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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Ⅳ- 옥화구곡

옥화구곡 붓길따라 백리, 마음따라 천리

  • 웹출고시간2013.03.10 15:51:4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엊저녁에는 밤늦도록 술과 함께 어리석은 삶을 새김질 했다. 내 가슴이 이름 모를 아픔으로 꽉 메어 올 적이나, 내 눈에 뜨거운 눈물이 핑 괴일 적이나, 불현듯 화끈 낯이 붉도록 달아오를 적에는 술 속으로 뛰어든다. 인간은 깊은 밤에 자신의 내부와 영혼으로 침잠한다고 했던가. 내부로부터 발산되는 성찰의 빛을 만나고 싶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내 앞에 이름 모를 술병만 쌓여가고 있다. 지나고 나면 아쉬움과 슬픔이 밀려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어리석음은 계속된다.

오늘은 반성하는 낮은 자세로 봄이 움트는 시골길을 걷기로 했다. 숲의 길, 물의 길, 들의 길, 그리고 하늘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곳에서 탄생과 축복의 기쁨,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찾고 아름다움을 담으려는 것이다.

소동파는 "고기반찬 없으면 사람이 마를 뿐이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속물이 되기 싶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의 대나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인데 대자연을 벗 삼고, 여유로움을 즐기며, 줏대가 있어야 하고, 삶의 마디마다 좌절하지 않고 의연히 일어설 줄 아는 힘과 지혜의 미덕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길을 나선다. 마음속의 대나무 한 그루 키우기 위해 정처 없이 길을 나선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든 좋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가덕과 미원을 지나 미동산수목원을 돌아 속리산쪽으로 달리다가 청석굴 앞에서 멈췄다. 옥화구곡이 시작됨을 알리는지 물살과 햇살과 바람과 구름이 파르르 떨고 있다.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나무로 나타나는 수직과 강으로 드러나는 수평, 마을이 깃드는 자연의 운치와 강가의 소슬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갈대의 순정, 그 사이로 야트막하게 오름의 길과 밭과 논이 있고, 그 끝에 불끈 솟아있는 거대한 바위가 나의 길을 가로막는다. 쭈뼛쭈뼛 솟아오른 절벽을 따라 고개를 들어보니 그 끝은 다름 아닌 하늘이다. 하늘의 햇살이 어느새 물가에 내려앉아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툭툭 건드리며 심술이다. 버드나무를 보고 봄을 안다고 했던가. 마음이 투사된 생물을 보고 자연을 안다는 말인데, 버드나무는 아직 움트는 봄을 드러낼 준비가 덜 됐는지 쌀쌀맞다.

나는 또 궁금해졌다. 이곳의 풍경을 강호생 화가는 어떻게 화선지에 담을 것인가. 원과 직선, 농묵과 담묵, 빽빽한 밀密함과 느슨한 소疏함의 조화, 그 신명나는 붓질은 어떤 예술성을 잉태할 것인가. 저 깊은 곳에서 움트며 부풀어 오르는 봄내음과 생명의 소리와 그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화가는 불면의 밤을 보낼 것이다. 그 아름다운 아픔을 겪고 나면 '옥화구곡, 붓길따라 백리, 마음따라 천리'가 병풍처럼 펼쳐지리라.

청석굴을 시작으로 용소, 천경대, 옥화대, 금봉, 금관숲, 가마소뿔, 신선봉, 박대소로 이어지는 옥화구곡은 자연과 세월이 만들어낸 아름다움 그 자체다. 처처의 내밀함에 젖으며 또 다른 자연의 미학을 만날 수 있으니 대자연 속에 풍덩 빠져보고 자신의 낡은 허물을 벗어보자.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청석굴은 '솟음'이다. 운암리 하천을 우측 가슴에 품고 깊고 느리게 따라 들어가면 하늘 높이 솟은 장대한 바위가 반긴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인 찍개와 볼록날, 긁개가 발견되었다니 유목민의 혈을 느끼게 된다. 동굴 안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하늘에 대한 염원을 담은 인간의 곡진함을 생각하며 낡은 생각일랑 띠배 하나 만들어 흐르는 물살에 띄어 보내면 좋겠다.

