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군 금왕읍 본대리에 '버니'라는 마을이 있는데 자연지명으로 보기에는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떤 말에서 비롯된 것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본대리는 본래 충주군 법왕면의 지역인데 고종 광무 10년(1906)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본리(本里), 응대리(鷹岱里), 후평리(後坪里)와 금목면 장현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본리와 응대의 이름을 따서 본대리라 하고 금왕면에 편입되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서 응대리(鷹岱里)는 자연 지명인 '매터골'을 한자로 기록한 것이며, 후평리(後坪里)는 자연지명 '뒤뜰'을 한자로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본리(本里)'는 자연 지명 '버니'를 한자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한자어로 '본리(本里)'라 표기한 것을 구전으로 전해지다 보니 발음하기 쉽도록 '버니'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본리(本里)'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이름일까? 금왕읍 본대리의 '본리(本里)'는 충주군 법왕면의 면소재지였던 마을이다. 조선 시대에는 면(面)이라는 행정구역을 정하면서 면의 행정관서가 있는 마을 즉 면소재지인 마을을 가리켜 '면의 근본이 되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전국 각지에서 폭염으로 인한 온열 질환 사망자 관련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가운데 야외활동이 많으신 농촌지역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 마음이 좋지 않다. 폭염에 제일 취약하고 위험한 대상자로는 고령의 어르신과 독거노인 및 야외 근로자, 만성질환자 등이 있다. 도시와는 다르게 농촌지역의 어르신들은 농촌활동 및 야외활동이 활발하며 대부분 독거노인들로 고혈압, 당뇨 및 심 뇌혈관 질환을 앓고 있어 특히 위험하다. 또한 지역 내 가정 방문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전기 요금이 아깝다며 절약이 습관화가 되어 있어 요즘 젊은 인구가 많은 도시와는 다르게 가정 내에서는 한낮에도 에어컨도 켜지 않고 계시는 경우가 많고, 또한 자동차가 없으셔서 볼일이 있으실 때 한낮에도 먼 길을 걸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 여름에도 할 일이 많으시다고 자녀분들 챙겨주시고 생계와 관련해서 본인 몸이 불편하신 줄도 모르고 농사일을 막무가내로 하시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고 어르신들의 살아온 삶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안타깝다.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가장 더운 12~17시의 시간에는 농촌 야외활동을 자제하도록 당부드리고 있다.
학창 시절, 시골에 살면서 기차로 통학하던 때가 있었다. 규모가 큰 역은 아니었다. 주로 시멘트를 실은 화물열차가 길게 늘어진 짐칸을 달고 다녔고, 승객용 기차는 소박한 통일호였다. 탈 때마다 자주 찾았던 자리는 맨 뒤쪽 다른 객차가 연결되지 않아 시야가 훤했던 곳이었다.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출입문을 잠그지도 않았으므로 더운 계절이면 시원한 바람으로 인기있는 곳이기도 했다. 몇 정거장을 오가는 동안 그곳에 서서 밖을 바라보는 시간은, 특별한 장면은 드물었어도 새로웠다. 기차 뒤쪽에서 바라보면, 풍경은 달리는 속도만큼 멀어지는 동시에 끊임없이 다른 것이 자리를 채운다. 새로운 풍경 역시 똑같은 과정을 거치며 이내 멀어지다가 찻길이 굽어지기라도 하면 가뭇없이 사라지고 만다. 기차 바퀴가 만드는 규칙적인 리듬에 따라 차곡차곡 진행되어가는 그러한 광경에 한눈을 팔다 보면 어느새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곤 했다. 그런 중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어떤 장면은 마음 어딘가에 저장된 듯 남아 문득문득 되살아나기도 했다. 반복되는 일상의 기억처럼 눈에 들어왔다가 자취가 사라지는 것들과 달리, 뭔가 강렬함이 있는 장면들은 생각의 수면 아래로 스며들었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면…
더 나은 미래는 무엇을 의미할까?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우리가 살아갈 나라가 20년 30년 후에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아지고 풍요롭고 안전한 나라가 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근래의 시사 프로그램 주제를 보아도, 주위 사람들과 대화해 보아도 미래가 더 밝고 더 나아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위에 상술한 '더 나은 미래'의 정의에 대하여 대다수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해 보이는 문구라고까지 느낄 것이다. 문제는 어떤 방법(수단)을 통하여 '더 밝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한국은 분열된 나라이다. 사실보다는 각자의 당위성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인간을 타락시키는 물신주의 현상도 더욱 만연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언젠가 읽었던 책의 문구가 생각난다. "과거의 사건들은 여러 형태로 후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라는 명제이다. 나의 시선이 닿는 곳은 한국 현대사(해방 이후)이다. 그 전의 역사적인 사건들은 한글 창제를 빼고는 현재를 살아가
