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참사 1주기>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날의 아픔

2024.07.14 16:10:58

편집자주

지난해 7월 15일. 30명의 사상자를 낳은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지 오늘로 꼭 1년이 됐다. 하지만 책임 규명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련 기관은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하다. 유족들과 생존자들은 여전히 거리를 지키고 있다. 명백한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였기 때문이다. 유가족과 생존자의 입을 통해 지난 1년의 시간을 다시 짚어본다.

청주시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지 1주기를 앞두고 최은경 오송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와 가족들이 어머니를 모신 목련공원을 찾아 추모의 시간을 갖고 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지난해 7월 15일 오전 8시 40분께 발생해 차량 17대가 침수됐으며 이 사고로 1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김용수기자
[충북일보] "처남이 입사 시험에 늦을까 봐 남동생이 무리해서 속도를 내더라고요. 그때 딱 한 번만 신호에 걸려 멈춰 섰더라면…"

지난해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남동생 A씨를 잃은 김모(30대)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2023년 7월 15일. A씨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이날은 처남의 입사 시험 날이었기 때문이다.

처남을 차에 태우고 오송역에 가는 길. 처음엔 시간이 남을 것 같았지만 폭우로 예상 도착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혹여나 처남이 제 시각에 도착하지 못할까 불안한 마음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하차도에 진입하기 전 신호등이 하나 보였다. 초록 불이었다.

잠시뒤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자, A씨는 속도를 높여 지하차도에 진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하차도 내부에 약간의 물이 고인 것 말곤 특이한 상황은 없었다.

하지만 지하차도 출구를 빠져나갈 때쯤 악몽은 시작됐다. 갑자기 차도 밖 난간 사이로 엄청난 양의 흙탕물이 들이닥쳤다.

물은 삽시간에 지하차도 안에 있던 차들을 덮쳤고, A씨의 차는 수압에 못 이겨 지하차도 안쪽으로 떠내려갔다. 지하차도 한가운데 고립된 A씨와 처남은 이내 창문을 열고 차 위로 올라가 탈출을 시도했다.

대피하기 위해 마지막 사력을 다하는 모습. 이것이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A씨는 지하차도 밖 100m 지점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고, 처남은 살아남았다.

김 씨는 "동생은 지하차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조금만 일찍 구조했다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든다"며 울먹였다.

신혼 2개월 차였던 A씨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는 바랐던 교사의 꿈을 이루고 타지에 살면서도 가족에게 항상 전화해 안부를 묻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효자였다.

학교에선 재치 있고 친근한 성격 덕에 동료 교사는 물론 제자들에게도 존경받는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김씨는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 교사는 물론 졸업한 제자들까지 찾아와 동생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며 "심지어 동생의 친구들은 동생과 추억을 나누던 단체 채팅방을 아직도 나가지 못할 정도로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참사로 동생을 떠나보낸 이후, 김씨 가족의 일상은 1년전에 그대로 멈춰있다.

식욕도 회복되지 않았고 없던 불면증도 생긴 것은 물론 일상 생활도 어렵다.

김씨는 "지금도 무기력하고 정신이 멍해질 때가 있어 엄마와 함께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받으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며 마른 침을 삼켰다.

김씨의 가장 큰 걱정은 자신의 어머니다.

그의 어머니 역시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이전까지는 외출은 커녕 액체로 된 환자식도 입에 대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김 씨는 전했다.

김씨는 "아직도 엄마는 스스로는 아들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라고 생각하신다"며 "혹시라도 엄마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노심초사하며 산다"고 토로했다.

김씨와 그의 어머니는 지난 2일 A 씨의 음력 제사를 지냈다. 이날 모녀는 방 안에 앉아 A씨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눈물로 하루를 보냈다.

참사 희생자들의 기일이 다가오면서 다른 유족들도 슬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청주시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지 1주기를 앞두고 최은경 오송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와 가족들이 어머니를 모신 목련공원을 찾아 추모의 시간을 갖고 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지난해 7월 15일 오전 8시 40분께 발생해 차량 17대가 침수됐으며 이 사고로 1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김용수기자
최은경 오송참사 유가족 공동대표는 최근 어머니 B씨의 제사를 지냈다.

최 대표는 "최근 엄마 제사를 지냈는데 그간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끝없이 흐르고 감정이 복받쳤다"며 "기일이 다가오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나고 정말 보고 싶다"고 운을 뗐다.

B씨는 오송읍에 청소 일을 하러 동료들과 함께 747 버스에 올랐다가 참변을 당했다.

B씨는 일찍이 남편과 사별해 딸 둘을 홀로 키우며 가장 역할을 해왔다. 생계를 위해 공장일, 청소일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일했다.

자식들이 장성해도 B씨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딸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최 대표는 "엄마는 늙어서도 자식에게 부담되고 싶지 않아 기를 쓰고 열심히 살아오셨다"며 "그렇게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엄마의 삶이 너무 가엾고, 받은 사랑을 갚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됐다"고 눈물을 보였다.

최 대표 자매는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의 집에 들른다. 엄마가 살아생전 키우던 화분 때문이다.

최 대표는 "가전제품 같은 큰 가구류는 정리했지만, 엄마가 좋아하셨던 화분, 옷 등은 아직 치우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화분은 엄마의 마지막 손길이 담겨있다고 여겨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 집에 들러 화분을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엄마가 밥을 지어두고 된장찌개를 만들어 드시다간 마지막 흔적도 생각나고, 엄마의 집에선 더 이상 사람이 사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올 때마다 마음이 공허해진다"며 눈물을 보였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참사를 단순 사고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인재(人災)였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사과 한마디 없었다.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공무원들의 행태는 최 대표를 포함한 참사 피해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분노케 했다.

이것이 최 대표가 유가족 협의회 공동대표로 나선 이유다.

최 대표를 포함한 유족과 생존자들은 인재이자 관재(官災)인 참사가 오송에서 끝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최 대표는 "그간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했는데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어 1주기 추모 기간 내내 마음이 무거울 것 같지만,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진상 규명과 최고책임자 처벌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임성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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