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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Ⅹ- 초정약수

세종대왕 힐링100리길…물길따라 예술의 길
세종의 숨결을 음미하는 스토리텔링의 미학

  • 웹출고시간2013.04.21 16:20:2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강호생
세상 사람들은 초정리 하면 약수터부터 떠올린다. 세계 3대 광천수 중의 하나로 세종대왕이 안질 치료를 위해 117일간 머무르시던 곳, 그리고 톡 쏘는 알싸한 물맛이 일품인 곳, 약수목욕을 하면 한 여름 더위를 거뜬히 견뎌내고 땀띠 같은 피부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초정리는 아름답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새겨져 있는 곳이다. 사립문만 열면 산과 계곡, 들과 냇가, 오솔길과 하늘의 오색 찬연함을 만날 수 있다. 하여 초정리 사람들은 저마다 꿈을 안고 꿈을 실천하며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전화기와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에는 초롱불 아래 옹기종기 모여 단아하고 정감 있는 삶을 이야기 했다. 그곳에는 언제나 고단하지만 희망을 끈을 놓지 않는 초정리 사람들의 열정이 있었다. 그들만의 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그 시대, 그 시절엔 대한민국 시골 구석구석이 아름답고 저마다 소중한 삶의 매트릭스가 아니었느냐고.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초정리에는 다른 시골에서 맛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함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우선 초정리는 스토리의 마을이며 한국사의 중심에 서 있는 뿌리 깊은 고장이다. 초정리를 감싸고 있는 소백산맥의 능선을 걷다보며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들려주던 신화와 전설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 지금도 구녀성이 문명의 이기를 등진 채 을씨년스럽게 남아있다. 어린 시절, 찢어진 문풍지 사이로 초승달이 밤하늘을 지키고 뒷산에서 부엉이 소리라도 들려오면 겁에 질린 소년은 할머니 치마폭 속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다정하고 구수한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밤을 지새우거나 스르륵 꿈결 속으로 빠진 적이 어디 한 두 번 이었던가. 할머니가 들려주던 구녀성의 전설, 호랑이 소리로 밤잠 설치게 한 산골짜기 마을, 서낭당 고갯마루 이야기, 수백년 묵은 노송과 느티나무에 얽힌 신화와 전설…. 이렇게 초정리는 스토리텔링의 미학을 품고 있다.

ⓒ 홍대기
인근의 운보의 집은 또 어떠한가. 세 살 때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은 운보의 일생은 귀먹고 말 못하는 장애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위대한 인간승리였다. 18세 때인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이래 선생은 '침묵의 심연' 속에서 무려 1만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더욱이 운보는 10년을 주기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혁신하는 놀라운 청조성과 활화산 같은 정열을 보였다. 세필細筆에서 시작해 한국 산하의 정기를 수묵水墨의 농담濃淡과 단순한 색상으로 힘차게 그려낸 '청록산수', 조선시대 민화의 정취와 익살을 대담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바보산수'를 거쳐 말년의 '걸레그림'에 이르기까지 실로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붓가는 대로 넘나들었다. "바보란 덜된 것이며 예술은 끝이 없으니 완성된 예술은 없다. 그래서 바보산수를 그린다"고 했던 운보의 말씀은 대가의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쏟아지는 세상의 소리를 붓끝으로 담아낸 운보의 예술혼을 만나고, 자연미학을 온 몸으로 담아낼 수 있다.


구녀산에서는 아침마다 맑고 진한 햇살이 쏟아졌다. 전설처럼 능선과 계곡 모두 아홉 여인의 몸매를 닮아서 길고 가는 허리, 도드라진 엉덩이, 크고 작은 굴곡, 그 아래로 여러 개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고 샘물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때묻지 않은 농경의 마을을 만들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이 땅의 임금 중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은 한글창제의 과업을 몰두하던 중 안질병이 걸리자 초정리에서 행궁(行宮)을 짓고 한글창제를 완성하지 않았던가. 세종은 인재를 바르게 보고 선택하는 능력이 탁월했으며 문학 예술 과학 분야에서 왕성한 업적을 일구었다. 당신의 지혜와 열정, 당신의 영감과 슬기가 느껴진다. 배유안의 장편동화 <초정리 편지>는 세종이 한글창제 이후 병 치료와 한글보급을 위해 초정리를 방문해 산과 들을 벗삼고 초정리 사람들과의 아름답고 가슴 아픈 삶의 이야기와 호흡하며 지냈던 것을 스토리로 삼고 있다. 변광섭은 <생명의 숲, 초정리에서>라는 책에서 "시원하고 달차근한 게 아주 좋다"며 초정리 맑은 물을 예찬하고, "가지나물과 된장을 반찬으로 밥을 꿀처럼 달게 먹었다"며 서정이 철철 넘치는 초정리 풍경을 소개했다. 익히 알려진 사실에 바탕하고 있음에도 끝까지 흥미로움을 놓지 못하게 한다.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스토리텔링 시대에는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야 하는데 초정리는 이 땅의 성군 세종대왕과 이 땅의 문자 한글과 이 땅의 생명 약수를 갖고 있으니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인가. 프랑스 남부의 산악지대에도 톡 쏘는 물맛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로마 제국 시절에 카이사르 병사들은 이 물을 마시고 갈증을 풀었으며 병까지 치료했는데 세월이 흐른 뒤 의사 페리에가 우물가를 발견하고는 병에 담아 팔기 시작했다. 톡 쏘는 물맛과 질병 치유 성분의 과학적인 분석, 그리고 역사적인 스토리를 조화시켜 마케팅 해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 홍대기
초정리 산천은 로렐라이 언덕의 추억과 서정보다도 아름답다. 사계절 마르지 않는 샘물이 그렇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투지 않고 서로 보듬어 주는 기와집 초가집 함석집이 그러하며,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물과 시냇물 또한 그러하다. 아침 햇살과 저녁노을이 서로 다르지 않고 논과 밭, 계곡과 능선이 다르지 않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로 살며 사랑하는 미덕 또한 치사하고 비루한 세속의 그것과 견줄 수 없다.

초정리 사람들은 순수하다. 맨몸으로 풍랑과 맞서보지도 않고 내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한 세상 사람들의 이기와는 견줄 수 없다. 맑고 고운 햇살, 정겨운 산하, 알싸한 약수, 붉게 물든 석양을 닮았으니 상처받은 사람이여, 초정리 풍경, 초정리 수채화를 가슴에 묻고 새로운 기운을 받아라.

ⓒ 홍대기
초정리 사람들은 뜨겁게 살아간다. 초정리 인근에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며 평생을 조국의 평화와 독립을 위해 싸운 분들이 많이 있다. 단재 신채호선생, 의암 손병희선생, 의병장 한봉수선생…. 필자의 할아버지도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데 내가 두 눈으로 확인한 것도 아니고 들은 얘기일 뿐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분명한 것은 초정리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뜨겁고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는데 초정리는 물도 진하고 피도 진하고 산천초목도 진하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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