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4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청원군 이젠 기록으로 남다 - 신문에 보도된 주요 사건·사고

'정관수술 의처증 살인' 등 다사다난의 69년
나환자와 함께 공부못한다…북일 국교생 등교거부
추석·운동회 마치고 청주로 돌아오다 피반령 참변
머슴은 자살하고 7살난 딸은 주변서 변사체로 발견

  • 웹출고시간2014.05.12 18:11:09
  • 최종수정2014.05.19 15:35:17

청원군의 69년 역사도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중 신문이 활자화할 정도의 주요 사건·사고는 <표>과 같다. 이들 사건·사고에 등장하는 '병든 돼지고기', '정관수술', '음성나환자', '머슴살이, '피반령 교통사고' 등의 표현은 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회갑 잔치집 병든 돼지고기 먹고 6명 사망'

(강내면 저산리 / 1958년 3월)

과거 회갑은 장수의 기준이 됐다. 따라서 자식들은 부모가 회갑을 맞으면 친인척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초정,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 것이 전래 풍속이었다. 그러나 회갑잔치는 종종 식중독 사고로 연결됐다.

1958년 3월 하순의 강내면 저산리 식중독 사고는 '병든 돼지고기'를 식재료로 사용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당시 <경향신문>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지난 27일 충북 청원군 강내면 저산리 회갑 잔칫집에서 발갱한 식중독 사건은 29일 하오에 이르러 3명이 또 사망함으로써 사망자는 도합 4명으로 증가되었고, 나머지 28명 식중독자 중에도 생명이 위태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식중독의 원인은 돼지고기가 변질된 것이 거의 틀림없다고 하며 독소는 위생시험소에서 규명 중에 있다.'-<경향신문 1958년 3월 28일자>

당시 식중독 사건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생명이 위태한 사람' 중에서 사망자가 더 나왔다. <동아일보>는 저산리 식중독 사건에 대해 '사망 6명, 중독자 79명으로 증가했다'(1598년 4월 3일자)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단순 식중독 사건치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것은 회갑잔치 특성상 사람이 많이 모였기 때문이었다.

◇정관수술, 의처증 살인사건의 씨앗이 되다 / (현도면 중척리 / 1966년 5월)

충청일보 1966년 5월 7일자.

70년대의 대표적인 가족표어는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자녀 2명 출산을 강조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아빠, 혼자는 싫어요.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등으로 변화했다. 60년대는 정반대로, 당시 출산율은 가족당 5명 정도였다. 때문에 당시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를 골목길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당시 등장한 대표적인 가족계획 수단의 하나가 남성 정관수술요법이었다. 당시 가족계획협회는 "필요시는 언제든지 복원할 수 있다", "남자 피임이 가장 효과적이다.", "장화보다 번거롭지 않고 느낌이 좋다.", "정관수술 하면 정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근거 없는 유언비어다"라고 집중적인 홍보를 했다.

아울러 정관수술에 참여할 경우 예비군훈련을 제외시켜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정관수술 홍보 미흡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났다. 특히 정관수술은 '남성성이 약화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이 지방으로서는 가장 끔찍했던 지난 4월 0시 25분 현도면 중척리 도끼살인 사건은 사건발생 7일만인 5일 오후 4시25분 살해당한 송화자(宋和子·35) 씨의 남편인 오천균(吳千均·37)이 극심한 의처증세에서 온 스스로의 자기범행이라고 자백하므로써 그동안 전율의 의혹을 매듭지는 동시 더욱 가공할「센세이숀」을 일으키고 있다.'-<충청일보 1966년 5월 7일자>

그는 "정관수술 후 정력이 없어졌다"고 말하면서도 국가 행정인 가족계획사업 만큼은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얘를 잘 길러 보려고 정관수술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3년전(62년 9월말) 오가 산아제한을 위해 정관수술 후 정력이라고는 아주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성불구자가 되었음을 의미) 『그런 것 묻지 말아요 … 제발 … 국가사업으로 하는 가족계획에 큰일납니다. 사실 이야기는 못하겠어요… 그저 잘살아 보려고 하다 이렇게 되니 억울하고 슬퍼요. 한동안 애들도 잘 길러 볼려고 정관수술도 하고 집도 지었는데 너무 억울하고 슬프구먼요. 살고 싶지 않아요…."<충청일보 1966년 5월 7일자>

◇나환자에 대한 편견, 초등생 천여명이 결석 / (북일국교생 / 1967년 6월)

충청일보 1967년 6월 28일자.

1967년 3월. 북일국민학교는 6일에 있을 예정인 67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을 무기 연기했다. 학부형들은 북일면 원통리 소재 음성나환자(청애원) 자녀 8명이 이 학교에 입학하자 자녀들을 함께 공부시킬 수 없다고 반발, 입학을 거부했다.