살아가면서 여행만큼 반전이 일어나기 쉬운 것은 없는 것 같다. 대개 여행을 하려면 미리 계획을 세운다. 어디를 어느 기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체험할 지를 생각해서 일정표를 만든다. 외국여행, 특히 패키지여행은 그 특성상 세밀한 시간표가 필요하다. 이러한 일정표가 짜이면 여행은 그 일정대로 진행된다. 그런데 그러한 단체여행 말고 개인적인 여행까지 세세한 일정계획이 필요할까. 나는 여행을 좋아해서 혼자든 여럿이든 기회만 되면 자주 가는 편이다. 대개 여행일정은 큰 계획, 즉 당일 여행, 또는 몇 박 며칠의 여행을 할 건가 결정되면 교통편과 숙박할 곳을 먼저 결정하고 나머지는 여행기간에 가 볼 수 있는 분량에 맞추어 몇 군데를 정하고는 별도의 세세한 시간표는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선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가는 여행인데 또 무언가에 매이게 될 수 있어 여행의 맛을 별로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번개 여행을 다녀왔다. 집사람의 알바처에서 예정에 없던 휴가를 쓰게 되어 번개모임 같은 여행을 한 것이다.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 집에서 2시간 이내 거리인 안동을 1박 2일로 가보기로 했다. 숙소만 안동시내에 예약하고 하
24절기가 망종(芒種)에서 하지(夏池)를 관통하던 6월 중순의 어느 하루,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의 선진농업 사례를 살피고자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쩌면 우리 시 농업에 부족하고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채워보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공직에 몸을 담고 나가는 첫 국외출장인 만큼 설렘도 있었지만 30여 명에 달하는 농업인단체연합회 연수단을 이끌어야 했기에, 아릿한 부담감과 책임감이 몸을 감싸 적당한 긴장감이 유지됐다. 4박 5일 일정의 첫 시작은 홋카이도의 '호쿠렌 쿠루루노모리' 복합농촌체험공간. 소비자가 농산물의 파종·수확·판매 나아가 조리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한 곳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됐다. 도심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도농경계지역에 위치해 접근성을 확보했다. 발 디딜 틈 없이 모인 사람들 속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농촌레스토랑이었다. 모든 식재료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활용되며, 소비자가 구입한 농산물로 직접 음식을 할 수 있도록 레시피를 무료로 나눠 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당일 수확한 농산물에 출하자 정보를 기재해 직매장에서 바로 판매하는 구조는 신선도를 유지함과 동시에 농산물에
인간은 자연을 벗어나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 자연이 무상으로 공급해주는 공기와 물을 한순간도 마시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인간이 불을 발견한 후로 인류문명은 크게 발전해 왔다. 우리 조상은 집안에 불이 꺼지면 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기에 이사를 할 때 불씨를 담은 화로를 가장 먼저 들고 들어갔다. 이렇게 인류문명에 반드시 필요한 불이 작은 불씨가 살아나 대형 산불로 번져 화마(火魔)가 되어 산림과 산속의 문화재인 사찰을 잿더미로 만드는 재앙이 크나큰 재난으로 인간에게 다가 온다. 매년 여름철이 되면 집중폭우로 인하여 산사태가 일어나 산 아래 있는 가옥을 덮쳐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폭우는 강물이 범람하여 농경지와 마을을 침수시키고 미호강 둑이 터져 오송 궁평 지하도를 지나던 차량에서 14명의 아까운 생명이 유명을 달리하는 참사로 돌변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 댐인 괴산댐이 3시간이나 월류(越流)하여 달천하류에 큰 피해를 입혔다. 경북 예천의 산사태로 골짜기의 마을을 초토화 시키며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혀서 안타까웠는 데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해병대원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충남 논산 공주의 폭우피해도 컸는데 이번피해…
