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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7.17 19:52:04
  • 최종수정2014.07.17 19:52:04
작은 것 하나에도 지극한 정성을 다하며 기본이 되는 닥나무의 뿌리부터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지난 5월 속리산 입구에 있는 美갤러리에서 이종국 작가의 한지공예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팸플릿을 보면서 궁금증이 생겨 그 후로 몇 번 더 전시회를 보러갔다.

한지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닥풀과 황촉규액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 사진=홍대기
한지는 주원료인 닥나무와 부원료인 황촉규액으로 만들어 진다.

일명 '닥풀'로 불리는 황촉규액은 황촉규 뿌리를 빻아 나오는 누런색의 점액질이다. 이 점액질의 황촉규액이 바로 섬유가 지통에 가라앉지 않고 물속에 고루 퍼지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종이를 뜰 때 섬유가 결합되게 하는 분산제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황촉규액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분산제로 쓰이는 것은 닥풀"이라고 했다.

그때, 한 소년이 "황촉규액이 맞다"며 이야기를 거들었다. 그 소년은 다름 아닌 이종국 작가의 아들 선우였다.

ⓒ 사진=홍대기
이 작가는 전통방법 그대로 한지를 복원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벌랏한지마을을 찾았다. 그렇게 시작된 벌랏마을 한지와의 인연은 올해로 20년에 이른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한지를 만들던 마을이지만 점점 수요가 끊기면서 사람들은 점점 한지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전통방법 그대로 한지를 재현하는 것이 친환경적이고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곳에 와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 사진=홍대기
그것은 한지가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을 때까지 멈추어 있던 2년의 시간이다. 고민하는 그에게 마을 사람들은 "한지를 만드는 것은 환경을 해치지 않는다"며 "옛날에는 도랑에 가재도 많이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방법을 알 수 없었던 그는 당시 고문헌을 토대로 쓴 한지연구에 대한 책을 전해 받았다. 그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내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돼 부부의 연을 맺고 아들 선우가 태어난 것이다.

'대를 물려 가업을 잇는다'는 의미를 이 작가의 아이 선우에게서 볼 수 있었다. 무심한 듯 앉아있던 아이는 한지에 관한 어른들의 대화가 '황촉규액' 때문에 의견이 분분해지자 알고 있는 핵심을 말해준 것이다. 우리는 늘 배우고, 그 배움은 어린아이에게서도 온다. 선우는 그것을 깨닫게 했다. 아버지의 일로만 보이는 한지 제작이 선우에겐 생활이었던 것이다.

ⓒ 사진=홍대기
이 작가와의 첫 만남은 독일전시회를 마치고 막 한국에 들어 온 때였다. 독일의 교육과 한지에 대한 그들의 반응에 놀랐다고 했고, 우리 종이의 스미는 문화와 교육적인 부분에 대해 우리종이가 할 역할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현대적인 경계와 단절을 해결 할 도구로 종이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종이와 교육을 결합하여 고민하는 그에게서 다음세대를 향한 무한한 애정을 읽을 수 있었고, 그 중심에 선우가 있었던 것이다. 종이는 어디에나 스며들고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재료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증명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평면과 입체를 가리지 않는다. 창조적인 순수예술의 영역과 현실적인 실용성의 영역에도 부합된다. 처음부터 관심을 끌었던 팸플릿에는 그런 그의 작품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의 작품 '한지로부터'에는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넉넉해지는 종이, 종이로 규정짓기에도 조심스러운 우리 종이부터 그것을 재료로 한 다양한 작품이 등장한다.

"한지로 만든 종이항아리와 그릇- 물질을 담다. 한지로 만든 부채- 바람을 담다. 한지로 만든 등-온기와 빛을 담다. 닥나무로 만든 딸랑이- 소리를 담다."로 나누어 각각의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기존의 한지가 생각을 담는 도구였다면 이 작가의 한지는 기존 사고의 경계를 넘어 한지 작품의 종류와 쓰임에 지평을 넓히고 있었다.

이른 봄 올라오는 애기똥풀, 씀바귀, 개망초, 이름을 다 열거하기 어려운 들풀을 우려 물들인 종이로 만든 작품들은 그렇게 전통과 미래를 이어가고 있었다.

벌랏마을의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는 한지공예를 배우는 후학들이 여럿 있었고 그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 없이 우리종이로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 사진=홍대기
"누군가 그 일을 했다면 나는 작품 활동만 했겠지요. 아무도 하지 않은 그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뿌리임을 알기에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누구나 처음 가는 길은 험난하고 힘들다. 된다는 확신보다 그게 되겠느냐며 부정적인 조언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처음 길을 열어가는 사람은 이익보다 가치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다. 개척자정신의 올곧은 사람만이 뒤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간다.

이 작가는 멀리 미래의 가치를 바라보며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사람이었다. 그의 정신은 작품에도 그대로 담겼다.


그의 작품에는 맑고 순수한 기운이 넘나들고 머물고 흐른다.

그 기운은 작품을 소장한 사람에게도 전해진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어느 작가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고 영감이 떠올라 글이 잘 써 진다"고 했다.

이 작가는 "그것은 자연이 주는 선물일 것"이라고 겸허하게 말했다. 그가 처음 벌랏마을을 찾았을 때 90세에 가까운 한 노인이 감나무를 심으며 "내가 이걸 먹으려고 심는 것 같으냐"고 물었단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다음세대를 향한 것이었고 그러한 선순환을 통해 지역사회와 문화가 지탱되어 왔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얘기를 하는 자신의 눈빛에 당시 노인의 생각을 담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를 것이다.

이 작가가 꿈꾸고 후학들과 다음세대가 꿈꿀 미래가 안정적이고 거침없는 미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수천 년을 이어갈 인재와 우리 민족의 미래가 그 속에 있을 테니 말이다.

/글·사진=홍대기(사진작가)·이옥주(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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