이들 8명은 음성나환자 자녀들은 시내 '신욋과원장' 신필수 박사의 전염 우려가 없다는 진단서를 입학원서에 첨부했으나 학부형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육법에 의하면 전염성이 없을 경우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사건은 여기서 종결되지 않았다. 학교와 청애원 측이 '자녀 8명을 교장실에서 공부시킨다'는 타협안을 마련하자 1천여명의 학생들이 나병(癩病·한센병) 전염을 우려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음성나환자 자녀들의 입학을 둘러싸고 청원군 북일면 소재 청애원(淸愛園·음성나환자 정착지)측과 북일국교 학부형간의 공학 허·불허를 둘러싸고 3월초 대립된 뒤 청애원 미감아동 5명 입학을 잠시 지연했던 바 당국과 청애원측과의 합의로 입학이 허가되자 전교생 1천8백30명중 1천1백40명이 27일 결석을 하여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청애원측은 24일 학교당국과 협의 청원군 교육청의 지시를 받아 교장실에 별도수용 교육을 받게 됐는데 학생 1천1백40명이 27일 결석하여 당국을 당황케 하고 있다.'-<충청일보 1967년 6월 28일자>

◇추석 귀환길 교통사고, 13명 사망·115명 중경상 / (가덕면 피반령 / 1968년 10월)

클릭하면 확대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1968년 10월 9일자.

청원군 가덕면 청용리와 보은군 회북면과의 경계에 있는 피반령은 높이 360m로, 고봉준령에 해당하는 영로(嶺路)는 아니다. 그러나 피반령은 남북사면 모두 계곡이 깊어 항상 대형 교통사고 위험성이 상존하던 곳이다. 현재는 가드레일 등 안전시설이 많이 보완됐지만 60년대는 그렇지 못했다.

1968년 10월 8일 피반령 가덕면 사면에서 버스가 계곡으로 굴러 13명이 사망하고 115명아 중경상을 입는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그것도 추석을 고향에서 보낸 후 청주 일터로 돌아오다 희생을 당한 사람들이 많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8일 하오 4시반쯤 청원군 가덕면 계산리 피반령에서 회북을 떠나 청주로 가던 대성여객 소속 충북영 39호 버스(운전자 백충현·29)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높이 1백m의 낭떠러지로 굴러 13명이 숨지고 1백5명이 중산, 10명이 경상을 입었다. 이 버스는 정원이 57명인데, 1백28명이나 태우고 이날 3시경 회북을 떠났었다.'-<경향신문 1968년 10월 9일자>

<경향신문>은 다음 문장을 '승객들은 대부분 추석을 지내고 청주로 돌아가는 사람과 회인 초등학교 운동회는 구경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사고지점인 피반령은 해발 3천6백m로, 길폭은 6m의 좁은 길로 청주~속리산을 운행하는 관광차량이 많이 다녀 위험한 길이다'라고 기사화했다. 기사내용 중 '해발 3천6백m'는 '360m'의 오자다.

◇머슴살이 응어리, 범죄로 자주 연결되다 / (남이면 석실리 / 1969년 5월)

충청일보 1969년 5월 7일자.

조선시대 노비제도는 1801년(순조 1) 관노비 해방, 1886년(고종 23) 노비 세습제 폐지, 그리고 1894년 갑오개혁을 거치면서 노비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그러나 경제력이 약했던 그들은 자력으로 완전한 신분해방을 획득하지 못하면서 전통시대

노비의 변형인 '머슴'으로 전락했다. 1960년대 청원지역의 한 머슴도 약한 경제력 때문에 가정을 꾸리지 못하면서 성범죄의 유혹해 노출됐다. 1969년 5월 남이면 석실리에서 고용살이를 하던 김 아무개가 팔봉산 기슭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고 주인딸이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곱살 난 주인의 딸을 데리고 나갔던 고용인이 청원군 남이면 석실리 팔봉산 기슭에서 변사체로 발견됐으며 같이 나갔던 어린이가 행방불명이 되어 수사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6일 청주지검에 의하면 청원군 강서면 신전리 김기성씨 집에 고용살이를 하고있는 충남 연기군 서면 월하리에 본적을 둔 조정길씨는 지난 4일 오후 1시경 주인 김씨의 자녀 순광양(7=현암국교1년)을 데리고 일하러 간다고 괭이 붙들고 나간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하루후인 오후 3시경 석실리 팔봉산 기슭 「5부 능선」에 죽어 있는 것을…. 죽은 조씨를 따라 나갔던 순광양은 6일 하오 현재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충청일보 1969년 5월 7일자>

이 사건에 대한 속보기사는 <충청일보 69년 5월 8일자>에 실려 있다. 이 날짜 <충청일보>는 '소녀도 피살체로, 남이 팔봉산 사건, 욕보인 후 살해한 것으로 추정'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1967년 3월에는 미원면 월용리에서 역시 머슴살이를 하던 김 아무개가 이웃집에 침입, 모자를 살해를 기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충청일보 1967년 3월 4일자) 이로 인해 50대 어머니가 현장에서 즉사하고 20대 아들은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원한 관계로 보고 범인을 문초 중에 있다고 <충청일보>는 밝혔다.

/ 조혁연 대기자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