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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제천송계계곡·용하구곡

시가 좋겠어, 바람이라면 더 좋고…

  • 웹출고시간2013.08.04 16:04:40
  • 최종수정2013.08.04 16:04:40
ⓒ 홍대기
복날이면 사람들은 보양식을 즐겨 먹는다. 초복이 7월 중순에 시작되고 중복, 말복까지 꼬박 한 달을, 말 그대로 복더위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복날만이라도 기름지고 고단백의 보양식을 먹으면서 체력관리 하려는 것이다. 보양식으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삼계탕이다. 개고기를 먹어야 여름 난다며 보신탕집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사람도 있는데 무더위에 펄펄 끓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우리네의 식성도 유별난 것만은 틀림없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삼복더위에 민어탕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보양식으로 민어탕이 일품, 도미탕이 이품, 보신탕이 삼품이라고 했다. 그리고 서민들은 닭을 잡아먹으면서 더위를 물리치려 했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정월 대보름에 더위팔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이웃 사람들에게 "내 더위 사가라"며 큰 소리로 외쳤는데 새해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둥근 달을 보며 풍년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올 한해도 큰 탈 없이 보낼 수 있게 해 달라는 소망을 담았던 것이다. 한 겨울에 여름 날 것을 걱정하고 미리 예방하려는 조상들의 의미가 돋보인다.

닭은 관혼상제에 중요하게 쓰인다. 전통혼례 때 암탉과 수탉을 마주보게 했고, 세상을 떠날 때 타던 상여 꼭대기는 온갖 모양의 닭 장식으로 치장을 했다. 귀신을 쫓는 영물이라는 속설 때문에 꼭두닭을 만들고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을 인도했던 것이다. 닭을 잘 키워야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암탉이 많은 집에서는 하루에도 열댓 개씩 계란을 낳았고, 이것들은 계란찜이나 계란 프라이를 해 먹기도 했지만 짚으로 만든 달걀꾸러미에 넣어 읍내 장날 가져가 팔아야만 자식들 학비에 보탤 수 있었다. 알이 좋은 것들은 모았다가 병아리를 까는데 사용했고, 봄날의 아지랑이와 개나리 핀 골목길을 삐약삐약 소리내며 뛰어놀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닭만 잘 키워도 자식 학비 걱정 없고, 계란 팔고 닭 팔아 번 돈으로 송아지도 사서 키우면 나중에 집 한 채 장만할 수 있었으니 부지런한 사람이여, 시작은 이처럼 작고 초라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나는 늙은호박 영양백숙을 즐겨먹었다. 늙은 호박을 오려내 씨를 파내고 가마솥에 넣어 푹 쪄낸 뒤 닭 속에 대추와 밤을 넣은 것을 호박에 담아 다시 쪄낸다. 호박의 당분은 소화흡수가 잘돼 위장이 약한 아이에게도 좋고 당뇨에 고생하는 어른들에게는 이만한 보양식이 없었다. 물론 찹쌀 인삼 대추 밤 마늘을 넣고 푹 고아 먹기도 했으며 옻닭이나 송이백숙도 즐겨 먹었다. 옻닭은 구순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송이백숙은 송이 특유의 향이 입안에 가득 고일 정도로 그 맛과 향이 특별했다.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의 삼복은 개와 무관하지 않다. 사람(人)과 개(犬)가 합쳐진 것이 복(伏)이니 개 잡아 먹는 날이 복날이라는 속설까지 있지만 사람과 개의 친근함이 내포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청년들은 멍멍이는 때려잡아야만 고기 맛이 좋다며 뒷산으로 끌고 갔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았는지 끙끙거리며 발악하는 멍멍이가 불쌍하고 안쓰러워 동네 꼬마들은 참나무 숲에 숨어 최후의 순간을 눈물 흘리며 지켜보기도 했다. 청년들이 멍멍이를 나무에 붙잡아 맨 뒤 돌도끼로 "퍽" 치면 "깨갱~"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숨이 멎었다. 이어 볏짚에 불을 지핀 뒤 연기와 불꽃으로 털을 그을리고 이런 저런 작업을 거쳐 무쇠 솥으로 옮겼다. 시골에서 무쇠 솥은 천세나고 오달지게 쓰였다. 고슬고슬한 밥 짓기와 구수한 숭늉 끓이기에서부터 고구마나 감자를 삶고 떡을 찔 때도 무쇠솥으로 했다. 깨를 볶고 나물을 볶고 달걀 프라이를 할 때도 무쇠솥 뚜껑을 사용했으며 청년들이 천렵을 할 때도 무쇠솥을 들고 다니며 끓이고 지지며 볶아야 했다.

