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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아름다운 놋그릇 - 유기장 박갑술

전통 주물유기 제작 60여년 외길인생 고집
일흔 넘은 나이에 1천200도 넘는 쇳물 제압
"일반인 체험 전수관 건립이 마지막 바람'

  • 웹출고시간2014.01.16 20:33:35
  • 최종수정2014.01.23 19:47:15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다가온다. 설은 우리들에게 설렘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숨이기도 하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랬다. 내 기억 속에 설 명절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새파랗게 녹이 쓴 놋그릇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 반나절 동안 그릇을 닦아 내던 그런 날이었다.

할머니는 부엌 선반위에 잔뜩 녹이 쓴 놋그릇을 멍석 깔린 마당 한가운데로 끄집어내신다. 그러고는 어머니와 마주앉아 짚으로 기와가루를 뭍혀 황금색 광이 나도록 그릇을 닦아 내신다. 닦여진 놋그릇은 마치 거울과도 같아서 하얀 광목천으로 마른행주질을 하면 사물이 훤하게 비쳤다. 그런 다음 할머니는 행여 손자국이라도 남을 새라 닦고 또 닦아 선반위에 가지런히 엎어둔다.

설 당일, 제상 앞에는 번쩍번쩍 광이 나는 놋그릇에 메가 담기고 탕이 오른다. 촛불을 의젓하게 꽂고 선 촛대에서도 윤기가 흐른다. 반질반질 잘 닦인 놋그릇은 달빛에도 광이 났다.

닦으면 닦을수록 윤기가 나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윽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놋그릇은 음식의 온도유지나 살균작용이 탁월하다. 놋수저는 농약이나 독성에 닿으면 까맣게 색이 변하니 여기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놋그릇이 찾아보기 어렵게 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제시대에 놋그릇의 원료를 군수용품 제작에 사용했기 때문에 가정집의 놋그릇까지 모두 회수 대상이 됐다.

또 다른 이유는 6.25전쟁이다. 피난으로 인해 무거운 놋그릇을 버리고 가벼운 양은그릇을 선호하게 됐다. 아궁이대신 연탄보일러로 바뀌면서 연탄가스가 놋그릇을 산화시킨다고 해 차츰 생활에서 멀어지게 됐다.그러나 유행은 돌고 도는 법. 고급음식점이나 혼수용으로 놋그릇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놋그릇 만들기에 60여년 외길인생을 고집해 온 이가 있다.


끓는 쇳물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주물유기를 제작해온 박갑술(충북도 무형문화재 24호) 장인이 그다. 경북 김천출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부친이 운영하는 유기점 일을 돕기 시작해 지금까지 유기장의 길을 걷고 있다.6.25전쟁이 발발하고 밥그릇까지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던 사람들은 서울 수복 후 차츰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그릇 등 생필품에 대한 구매를 늘려 유기그릇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던 박 유기장은 부친과 함께 고향을 떠나, 1962년 충주에 사업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줄 곳 쇳물과 한평생을 함께했다. 그래서 일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1천200도가 넘는 쇳물을 달래고 제압해 최고만을 고집한다. 그의 손에는 늘 쇳물을 제압할 수 있는 도가니와 집게가 들려있다. 암틀(거푸집)과 수틀에 흙을 넣어 다지는 틀 다지기 작업부터 틀에서 다져진 흙을 빼내 빈자리에 관솔을 이용해 그음질하기, 그음질 한 후 쇳물(구리 78%+주석 22%) 붓기, 부은 쇳물이 굳은 기물(그릇) 꺼내기, 꺼낸 기물을 소금물과 일반 물에 차례로 담그는 담금질 작업, 담금질 작업이 끝난 기물을 가질 틀 위에서 깎는 작업 등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1시간 남짓 장인의 손을 거친 유기는 비로소 아름다운 금빛자태를 드러낸다. 박 유기장은 이 모든 과정을 전통방식 그대로 고집하고 있다. 특히 유기가 광이 나도록 깎는 작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계가 바로 가질 틀인데, 그는 이 가질 틀을 조선시대부터 사용해 오고 있는 전통 방식대로 제작, 사용하고 있어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재 전통 가질 틀을 사용해 주물 유기작업을 하는 이는 충북에서는 박 유기장이 유일하다. 한때 스테인리스 그릇 등이 대량 생산되면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기도 했으나 산업화라는 거센 물결도 박 유기장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오직 전통 유기 제작이라는 외길 인생을 걸어 온 그의 마지막 바람은 "유기 제작 과정을 일반인이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전수관을 건립해 전통의 맥을 잇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운겨울, 꽁꽁 언 몸을 추스르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방 아랫목 이불속에 밥이 들은 놋그릇이 묻어놨다가 꺼내주시곤 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뜻한 밥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다. 그 놋그릇 떠난 님이 그립듯 놋그릇에 수북이 담은 밥그릇처럼 따뜻했던 어머니의 사랑이 새삼 그리워진다.

시대는 변하지만 빈 그릇을 젓가락으로 치면 길게 울렸던 악기 같았던 놋그릇 거기에 음식을 담아먹고 살았던 시절이 지금은 멋진 추억이 되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음악처럼 들려온다.


글·사진=홍대기(사진작가)·이옥주(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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