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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3.24 18:18:2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써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무엇인가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크 '진정한 여행'에서

도대체 얼마나 더 아름답고, 얼마나 더 순결하며, 얼마나 더 농염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가야만 너의 진한 속살을 만날 수 있으며, 어찌해야 너의 모든 것을 내게 맡길 것인가. 내 마음은 이미 파랗게 물들어 있는데 너는 왜 내게 다가올 듯 말 듯 가슴만 설레게 하고 애간장 태우는가.

북풍한설로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지난 겨울에도 너는 농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깊고 느린 그 속으로 들어가려 애썼지만, 얼음장 밑에서 쟁쟁쟁 쏟아지는 소리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지만, 결국 너를 만나지 못했다. 봄이 오는가 싶어 달려간 그날도 붉은 꽃망울 터뜨리던 너를 만나려 했지만 무성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한 풀꽃들이 삼삼하게 아른거려 안쓰럽고, 연분홍 꽃잎들은 싱숭생숭 들뜨게 했다.

ⓒ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지난해 초여름 어느 날 너를 만났을 때에도 쏟아지는 햇살과 맑은 물살과 푸른 숲속을 돌며 온 몸을 맡기려 했지만 계곡에 서늘하게 핀 찔레꽃 하얀 덤불 앞에서 나는 피를 토하고 말았다. 그때 너는 순결한 색과 향과 정조를 내게 주려 했지만 거짓과 위선으로 뒤범벅이 된 나는 감히 너를 품을 수 없었다. 마음이 반듯하게 가다듬어지지 않은 채 너를 품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욕망을 위해 어찌 너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짧은 생각이 불경스러울 뿐이다.

산도 강도 꽃도 사람이 있어야 산이고 꽃이라고 했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주고 아픔만 준다. 시끄럽고 부산하고 오물만 던지고 간다. 그 뒤안길은 너무 적막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어 부끄럽다. 그런데도 너는 단 한 번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조차 사치라면 애써 숨기려 했다. 그러는 너의 고운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 산천의 아름다운 '여행' 앞에서 무엇을 쓰고, 무엇을 세우고, 무엇을 노래하며, 무엇을 담을 것인가 생각에 젖는다. 너는 언제나 이렇게 나를 깨어있게 하니 내 어찌 너의 순결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그래도 나는 너의 품이 좋다. 너의 모든 것을 내게 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앉아 숲을 보며 꽃들의 춤사위를 훔치고 있으면 내 삶에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더 이상 부질없는 짓들로 날을 지새우지 말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네 곁에서 한 그루의 나무나 꽃대가 되고 싶다. 바람이 내 볼에 봄향기를 뿌리고 달아난다. 너의 지금 그 생각도 부질없다며 꽃송이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고단하고 막막할 때 잠시 이곳에서 쉬었다 가면 되지 무슨 욕심이 많으냐고 꾸중한다. 바람은 저만큼 가서 다른 꽃을 흔들어 깨운다. 저 잎잎의 열어젖힘을 보면서, 꽃과 나비와 바람과 햇살이 짝짓기하며 악동처럼 즐겁게 뛰어노는 풍경을 보면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생각하게 한다.

괴산군 칠성면 쌍곡마을부터 제수리재에 이르기까지 10.5km를 쌍곡구곡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너는 쌍곡계곡 또는 쌍곡구곡이라고 하며 속리산국립공원의 한 자락에 포함돼 있으니 귀하신 몸이다. 이곳엔 호롱소, 소금강, 병암(떡바위), 문수암, 쌍벽, 용소, 쌍곡폭포, 선녀탕, 장암(마당바위)라는 아홉 개 마디가 서로 벗 삼아 사계절을 품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조선시대 퇴계 이황, 송강 정철 등 수많은 유학자와 문인들이 이곳의 산수경치를 사랑하며 소요하였겠는가. 보배산, 칠보산, 군자산, 비학산의 웅장한 산세에 둘러쌓여 있고,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너의 애틋한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기암절벽과 노송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숲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하여 사람들은 네게 소금강이라는 애칭까지 주지 않았던가.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너를 만나러 가면 제일 먼저 호롱소가 마중나와 있다. 계곡물이 90도 급커브의 아찔함을 연출하며 흐르고 있고 늙은 소나무와 바위가 오붓하게 앉아있지 않던가. 이곳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호롱불처럼 생긴 큰 바위, 호롱소다. 이어 만나는 소금강은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높게 솟은 봉우리는 하늘과 맞닿아 있고 잘 뻗은 소나무들이 아슬아슬한 자태로 오가는 방랑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마음의 짐을 풀어놓는다. 바위 모양이 시루떡처럼 생겼다고 해서 떡바위라고도 부르는 병암은 가난했던 시절에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사오면 근심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설이 남아있고, 인근의 문수암은 보살을 모신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깎아 세운 듯한 바위가 서로마주보고 있는 쌍벽 앞에서는 마음의 짐을 풀어놓아도 좋다.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소는 명주실 한 꾸러미를 다 풀어도 모자랄 정도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쌍곡폭포는 그 자태가 수줍은 촌색시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며 여성적인 향취 물씬 풍긴다. 그 아래로 여인의 치마폭처럼 드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으니 시원하다 못해 간장을 서늘케 한다. 선녀들이 달밤이면 목욕하러 내려왔다는 선녀탕은 아름다움과 신묘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고, 마당바위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장암은 바위가 갖고 있는 시간의 이끼와 남성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다양한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도 위세 떨거나 자만하지 않고, 군말 한 마디 하지 않으며 오롯이 그렇게 서 있으니 잠시나마 내가 너를 탐하려 했던 것이 부끄럽다. 세속의 삿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언제 철이 들는지 이러는 내가 야속할 뿐이다.

봄이다. 이 땅의 봄은 참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산을 걸어도, 들과 내를 따라 달려도 잠자고 있던 대지는 눈을 크게 뜨고 기지개를 하며 부풀어 오른다. 바로 그 자리에 아지랑이 춤을 추며 꽃들과 푸른 새순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하고 새들의 날개짓과 지저귐도 생기발랄하다. 그리하여 봄은 솟음의 길이다. 아픔을 딛고 새 순과 새 희망으로 솟아오르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즐거운 소풍길에 나서면 좋겠다. 모든 삶의 근심과 아픔을 벗고 봄의 숲으로 달려가 가난하게 서 보자.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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