ⓒ 강호생
모내기가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계곡으로 갔다. 돌무덤을 파헤치며 가재들을 잡았는데, 미리 준비해 둔 마늘잎과 고추장을 풀어 가재찌게를 만들었다. 솔잎으로 불쏘시개를 만든 뒤 불씨가 어느 정도 살아났다 싶으면 나무 가지를 꺾어 큰 불을 만들었다. 다 찌그러진 냄비에는 어느덧 붉은 가재가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가재는 큰 집게다리와 네 쌍의 작은 집게다리가 있는데 집게다리에 손가락이 물려 붉은 피를 뚝뚝 흘리던 녀석도 있었다. 암컷과 수컷의 생김새가 비슷해 쉽게 구별이 안 되지만 눈썰미 좋은 아이들은 금방 알아챈다. 가재끼리 싸움을 걸어보았을 때 화를 내지 않으면 암컷이고, 집게다리를 쳐들고 달려들면 수컷인 것이다.

숲속과 냇가와 계곡을 햇살처럼 뛰어다니고, 들판의 알알이 여문 곡식과 산중 열매를 바람처럼 톡 따먹고, 더위를 피해 등목과 탁족을 즐기고, 미루나무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누워 배꼽바람을 즐기던 시절이 그립다. 그리워하고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 했는데, 오늘따라 옛 생각에 젖어 눈물이 날 것 같다.

ⓒ 홍대기
제천에는 한수면 송계리의 송계계곡, 덕산면 월악리의 용하구곡, 백운면 덕동리의 덕동계곡 등 여러 개의 계곡이 있다. 계곡 속으로 들어가면 옛 생각에 젖고, 맑은 풍경과 물맛에 젖고, 사랑에 젖는 법이다. 월악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송계계곡은 한 여름에도 계곡물이 어름처럼 차가워 피서객들로 넘쳐난다. 너럭바위나 떡바위라고 부르는 공룡같은 바위들이 즐비하고 송계팔경과 천연기념물인 망개나무 등 때 묻지 않는 자연이 좋다.

용하구곡 역시 천연림과 맑은 물과 바위가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봄에는 진달래 철쭉의 꽃 천지고, 여름에는 시원함이 뼛속까지 스미며, 가을엔 단풍으로 물들어 신선이 된 듯하며, 겨울에는 북풍한설에 산과 계곡 모두 고요하니 고립무원 천의무봉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정감 넘치는 시골풍경을 즐기다 보면 덕동계곡을 만나게 되는데 맑은 계곡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자. 올 여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것이다.

시인 박용하는 '연하장'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아무래도 시가 좋겠어, 바람이라면 더 좋고, 나무와 길이라면. 아무래도 노래가 좋겠어, 누가 꼭 듣지 않아도, 빗방울이라면 좋고, 진눈깨비라면 더 좋은. 아무래도 사람이 좋겠어, 저 나무아래 걸어, 이 길로 드는, 하늘이라면 더 좋고, 염소라면, 제비꽃이라면. 좋은 것은 아무래도 자연이 제일 좋겠어." 그래, 나도 자연이라면 좋겠다. 계곡의 물길이라면 좋겠다. 사랑이라면 더욱 좋겠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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