"아, 그거 내가 다 알고 있는 거야!" "그거는 이렇게 해야만 돼." "이것이 최선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을 심리학에서 과대주장(overclaiming)이라고 한다. 그 분야의 리더나 전문가들이 스스로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면, 실제로는 허위로 만들어진 거짓 정보라 할지라도 잘 알고 있는 정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발생한다. 과도한 일반화 경향에 빠지는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한 집단의 리더는 자신의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과 성취를 거듭할수록 '나르시즘'에 빠지기 쉽다. 성공에 도취 되어 '자기애'는 점점 커지고 야망과 욕심으로 가득 찬 권력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리더'는 세련된 화법으로 허풍을 떠는 사교적 거짓말에도 익숙해진다.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으려 '모든 걸 잘 알고 있다.'라듯이 말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똑똑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해박한 기술과 전문 지식의 소유자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알고 있는 게 적은 사람일 수도 있다. 스스로가 꽤 똑똑하고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먼저 경험하고, 학습한 것을 과대포장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영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린다는 의미란 생각이 든다. 시력은 침침해지고 노래방에서는 고음 부분 처리가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진다. 호기롭게 대여섯 잔을 사양 않던 폭탄주는 한두 잔에 손사래를 치게 된다. 세월은 헛헛하게 흐르고,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스스로 산타가 되었다가, 그마저도 옛 이야기로 남게 된다.' 서강대학교 김동률 교수의 글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한때는 직장동료들과 몰려다니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거의 매일 끼리끼리 모여 대수롭지도 않은 화제를 가지고 술병이 탁자를 가득 메우도록 늦은 밤까지 갑론을박을 펼쳤지만, 이제는 그때의 그들과 만나게 되면 폭탄주는 고사하고 소주 몇 잔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그런 것인가 봅니다. 김동률 교수의 지적처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스스로 산타가 되었다가, 더 나이가 들면 그마저도 옛 이야기'로 남기게 되니까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받은 '다비드 그로스만'이라는 작가의 동화에 '모든 주름에는 스토리가 있다'라는 작품이 있습니
마을 초입에 연못이 하나 있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각종 장비를 설치한 뒤 밑밥을 뿌린다. 물고기가 모여들도록 하고는 미끼를 꿰어 잡는 것이다. 밑밥만 먹고 달아나는 녀석이 있고 욕심으로 미끼를 무는 녀석들이 변을 당한다. 밑밥에서 만족하면 되련만 미끼에 혹하다가 사달이 난다. 낚시꾼으로서는 밑밥만 먹고 도망치는 게 얄미울 테지만 고기는 미끼에 걸리고 사람은 잇속에 망한다. 밑밥이 어딘가 있을 미끼를 암시하고 덫을 동반한다면 인생의 낚시꾼도 우리를 떠 볼 것이다. 낚시꾼과는 달리 미끼를 외면하고 승리하기를 바랄 테니까. 미끼는 위험해도 밑밥은 안전하다. '밑을 닦다, 밑이 구리다'라면 하찮게 들릴지 모르나 밑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창조적인 건 없다. 아침에는 또 낡은 책에 그어진 밑줄을 보았지 않은가. 구절구절 표시된 것을 보니 밑줄을 강조하시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밑줄을 치라고 하면 대부분 시험문제에 나왔었다. 직접 일러주는 대신 귀띔을 해 주셨던 거다. 내 인생도 밑줄을 칠 때가 되었나 보다. 밑으로 시작되는 낱말의 뜻을 헤아려 본다. 암탉이 알을 낳을 때는 꼬꼬댁 소리가 집안을 뒤흔들었다. 어릴 적, 홰치는 서슬에 놀라 뒤꼍
비건 패션 브랜드를 하는 나로서 가끔 길고양이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아마 길고양이에 대한 여러 다양한 시선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지 않나 싶다. 나는 그저 길을 가다 이 말 못 하고 연약한 존재들이 굶주리거나 다치고 질병에 걸리는 등의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특히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오고 폭염주의보가 계속되는 시기에는 사람도 지치고 고달픈데 길 위에 사는 동물들은 얼마나 힘들까 걱정이 된다. 길고양이, 즉 길냥이들은 나에게 좀 더 특별한 존재이다. 치열한 하루를 살다가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에 가다가 우연히 길냥이를 마주치면 신기하게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 나를 가장 강력하게 즉각적으로 행복을 주는 건 길 가다 마주친 사랑스러운 고양인 것 같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무엇이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특히 이런 더운 여름에는 길을 다니다 보면 가끔 고양이용 캔이나 아마 사료를 담은 듯한 플라스틱 그릇, 츄르 스틱 봉지가 부패된 채 어질러져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길냥이들은 이 부패된 사료나 오염된 물을 마시고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부패한 음식물과 함께 나뒹굴고 있는 이 쓰레기들은 지역 주민들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들 한다. 