감동한 마을 청년상조회는 하상돈의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왔다.

석화리는 누에고치기로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는 1964년 석화리를 양잠특설지구로 지정했다. 그리고 2년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을을 직접 찾았다. 그리고 이날 박대통령은 "야산을 개발하여 잠업 주산지를 조성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박 전 대통령 방문후 석화리에는 흔치 않은 식상계(植桑契)가 조직됐고, 이것을 계기로 상전(桑田)을 조성하는 농가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논과 밭, 그리고 산지에까지 상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67년 가을철에만도 무려 15만 그루의 뽕나무가 심겨지면서 연간 소잠량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성돈 씨의 솔선수범이 주민들의 자율의식과 의욕적인 영농의 개혁을 촉발시킨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석화리 주민들은 누에를 매개로 협업하는 공동의식을 익혔고, 이는 부락 공동기금을 조성하는 것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결과, 마을회관과 치잠공동사육장(온상식 잠실) 건립을 추진할 수 있었다.

양잠 붐은 소득향상을 가져왔다. 1967년도의 전국 농가의 평균 호당소득은 15만원 정도였다. 이에 비해 석화리는 10% 정도 더 높은 16만9천원을 기록했다. 석화리 농가소득은 이후 더욱 가속화되면서 1970년에는 2배 더 늘어난 35만원을 돌파했다. 이는 당시 전국 평균보다 37% 정도 많은 것이다.

양잠 바람에 이어 석화리에도 새마을운동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200일 작전'으로 불리는 마을환경 개선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나무 섶이나 수수대로 둘러싸인 울타리가 시멘트 블록 담장으로 교체됐고, 엄동설한임에도 불구하고 뒷산 너머 상전까지 500m 농로가 개설됐다.

당시 이장은 새벽 6시에 주민소집과 그날 하여야 할 일을 앰프를 통해 매일 공지했다. 용지를 매수하는 문제가 다소 걸림돌이 됐으나 결국 토지주가 협조를 해줬다.

상전 농로를 개설하는 데는 20일 정도가 걸렸다. 주민들은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됐고 하상돈 씨를 더욱 따랐다. 이번에는 마을안길 넓히기, 하수구설치, 담장개수 등의 사업이 전개됐다.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던 마을의 리어카, 우마차가 총동원됐고 부녀자들도 힘을 보탰다.

마을주민들의 관심은 이번에는 '위생'으로 향했다. 변소와 부엌을 개량하는 사업이 집집마다 전개됐다. 하씨는 이같은 공을 인정받아 1971년 9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을 받았다.

경향신문 1971년 9월 8일자.

'5백년의 가난과 무지를 몰아내고 이상향을 만들려던 꿈을 이룬 충북 청원군 강내면 석화리의 하상돈씨가 7일 박정의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하씨의 공적은 구호미로 연명해 오던 석화리 마을(87가구)을 지난 62년부터 8년 동안에 2백20여만원의 저축을 포함, 농가소득을 5.6배나 올렸으며 마을사람의 자조자립정신을 높여 문화시설을 갖추고 생활환경을 개선한 것. 하씨의 더 큰 기쁨과 영광은 7일 경제기획원에서 열린 경제동향보고 석상에 직접 참석한 일이다. 이 자라에서 하씨는 그의 경험을 살려 『농가의 지붕 개량에 필요한 슬라브 등 자재는 면단위로 생산해야 효과적』이라고 건의, 이것이 박대통령의 정책적인 결심으로 받아들여져 즉석에서 개각에 지시하게 된 것이다.'-<경향신문 1971년 9월 8일자>

인간 상록수 하상돈 공적비 모습.

현재 하상돈의 공적비는 강내면 잠사박물관과 석화리 뒷산의 진양하씨 문중땅 등에 3개가 세워져 있다.

'극빈촌 석화리를 기적의 문화촌으로 육성 발전시켜 1968년 정부로부터 인간 상록수상을 받았다. 국책사업인 잠업의 증산 낙농의 증식에 선도자가 되어 두 번에 걸쳐 국가원수가 이 고장을 전국시범 선도지역으로 시찰하게 하였으며 대통령에게 품신하여 미호천을 양수하여 8기 마을의 불모지를 수리안전 농지로 개발 활용케 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공이다.'-<강내면 석화리 공적비문 중에서>

청원군 강내면 학천리에 위치한 한국잠사박물관.

한국잠사박물관이 석화리 인근인 강내면 학천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 역시 생전 하성돈의 누에를 매개로 한 '인간 상록수' 활약상과 무관하지 않다. 잠사박물관 경내에는 고 육영수 여사의 지원금으로 1973년에 건립된 '새마을권잠실'이 위치하고 있고, 현판 글씨는 고 육여사의 친필이다.

1973년 청원군을 찾을 당시의 육영수 여사.

그리고 고 육여사는 이듬해인 1974년 10월 4일 박정희 전 대통령, 영애 박근혜 양 등과 함께 방문해 현판식과 함께 기념식수를 했다. 고 육영수 여사는 이날 누에에 손수 뽕잎을 주며 잠업의 가치를 역설했다.

/ 조혁연 대기자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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