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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Ⅸ - 상당산성

세종대왕 힐링로드 100리길 1
역사와 생명과 문화의 숲길을 자박자박 걷다

  • 웹출고시간2013.04.14 18:34:0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청주시, 청원군, 증평군 3개 시군과 청주시문화재단이 지역 균형발전 연계협력 사업으로 '세종대왕 힐링 100리길' 프로젝트를 전개한다. 올레길, 둘레길 등 한반도가 길 열풍인 가운데 기존의 길은 숲과 계곡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세종대왕 힐링 100리길'은 상당산성의 숲길, 초정리의 물길, 증평 율리의 들길을 연결하고 이곳에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가 스밀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신화와 전설, 자연과 생태, 농경과 삶의 이야기를 다양한 문화예술의 장르로, 문화콘텐츠로 특화하는 사업이다. 이에 <즐거운 소풍길>에서는 3회에 걸쳐 100리길을 소개한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멀어져간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는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꽃들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류시화 '길 위에서의 생각'

산성에 오르기 전에 류시화님의 글을 읽었다. 한 주간의 삶에서 탈출할 요량으로 주말마다 찾는 산성인데, 오늘은 꽃들의 만찬, 새들의 합창, 햇살의 눈부심, 바람의 싱그러움으로 몸과 마음이 호사한다. 기나긴 겨울의 북풍한설을 딛고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온 몸이 부르르 떤다. 오르가즘을 느낀다. 꽃들은 이처럼 군말 없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데, 나는 구차한 일상의 연속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고 있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던적스럽고 진땀나는 도심을 탈출하기 위해 산성을 찾고, 그 때마다 대자연이 주는 진한 향기에 취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데, 미안하다. 나는 너를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이렇게 봄이 가면 산성의 여름이 올 것이다. 태양도 붉고 햇살도 붉고 초록의 잎새에 숨어 있는 열매도 붉다. 하여, 여름은 정열의 계절이요, 합창의 시간이요,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춤추는 축제의 장이다. 봄꽃이 만발하던 그 곳에 초록의 잎들이 무성하더니 장마와 햇살과 바람과 구름이 한바탕 광란의 춤사위를 펼친 후 숲속은 푸른 먹물을 보는 것처럼 진하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이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발 닿는 곳마다, 눈길 마주치는 곳마다 붉은 열매가 가득하다. 푸른 숲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아, 낙원이 따로 없다. 시원한 계곡물의 낙수소리, 햇살과 바람 부서지는 소리, 그 소리에 더욱 빛나는 크고 작은 잎새들과 산새 들새들의 날렵한 몸짓은 얼마다 기운차던가. 붉은 열매는 그 속에 숨어서 빛났다. 달고 떫은맛의 보리수, 통통하고 수줍어 붉게 웃는 달차근한 맛의 산딸기, 작고 몽글한 붉은 열매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려있는 복분자와 통통하게 익어가는 머루, 그리고 햇살에 그을려 붓질한 것처럼 검게 익은 까마종…. 딸아이는 그것들을 보면서 "어머, 색깔이 오고 있어, 색깔이…"라며 예쁜 비명을 지르지 않았던가.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산성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약수터에서 오르는 길, 옹기박물관에서 시작하는 길, 양궁장을 등지고 떠나는 길, 상리에서 출발하는 길 등 앞 선 사람들이 흔적을 만든 곳이라면 그 어느 곳도 마다않고 오르고 또 오른다. 꽃피고 녹음 우거지고 단풍들고 흰 눈 쌓여 칼날 같은 바람 부는 그날도 어김없이 산성길을 향하고 있었다. 아니, 산성길을 걷는 게 아니라 비루하고 던적스럽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물욕의 세상을 피해 자연의 길을 자박자박 밟고 있는 것이다. 계곡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뭇잎 햇살 부서지는 소리에 내 마음 기대고, 흰구름 뭉게구름 비구름을 벗 삼고, 산성 아래에 펼쳐져 있는 도시까지 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모두 내 것이다.

그렇다. 숲의 또 다른 이름은 새로움이요 신선함이다. 그래서 숲 속의 모든 생명들에게 귀 기울이면 '수글 수글~' 혹은 '숙울 숙울~' 소리만 있을 뿐이다. 맑고 깨끗한 숲속의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이며 새소리 바람소리인 것인데 이 동네 사람들은 숲을 '수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산성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성곽의 오래된 이끼 속에 숨어있는 역사의 숨결 때문이 아닐까. 일찍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에 상처입고 정여립의 난, 이괄의 난, 이인좌의 난 등 각종 변란의 중심에서 한 발짝 물러서지 않았던 저 지존을 보라. 한성으로 연결되는 길목이기 때문에 선비들이 이곳에서 잠시 여정을 풀기도 했을 것이고 주막에서 걸쭉한 막걸리 맛에 시름을 덜기도 했으리라. 팔도의 소식이 궁금한 사람들과 파발마도 이곳에서 여흥을 즐기지 않았을까.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산성은 지금 곡절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어느 시대에서도 큰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시리고 아픈 삶의 이야기를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산성에 오르면 자연의 신비로움과 역사의 깊은 맛에 마음까지 숙연해 진다. "야~호~"하고 큰 소리로 외쳐보라. 메아리가 없다. 묵묵부답이다. 습하고 어두운 이끼 속으로, 솔잎 속으로 힘없이 밀려들어가고 만다. 아, 한 많은 사연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래서 산성은 신비스럽고 매력이 넘치는 것이다.

나는 산성의 사계를 닮고 싶다. 깊고 푸르며 아름다운 삶, 나만의 분명한 색깔을 갖고 있으면서도 인내하고 베풀 줄 아는 미덕, 드넓은 세상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는 열정을 갖고 싶다. 일찍 파는 꽃은 남의 눈에 쉽게 보일 수 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했다. 늦게 피더라도 야무진 열매로 남고 싶다. 세상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지금 산성에는 시린 바람 속에서도 햇살 쏟아지는 소리, 붉은 꽃망울 흩날리는 풍경이 밀려온다. 산성으로 달려가 아침햇살을 한 움큼 입안에 넣고 싶다. 새로운 희망, 새로운 에너지로 등목이라도 하고 싶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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