물은 아무리 깊어도 그 속을 헤아릴 수 있지만 사람은 아는 것 같아도 결코 그 진의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에 와서 보니 누군지는 몰라도 이 말을 만든 사람은 자연의 무서움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몇 주 전, 기록적인 폭우가 전국을 뒤덮으며 무시무시한 상흔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우리 괴산군 불정면 하문리는 전체의 반이 넘는 가구가 침수되는 등 살아생전 처음 겪는 큰 피해를 입었다. 으레 안다고 자신했던 물길이 사람들의 오만함을 비웃듯 날뛴 결과,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 베개를 베고 누웠던 자리가 순식간에 물에 잠기는 순간의 황망함은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이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 함부로 열 길 물속을 알 수 있다고 자신한단 말인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가 얼마나 사람을 흔들어 놓는지 이때만큼 실감했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아침을 맞을 수 있었던 건 한 길을 알기 어렵다던 사람들의 진심어린 마음 덕분이었다. 하문리가 수해를 겪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무섭게 전국 방방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장마가 큰 인상을 남기고 비웃듯 돌연 사라지고 무더위, 폭염이 찾아왔다. 엊그제는 체감온도가 40도를 웃돌고 에어컨을 종일 틀어도 시원해지지 않는 것처럼 정말 더웠던 것 같다. 예전에는 항상 가장 더운 지역 하면 대구 쪽이 뉴스에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요즘 보면 익숙한 청주가 뉴스에 자주 나와 반갑긴 하지만 최고기온의 도시로 항상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실내에서 실외로 나가면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태양빛도 뜨겁고 습도까지 더해져 외출이 꺼려지게 된다. 예전에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시골에 가면 큰 도움이 되지 않았겠지만 담뱃잎도 따서 옮겨드리고 모도 심고 여름 때면 친구들과 함께 고추도 따드리고 그때도 참 덥다고 느껴졌는데 그때와 지금은 지구 평균 온도를 비교 해보지 않아도 몸으로 느껴지듯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마 또한 국지성 호우와 집중 호우로 인해 여러 피해들이 속출했고 이번 장마에 괴산댐 월류와 오송 미호천까지 범람하며 많은 피해가 있었다. 개인을 막론하고 여러 단체, 기관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수해복구작업과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8월 2일 수요일인 어제 청주시 체육회 임원들이 청주시체육회장(김진균)필두로
예전에 아이들 수수께끼 중에 "내 것인데 남이 더 많이 쓰는 것은 무엇?"이라는 것이 있었고, 답은 물론 "이름"이다. 이름은 원래 부르라고 짓는 것이다. 이름의 한자어 '명(名)'은 '저녁 석(夕)' 아래에 '입 구(口)'가 붙어 있는 것인데, 저녁에 어두컴컴 해져서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게 되면 이름을 불러서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상대를 부를 때 이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어른들의 이름을 '휘(諱)'라고 하는데, '휘'라는 말 자체가 "꺼리다, 피하다"라는 의미이다. 즉, '휘'는 원래 '이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분을 지칭해야 하지만 피해야 하는 딜레마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니 이름을 부르기 어렵다면 대신 사람을 부를 말이 필요한데, 어렸을 때는 '아명'을 쓴다. 우리가 옛날 사람들의 호나 자는 잘 알지만, 아명까지 아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아마 아명이 가장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은 역시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조조일 것이다. 관도대전 조조는 궁지에 몰리고 있었는데, 그 때 원소의 부하였던 허유가 조조편에 붙으면서 단번에 원소를 격파하게 되었다. 