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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2.13 20:55:02
  • 최종수정2014.02.13 20:55:02
ⓒ 홍대기
손풀무를 돌리는 빠른 손놀림에 불길이 일어난다.

숯을 피운 화로에 인두를 달구어 적정온도에 이르면

인두를 든 김영조장인의 손이 화지 위를 오간다.

그의 손길을 따라 미묘한 농담과 질감으로 낙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소금이 자신을 녹여 맛을 내듯, 김영조장인은 마음을 태워 낙화를 그린다.

낙화(烙畵)란 종이, 나무, 천, 가죽, 박 등의 재료 표면을 인두로 지져서 그림이나, 글씨, 문양을 쓰거나 그리는 전통예술이다. 우리나라 낙화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18~19세기 박창규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추사 김정희는 박창규를 높이 평가하여 화화도인(火畵道人)이라는 당호를 지어 주었다. 추사 이외에도 조선후기 시와 서예에 뛰어났던 김석준은 "붓과 먹을 씻어서 그 인연을 떨쳐버리고 쇠를 불에 달구어 참된 그림의 형상을 이룩하였다. 그 공법의 치밀함을 다하고 그 뜻 더욱 첨예하고 새롭다. 그가 목판에 부처를 낙화함에 그 솜씨 능숙함을 보고 도인임을 깨달았다. 낙화를 잘 그려 우리나라의 특기가 되었다"며 극찬했다.

ⓒ 홍대기
만약, 추사 김정희나 김석준 등의 조선 문예가들이 생존해 있다면 박창규 화화도인에게 했던 평가와 극찬을 했을법한 사람이 있다. 그는 낙화의 명맥을 잇고 있는 낙화장 김영조(충청북도 무형문화재 22호)장인이다. 학창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틈만 나면 산수화의 모본을 보고 연습했다. 각종 미술대회에도 입상했지만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 되어 전창진의 낙화연구소를 찾아가 낙화를 배웠다. 밤낮없이 노력하여 5년 후에는 대구광역시 대동화백화점 화랑에서 첫 전시회도 가졌다. 당시 낙화를 거의 알지 못하던 관람객들은 생소한 그림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았다. 이후, 일본에서 관광 붐이 일자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도 제작, 판매하였다. 관광기념품이 거의 없던 당시에는 인기가 높아 판매가 잘 되었다. 계속 관광지를 떠돌며 낙화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사계절 관광객이 끊이지 않던 속리산 아래에 정착해 기념품점을 열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낙화기념품은 잘 팔렸고 지금의 '청목화랑'을 여는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청목화랑'은 속리산 자락에 있는 버섯모양 황토집으로 그의 낙화작품 전시장이며 작업실이다.

ⓒ 홍대기
예술혼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상품과 작품은 구별된다는 생각에 고민하던 그는 결단을 내렸다. 생활의 방편으로 하던 사업은 가족이 운영하기로 하고 오직 낙화에만 온 힘을 쏟기로 한 것이다.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 전통회화와 낙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그림을 감상하고 연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나무에 낙을 하는 것과 종이에 낙을 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숱한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종이에 마음대로 낙을 표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혼신의 힘을 다한 노력은 헛되지 않아 2007년 전승공예대전에 산수화 병풍의 출품을 시작으로 각종 대회와 공모전에서 수상하였다. 연구를 거듭하여 낙화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그의 2007년 작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과 '석굴암 11면 관음보살상'에선 화강암의 질감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인두의 촉으로 수백만 번 크고 작은 점을 찍어내는 중점법을 사용했다.

ⓒ 홍대기
그 밖에도 2009년 전승공예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8m의 '낙화 촉잔도 12폭 병풍' 등 40여 년 동안 낙화만을 그려 온 그의 수많은 작품이 있다. 그의 작품은 선익지와 기름으로 유지를 만들고 유지에 유탄을 고루 입히는 것에서 앵두부리인두로 화제를 쓰고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약 19단계를 거친다. 끊어질 위기에 처한 낙화를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왔던 그에게도 사람의 손으로 하는 작업은 끝없는 인내와 정진을 요구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예술혼을 담는 고된 과정이 있었기에 그의 작품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이런 집념을 알아본 충청북도에서는 2010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그의 낙화는 독창성을 인정받아 오는 5월 아솔로 비엔날레에도 참가한다. 지난해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20일 동안 6m의 대작을 시연할 때 솜씨에 반한 이탈리아 아솔로 측의 초청이다. 전수자인 딸 유진씨도 동행하여 한국의 멋과 예술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김영조장인은 "낙화는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예술성이 높아 회화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아솔로 비엔날레를 통해 입지를 더 넓혀 나갈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세계를 향한 뜨거운 그의 발걸음은 낙화처럼 변하지 않을 가치로 새겨 질 것이다.

오늘도 그는 작업실에서 불타는 예술혼으로 낙화에 정진하고 있다. 태움의 미학을 위해…….

글·사진=홍대기(사진작가)·이옥주(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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