용소는 '흐름'이다. 수심이 깊고 맑기가 구슬 같으며 용이 살았다는 곳이다. 용이 하늘로 오르려 하는데 지나던 여인이 그 모습을 보게 되고, 용은 영험에 부정이 타서 다시 이무기가 되었다는데, 이처럼 마을마다 용에 대한 신화와 전설로 가득하다. 흐르는 물살이 어린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던 자장가 소리로 들리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천경대는 '담음'이다. 수직으로 이루어진 절벽과 함께 달빛이 맑은 물에 투영되어 마치 하늘을 비추는 거울 같다고 해서 천경대로 이름 지었다. 사람의 마음도 담고, 자연의 풍경도 담고, 흐르는 물살도 담는 곳이니 이곳에서 잠시 숨고르기 하면 좋겠다.

천경대에서 약 300m 하류에 있는 옥화대는 옛날 조선시대 선비인 이규소 등 유학자들이 가을날의 달빛 아래 시심에 젖었던 추월정, 세상 모든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만경정, 마음을 닦고 씻는다는 세심정 등의 정자를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는 곳이다. 옥화리 개울가 절벽 위에 고목이 무성한 동산인 이곳은 들판에 옥처럼 떨어져 있다하여 옥화대라 이름 지었으며, 지조 있는 선비들이 아끼던 장소로 옥화9경 중에서도 대표적인 절경으로 꼽힌다. 하여 나는 이곳을 '여름'이라 부르겠다. 열매가 맺고, 열어젖히고, 열락悅樂의 공간이니 말이다.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금봉은 '피움'이다. 비단같은 봉우리에는 울창한 수목으로 가득하고 사계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꽃이 피고 녹음으로 우거지고 오방색 가을볕이 눈부시며 순백의 설경이 으뜸이니 계절마다 자연의 꽃이 피는 곳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금관숲의 비밀은 무엇인가. 바로 '스밈'이다. 하천을 끼고 수 천 평에 달하는 신비의 숲이 펼쳐져 있는데 햇살과 바람과 구름은 단 한 번도 이곳을 탐내지 않는다. 다만 숲속의 수많은 비밀들을 품고 스미며 스쳐갈 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룻밤의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사랑의 언약을 맺곤 하는데 이 또한 내 삶에 스미는 은밀한 곳이 아닐까.

혼인식을 마친 신랑 신부가 가마소뿔을 지나고 있었다. 신랑은 걸어갔을 것이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가지 않았을까. 수많은 고갯길을 지나왔기에 기력이 빠질대로 빠졌을 것이고 잠시라도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신랑은 집이 코앞이니 서둘러 가자며 가마지기를 보챘는데 갑자기 가마가 흔들리더니 물속으로 빠져 신부가 죽었다. 이를 애통해 하는 신랑도 함께 뛰어 들어가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 그래서 이곳은 '젖음'이다. 전설에 젖고, 물살에 젖고, 슬픔에 젖는 곳이다.

그러니 신선봉은 '누빔'이다. 신선이 해발 630m인 이 봉우리에서 자연을 벗삼아 누비며 풍류를 즐겼기 때문이다. 계곡이 큰 바위로 이루어져 가만히 있으면 바위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때문에 그곳을 찾는 누구라도 절로 신선이 되는 듯한 곳이다. 나도 이곳에서 잠시나마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누비리라.

옥화9곡의 마지막 절경인 박대소는 '펼침'이다. 비취빛의 호수와 붉은 숲의 비밀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다. 에두른 절경 위에서 호들갑 떨던 나그네도 어느새 치유의 공간을 서성이게 되는데 꽃 피는 계절에는 잎잎의 열어젖힘에 눈물 나고,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호수도 푸른 여름에는 물길과 숲길과 별길을 따라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한다. 낙엽지는 가을에는 각다분한 삶의 찌꺼기를 툭, 털어버리는 지혜를 낙엽에게 배우며, 겨울에는 도열한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차가운 정신과 뽀드득 뽀드득 설경이 내게 말을 건넨다.

그리하여 옥화구곡은 사계절 낮고 느리게, 깊고 진하게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굽이치는 강과 기암괴석과 숲이 장관이다. 그 속에 신화와 전설이 세월을 품고 있으니 호수를 보며, 숲 사이로, 이야기를 따라 걸으면서 호사를 누리면 어떠한가. 나는 소망한다. 화양구곡에 자연친화적인 힐링의 100리길, 스토리텔링의 100리길을 만들어 다양한 이야기와 문화가치가 조화롭고 호흡하며 대자연의 푸른 기운을 온 몸으로 건져내면 좋겠다. 아름다움으로 물결치는 자연의 빛과 결과 향을 내 마음 마디마디에 흩뿌리면 더욱 좋겠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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