그런데 허유는 자기 공만 믿고 조조의 아명을 부르며 "아만아, 아만아, 이게…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 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이 시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의'달빛기도'라는 시의 일부이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따뜻하고 은은하지만 강한 울림이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시를 접하고 마음속 깊이 품고 있을 때, 지인들과 함께 봉사대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그런 거창한 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고, 마음속에 고운 달을 품고 살아가는 지인들과 함께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봉사대를 만들었고, 이 시의 제목을 본떠 '달빛봉사대'라고 이름을 짓게 되었다. 이렇게 산남동 11명의 지인들과 봉사대를 만든 게 2023년 6월 2일이었다. 필자는 산남동에서 오랜 기간 통장을 해오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제도적으로 행정적인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느꼈다. 행정기관에서도 촘촘하게 복지를 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미처 닿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어 분명 누군가의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본사가 아닌 지사로 발령나는 경우가 있다. 본사가 주로 서울에 있어서인지 보통 '지방발령'이라 한다. 집을 떠나 생활해야 하니 대부분 직장인들은 싫어한다. 이런 발령을 안 받으려 빽(?)을 동원하기도 한다. 필자도 지방발령으로 집을 떠나 숙소생활을 한적이 있었다. 집을 떠나 처지가 같은 직장동료들과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했다. 불편한 점도 있지만 즐거운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거실에 모여 함께 TV 드라마를 보곤할 때 내 입사동기인 동료는 자주 훌쩍이곤 했다. 지금도 그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곤 한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공감능력'이 꽤 뛰어 났던것 같다, 요즈음은 집사람이 그러는거 같다. TV를 보면서 웃고 혼자 답하고 하면서 신나한다. '당신은 TV 와 쌍방향 소통을 하는군. 제작자가 좋아하겠어'하면서 놀리곤 한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나보다 '공감능력'이 훨씬 좋은거 같다. '공감능력'이 무엇이지? 자료를 뒤져보았다. TV프로를 시청하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은 '아~슬프겠다. 나도 힘들겠다.'와 같이 공감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란다. 공감능력은 '나는 당신의 상황을 알고, 당신의 기분을 이해한다'처럼 다른 사람의…
라는 단체가 있다. 2022년 1월 충북 운초문화재단(이사장 류귀현)과 세종특별자치시문화원(원장 임창철)이 공동으로 구성한 단체이며 "미호강은 동진강이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미호천을 미호강으로 승격한 2022년 7월 이전부터 결의대회, 기자회견, 학술토론회 등을 열어 명칭복원을 촉구했고 대통령실, 환경부, 충북도, 충북도의회 등에도 미호강을 동진강으로 복원해 달라는 청원을 낸 바 있다. *** 미호천은 일제의 창지개명 "미호강은 동진강이어야 한다"는 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 미호천(美湖川)이라는 지명은 우리나라 각종 문헌과 고지도, 그리고 고지도 분야의 최고 전문학자의 고증을 통하여 충북과 세종을 지나는 큰 물줄기인 동진강(東津江)을 일제가 식민지 정책에 따라 미호천으로 창지개명 한 것이다. 둘, 그러나 2022년 7월 미호천을 강으로 승격하는 과정에서는 지명과 관련한 역사성을 살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미호천을 미호강으로 변경한 관계기관의 행정행위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셋,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으나 충청북도를 비롯한 관계기관은 이제라도 미호강이 아니라 동진강으로 복원하여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구십이 넘은 지적인 노인이십니다.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20세기를 산 빅터 프랭클이라고 합니다." -어느 분야의 분이신가요? 제가 좀 과문하고 무식합니다. "정신의학입니다. 보통 프로이드와 아들러, 그리고 저를 정신의학의 세 거장이라고 합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이거 큰 실례를 했습니다. 오늘 힘든 인터뷰가 될 듯합니다. 어떤 업적이 있으신지요? "로고테라피라고 들어 보셨나요? 제가 그걸 창안했습니다." -'의미요법'이라는 것이지요? 들어보기도 했고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차 대전 말에 아우슈비츠 생활을 하셨다는 심리정신과 의사 분이시죠? "예, 제가 그 사람입니다. 책도 여러 권 썼고, 꽤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현대인으로 저를 모르면 교양인, 지성인이라 할 수 없을 겁니다." -예에, 그런데 어떻게 찾아오셨나요, 인터뷰가 필요하신가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저와 제 이론이 도움이 될 겁니다. 이 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합니다만…? "제 수용소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2년 정도는 한정된 지역에서만 살도록 강요받았고, 6개월 정도 삶과 죽음이 순간에 엇갈리는 수용소
