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23.06.13 17:34:00
  • 최종수정2023.06.13 17:34:00

이정민

청주시청 도시계획상임기획단, 공학박사

# 이탈리아에서는 1유로에 집을 살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1유로에 집을 살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의 타이틀만으로도 무척 설렜다. 낮같이 환한 로마의 밤거리를 혼자 걸으며, 언젠가 애인과 함께 오고야 말겠다던 로망이 이제라도 이뤄질 것처럼. 마치 금세 집주인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글을 쓰고(하루키는 이탈리아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완성했다), 맛있는 생선을 구워 저녁상을 차릴 수 있을 것처럼. 1유로 집은 이 모든 로망을 이룰 수 있는 마법의 양탄자가 아닌가.

2016년 로마와 가까운 시골 마을 마엔자(Maenza)에 '1유로 프로젝트(Case 1 Euro)'가 등장했다. 이탈리아도 젊은 층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시골은 유령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2주택자에게 부과하는 부동산세율이 높아 시골에 버려진 빈집이 많다. 이에 지자체는 외국인에게 빈집을 1유로에 판매해 인구의 유입을 꾀하고자 했다. 클라우디오 스펠두티(Claudio Sperduti) 시장은 "투자는 거절합니다. 이웃을 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빈집은 호텔로 공유주방으로 상가로 바뀌고, 유령마을은 인종을 초월한 새로운 공동체로 재구성됐다. 현재는 시칠리아, 피에몬테주, 토스카나, 사르데냐 등 전국 각지에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와인 생산 지역도 있고, 어촌 마을도 있고, 아드리아 해변 근처의 마을도 있다. 운이 좋으면 오래된 수도원을 살 수도 있다고 한다.
 
# 한국에서는 1유로에 상가를 임차할 수 있다

한국에도 '1유로 프로젝트'가 상륙했다. '핫플' 성수동 옆 송정동에 위치한 '코끼리 빌라'다. 이탈리아가 주택을 대상으로 했다면, 한국에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했다. 공공에서 민간으로 넘어온 것도 차이다. 오래된 미래 공간연구소 최성욱 대표가 주도한다. 최 대표는 네덜란드 건축가이자 덴마크 공인 건축사이며, 서울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근무한 경험을 기반으로 더 착하고 더 좋은 도시공생 실험을 펼치고 있다.

코끼리 빌라는 40년 된 3층짜리 빨간 벽돌의 다세대 주택이다. 오래된미래공간연구소는 건물주를 설득해 1유로에 건물을 임차했다. 그리고,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들을 발굴했다. 입주 브랜드들은 3년 동안 1유로의 임차료만 낼 뿐, 보증금은 따로 없다. 매장의 인테리어 비용과 공동공간의 리모델링 공사비를 분담한 금액만 지불했다. 건물주는 폐건물로 남겨두는 대신 건물의 가치를 높이고, 젊은 창업가들은 임대료의 부담 없이 브랜드를 성장할 수 있는 상생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현재 18개 브랜드가 입점해있다. 다회용기를 제작 판매하는 '푸들',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베러얼스', 여행자들의 살롱 '앤티크하우스', 쿠킹 클래스가 열리는 '요리인류', 와인과 소품샵 '보마켓' 등이다. 보마켓은 푸들과 함께 일회용품 없는 '제로웨이스트 다이닝 카페'를 운영한다. 옥상에는 '서울 가드닝 클럽'과 이들이 가꾸는 옥상정원이 있다. 방문했던 날에는 운 좋게도 공정무역 수공예품 브랜드 히말라얀터치의 팝업 스토어와 최윤정 작가와 이하여백 작가의 팝업 전시도 열리고 있었다.
 
#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좋은 라이프 스타일이 좋은 도시를 만든다

입주 브랜드는 일주일에 한 번 유쾌한 프로그램을 연다. 입주 조건이기도 하고, 브랜드들이 지역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 만들어가는 자발적 활동이기도 하다.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배러얼스'의 플로깅, '서울가드닝클럽'이 키운 로메인과 루콜라로 만든 샐러드를 '푸들'의 다회용기에 담아 먹는 '가든 투 테이블', 반려견과 함께하는 요가 '퇴근후 웰니스', 그리고 앤티크하우스가 주최하는 서양건축사투어도 열린다. 취지와, 공간과, 지역과 지구를 살리는 브랜드들과, 이들이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 모두가 근사하다.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좋은 라이프스타일이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1유로 프로젝트의 표어가 공간적으로 실현되고, 도시를 변화시키고 있다. 굳이 이탈리아가 아니어도 송정동 주민이 되어도 좋겠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도 1유로 프로젝트가 착륙하길 바란다. '1유로 프로젝트'에 보내는 사심 어린 고백이자 초대장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기업 돋보기 5.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국내 시장에 '콜라겐'이라는 이름 조차 생소하던 시절 장부식(60)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콜라겐에 푹 빠져버렸다. 장 대표가 처음 콜라겐을 접하게 된 건 첫 직장이었던 경기화학의 신사업 파견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생소한 사업분야였던 만큼 일본의 선진기업에 방문하게 된 장 대표는 콜라겐 제조과정을 보고 '푹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해당 분야의 첨단 기술이자 생명공학이 접목된 콜라겐 기술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였다. 회사에 기술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일주일에 5건 이상 작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장 대표는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으로 선진 견학을 갔다. 정작 기술 유출을 우려해 공장 견학만 하루에 한 번 시켜주고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견학 때 눈으로 감각적인 치수로 재고 기억해 화장실에 앉아서 그 기억을 다시 복기했다"며 "나갈 때 짐 검사로 뺏길까봐 원문을 모두 쪼개서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가져온 만큼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견학 다녀온 지 2~3개월만에 기존 한 달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