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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와 백두대간 충북의 옛고개 - 우두령

충북 최남단 고개…경남사람 많이 이용했던 '샛길'

  • 웹출고시간2011.06.15 16:27:4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편집자 주

한반도 등줄기인 백두대간이 충북의 동쪽 사면을 지나고 있다.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철종12년·1861)에는 충북 백두대간에 20여개의 옛고개가 동-서, 혹은 남-북 방향으로 표시돼 있다.
걷기문화 열풍이 불면서 백두대간 충북구간이 또 다른 시각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동여지도와 백두대간 충북의 옛고개'를 12회 시리즈로 연재한다. 출발 방향은 편의상 남에서 북이다.

우두령 GPS고도표로, 북쪽사면(우측)이 매우 가파름을 알 수 있다.

우두령(牛頭嶺)은 삼도봉(1,177m)과 황악산(1,111m) 사이에 위치하는 고개로 720m의 해발고도를 지니고 있다. 영로(嶺路) 상으로는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경북 김천시 구성면을 연결하면서 도내 최남단 고개가 되고 있다.

대간(大幹)이 지나는 만큼 분수령 역할도 하고 있다. 영동 쪽으로 흐르는 물은 궁촌천, 초강천 등으로 하천폭을 넓히며 금강으로 들어가고, 김천 쪽으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에 합류한다.

고개의 경사도는 남쪽사면(김천)보다 북쪽사면(영동)이 훨씬 가파른 모습을 하고 있다. GPS고도표(그림참조)에서 보듯, 북쪽사면은 정상에 다가갈수록 그 경사도가 마치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대동여지도 속의 영로

대동여지도의 우두령이다. 통행량이 많지 않았던 듯 선은 그어져 있지 않다.

대동여지도는 정교함과 함께 나름의 규칙성을 지니고 있다. 김정호는 지도를 제작할 때 인(人)과 물(物)의 흐름이 많은 길은 선(線)으로 표시하고 10리마다 점을 찍었다.

반면 인물의 왕래가 적은 고개는 이름만 표기하고 연결선을 그리지 않았다. 우두령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림참조>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大東地誌·1863)는 이른바 쌍둥이 사료이다. 대동여지도를 글로 풀어 보충 설명을 한 것이 대동지지다. 여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우두령은 남방으로 지례로 통하는 길이 있는데 샛길이다.'(南五十里通知禮間路)-<황간현 산수조>

바로 우두령은 영동 상촌과 김천 구성을 연결하던 '간로'(間路·샛길)였다. 그러나 거창 등 경남 사람들은 우두령이 서울로 가는 지름길(첩로)이었기 때문에 이를 자주 이용했다.

'이 우두령이 되어 본현을 왕래하는 지례현과 거창부 사람이 통행을 한다.' (是牛頭嶺 本縣之往來 知禮縣居昌府者通行)-<여지도서 황간면 관액조>

그러나 일제 강점기까지 도로 사정은 개선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두령 바로 밑의 마을이 상촌면 흥덕리 설보름이라는 곳이다.<그림참조> 이 마을 한 촌로의 말이다.

"우두재(우두령 지칭)는 일제강점기 때 넓혀졌는데, 포장은 10여년전에 됐지. 김천쪽은 아직도 옛길 모습이 더러 남아 있어. 겨울에는 춥고 눈이 많이 와 설에 들어오면 보름에 나간다고 해서 설보름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지"

지금은 901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다. 이밖에 고개 초입인 상촌면 유곡리 진들마을이 견훤의 출생지라는 설이 있으나 분명치는 않다. 견훤의 본관이 황간견씨라는 설도 있으나 이 역시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 역사속의 사건

하늘에서 내려다 본 지금의 우두령 모습이다. 생태통로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우두령은 궁벽한 영로이면서 심산유곡 속에 갖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외침이 있을 경우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고려말 왜구의 노략질이 내륙으로까지 미치자 황간현 관아를 궁촌(宮村)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마을 이름에 '궁' 자가 들어간 것은 이 때문으로, 궁촌은 흥덕리 아래 위치한다.

임진왜란 때도 화를 입지 않은 것으로 여지도서는 쓰고 있다. 아래 인용문에 등장하는 '계사'는 임진년 다음해를 일컫는다.

'임진·계사의 왜란에 병화가 들어오지 아니해서 이곳에 사는 백성이 모두 안전하였다.'(壬癸之亂 兵塵不及 居民皆得全)-<여지도서 황간현 산천조>

과거 신문을 펼치면 우두령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1971년 강도살인범 박원식 △1939년 대형 산불화재 등을 만날 수 있다.

동아일보는 '강도살인범 박원식이 1971년 7월 16, 17일 영동군 우두령 인근 매곡면에 나타나 밥을 훔쳐 먹었으나 아직 잡지 못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그러자 경찰이 우두령 정상에 고성능 안테나를 가설해 삼도작전본부를 가동했고, 당시 장동식 치안국장이 진두지휘를 했다'고 쓰고 있다.

이밖에 동아일보는 1939년 5월 1일자에서 '경남 북상면 병곡리에서 일어난 산불이 도계 우두령까지 번지면서 (주민들이)보다못해 출동해 필사의 노력으로 진화하여 29일 오전 6시에 돌아왔다'고 적었다.

◇주변의 명소와 콘텐츠 방향

우두령 정상 모습으로 황소상이 서 있다.

우두령 영로의 주변 마을인 흥덕리, 궁촌리, 유곡리 등에서는 감, 호두, 표고버섯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또 고개 정상의 남북 사면에서는 산림유전자보호림, 경희대 연습림 조림지, 궁촌저수지, 삼성암, 매일유업 김천공장, 정종대왕 태실, 주막흔적 등의 명소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생태 트레킹, 농촌마을체험, 추위 마케팅, 역사탐방 등의 문화관광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대가 겨울철에는 눈이 많고 혹한지역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 우두령 고개 정상은 경북쪽에 완전히 선점당한 상태다. 우두령 관문(생태통로)의 문구가 경북을 기준으로 '어서 오십시요', '안녕히 가십시요'로 돼 있다. 문법도 틀린 문장으로, 경북과의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조혁연 대기자
자료도움: 영동군문화원, 산림청,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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