방학을 며칠 앞둔 학교에서 자신을 놓아버린 한 선생님의 죽음에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수많은 교사가 거리에 나서 죽기 싫다고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황당한 사례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가 아니라 이미 나와 내 동료가 겪고 있는 일이기에 이대로는 안 된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고인을 추모하는 수많은 근조 화환들과 위로의 글 사이에 선생님들은 자신이 겪은 사연을 쪽지로 남겼다.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의 위협으로 손발이 묶인 교육자로서의 좌절을 토로했다. 피를 토하는 외침들이 활자로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교육감님, 제발 내 딸 사건도 조사해주세요. 내 딸은 죽어서 꽃 한 송이 받지 못했어요." 어느 아버지의 절규, "부임 첫날, 한 시간 수업하고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다." 어느 기간제 선생님의 외침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던 교사의 마지막이 힘없이 죽음으로 내몰린 억울한 사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혹시 내 주변에는 이런 억울한 사건은 없었을까? 최근 몇 년간 내가 겪고 들은 민원도 참 다양했다. 학생들끼리 놀이 중에 생긴 사소한 다툼이 학교
조선시대 성종과 숙종은 자주 서울 장안을 미행하여 숨은 인재를 찾았다. 성종은 장안의 기생 소춘풍집을 몰래 다니며 민심까지 살폈으며, 숙종은 가난한 선비들이 몰려 사는 남산골을 배회하기도 했다. 조정 대신들이 세습적으로 추천하는 인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종은 남산골에서 올바른 인재를 찾아 시험을 직접 주재하고 과거에 급제 시킨다. 촉한의 유비는 재상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그의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 이를 고사에 '삼고초려'라고 하지 않나.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위업을 함께 이루자고 제안했다. 이 고사는 나라의 인재를 얻기 위한 통치자의 고심을 알려준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려면 올바른 인재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윤정부의 인재풀이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 아니면 인사를 관장하는 보좌역들이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인지. '인사가 만사'라고 했는데 요즈음 대통령이 정부의 주요 보직을 임명할 때 느끼는 점은 그렇게 사람이 없느냐는 것이다. 윤정부는 갈 길이 먼데 사사건건 야당의 태클에 걸려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이번 방송통신위원장 인사만 해도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논란이 많았던 이동관 대통령 특보를 임명했다. 청문회도 열리기 전
한국 생활 13년 차인 민씨가 베트남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작년부터 귀향을 고민했는데 지난 설날 고향에 갔다 오며 생각을 굳혔다고 말한다. 18살에 한국에 와서 올해로 31살이 되었으니 타국 생활에 지칠 때도 됐고 고향을 그리워할 만도 하다. 비자를 변경해서 좀 더 살다 갈까 고민도 했다는 그에게 나는 고향에 돌아가서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격려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타국에서 생활하며 가족의 경제를 책임졌으니 이제는 자기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출국하기 전 식사나 하자며 자리를 마련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에게 한국 생활 중 가장 좋았을 때와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는지 물어봤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인터넷을 보다가 홀로 한국행을 결정하고 왔는데 한국에 온 지 2~3년 후 베트남 아버지 사업이 크게 실패해서 엄청난 채무가 생겼을 때라고 한다. 그때는 아버지도 그렇고 본인도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로 절망적인 시기라서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깜짝 놀랐다. 민씨는 얼굴도 잘생기고 노래도 잘해서 각종 행사에 나가면 항상 입상했고, 오랜 한국 생활로 언변도 능수능란한
오송은 청주의 변방에 있었으면서 미호강을 끼고 있어 자연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교통망의 획기적 변화는 오송을 전혀 다른 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2010년 경부고속철도 승차역과 충북선 환승역으로 지정되었으며, 급기야 2015년 경부 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의 분기역으로 결정되면서 오송은 전혀 새로운 도시로 성장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오송에는 식약처를 비롯한 6대 바이오관련 국책기관, 연구기관과 대학캠퍼스 및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어 바이오와 화장품 등의 연구와 산업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최근 K-Bio 스퀘어 선정, KAIST 오송 바이오캠퍼스 설치계획, 카이스트 부설 AI 바이오 영재고등학교 신설, 국제학교 추진, 바이오 소부장특화단지로 지정되는 등 오송은 명실 공히 산업적·연구·교육 기능을 갖춘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충청권 광역철도가 개통된다면 충청권이 하나의 시장으로 형성되면서 오송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최근 충북 경제자유구역청은 오송을 국제도시로 선포하고 국제도시가 갖추어야할 요소들을 하나씩 점검하며 준비해나가고 있다. 국내 최고의 도시에서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원대한 비전이다. 오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건 아니다. 누군가 길을 만들었기에 다음 사람들이 수월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했었다. 그리고 올해 10년 만에 한국 근현대 작가전을 소마 미술관에서 다시 만났다. 달라진 게 있다면 기획의 변화다. 5개의 주제별로 구분을 지어놓았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건 여성 화가들과 납북된 화가들의 방 그리고 조각 부문을 따로 마련했다는 점이다. 사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서 그림은 사치품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시대적 공간적으로 어려웠던 한국 미술 역사는 서양미술에 비해 아주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처음 미술의 길을 냈던 근대 작가들은 이런 삭막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이분들의 그림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인의 자존감을 잊지 않고 우리 그림, 우리 조각의 진정한 얼굴을 스스로 그리고 스스로 새기는 자리라는 걸 늘 잊지 않았다는 점과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미쳤고 즐겼다는 점이다. 대표작가로 김복진 고희동 김관동 이어 구본웅 박생광 박수근 이중섭 이인성 장욱진등이 이에 속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시간 참 빠르다. 2014년 7월 26일 막둥이 생일 날 아침 혼자만의 약속을 했다. 이 아이가 잘 커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원으로 커 주길 바라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충북인재양성재단(현 충북인재평생교육진흥원)에 10년간 기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나 혼자만의 비밀로 시작한 매년 100만 원씩 10년간 1천만 원 기부였다. 어느새 올해를 끝으로 10년 간의 약속이었던 1천만 원 기부를 마쳤다. 무엇인가 약속을 하고 실천 해나갈 수 있음은 참으로 가슴 벅차고 설레는 일이다. 이 글을 작성하며, 혼자만의 비밀로 지켜왔던 10년의 약속을 가족들에게 자랑스럽게 고백해본다. 기부를 위한 10년 동안 통장 잔고가 바닥이어서 대출을 받기도 하고, 적금 중도해지도 해보고, 사고 싶은 명품백도 포기하고, 멋진 옷 한 벌 사고 싶은 마음도 절제해보았다. 10년이란 시간과 노력은 생활 철학이 많이 바뀐 소중하고 귀한 기회가 됐다. 매년 7월이 되면 막둥이는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올해의 생일 선물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받고 싶다며, 온 가족들의 관심을 주문하곤 했다. 필자는 10년간의 약속을 가슴에 묻고, 혼자 빙긋이 웃곤 했다. 충북인재양
기후 위기로 인해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가며 일어나고 있다. 어제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종일 퍼붓다가도, 그다음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햇볕 속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날씨에 설마하고 조금만 방심하면 식중독이 발생하게 된다. 식중독 발생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온도와 습도이기에, 장마철과 무더위가 겹치면서 식중독 위험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식중독은 계절과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는 감염성 질환이지만, 식약처에 따르면 병원성대장균 식중독 환자의 89%가 6~9월에 집중된다. 여름철 식중독 예방을 위한 각별한 주의와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식중독이란 식품 섭취 시 인체로 유입된 유해 미생물이나 유독물질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감염성 또는 독소형 질환을 말한다. 여름철에 주로 발생하는 세균성 식중독은 식품으로 인한 전체 위해의 80~90%를 차지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식중독을 유발하는 세균(이하 식중독균)은 섭씨 4~60도의 온도 범위에서 증식하며, 균종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섭씨 35도 내외에서 번식 속도가 가장 빠르다. 그렇기 때문에 기온이 높은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세균성 식중독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다. 세균
[충북일보] 충북도는 산림 생태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아 국가숲길로 지정하기 위한 동서트레일 복선 예비노선 139㎞가 '동서트레일'에 추가 편입이 확정됐다고 30일 밝혔다. 동서트레일은 경북 울진에서 충남 태안을 잇는 장거리 숲길이다. 충북 지역의 동서트레일 노선 거리는 총 369.9㎞(당초 230.9㎞, 추가 편입 139㎞)이다. 전국 대비 37%(전국 1위)를 차지하며 국유림 23.9㎞, 공·사유림 346㎞다. 복선 구간은 산림청이 동서트레일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충북도 요구로 복선(안) 계획이 세워졌다. 하지만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성을 위해 문제가 있는 만큼 산림청은 이를 보완하면 향후 편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해 레이크파크 트레일 조성 기본계획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용역 과정에서 4개 시·군(괴산·충주·제천·단양)의 역사·문화를 숲길과 접목, 이용자의 안전을 고려한 새로운 트레일 복선 노선을 찾았다. 도는 지난 1월 복선 예비노선에 대해 동서트레일 편입을 산림청에 요청했고, 이달 초 산림청이 숲길전문가 등 평가위원을 구성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복선 구간 139㎞가 동서트레일에 편입되는 성과를 거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음주 운전을 하다 오토바이를 압수당한 것에 불만을 품고 지구대에 흉기를 들고 찾아가 난동을 부린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괴산경찰서는 특수협박·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A(66)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7일 오후 7시 50분께 괴산서 관할 한 지구대를 찾아가 미리 준비해 온 흉기를 꺼내 들고 자해할 것처럼 난동을 부리고 경찰관들을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음주 운전을 하다 압수당한 오토바이를 되찾기 위해 지구대를 찾아왔다가 거절당하자 이에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당시 지구대 경찰관들에게 흉기를 보이며 "왜 내 오토바이 안 주냐. 너네도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경찰은 A씨에게 흉기를 내려놓으라고 설득했지만, A씨는 흉기를 자신의 몸에 갖다 대며 저항했다. A씨를 제압하기 위해 경찰관들이 테이저건을 꺼내 들자 당황한 A씨는 흉기를 떨어뜨렸고, 경찰은 즉각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지난 12일 음주 상태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적발돼 면허가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면허 상태였던 A씨는 지난
[충북일보] ◇올해 충북청주FC의 목표는. "지난해 리그는 목표였던 9위보다 한 단계 높은 8위로 마감했고 14경기 무패 기록도 세웠다. 그 배경에는 최윤겸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의 훌륭한 전략과 빈틈 없는 선수 관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스포츠 경영 리더십을 바탕으로 올해는 조금 더 높은 목표인 플레이오프를 향해 달려보려 한다. 13개 팀 중 5위 이상의 성적은 욕심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달성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매주 목요일 감독·코칭 스태프를 중심으로 선수 강화팀, 대외협력팀, 마케팅 홍보팀 등 사무국의 모든 팀이 모여 PPT 발표를 한다. 이 발표를 통해 지난 경기를 분석함과 동시에 다가오는 경기에 대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수립·이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야할 구단 운영 방향은. "단순하게 축구 경기 한 경기, 한 경기로만 끝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스포츠는 막강한 힘을 품고 있다. 스포츠 경기 활성화로 작게는 건전한 가족문화 형성부터 크게는 지역 소통, 나아가 지역 경제 성장까지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홈경기 날이 되면 가족 단위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는다. 경기 관람을 통해서 여가 시간에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