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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와 백두대간 충북의 옛고개 - 저수령(단양 대강~예천 상리)

당시 보부상들이 단양~예천 지름길로 개척
우수한 소나무많아 숙종 때 '황장봉산' 설정
8백m 고원에는 2년 전까지 '관광목장' 성업
정상에는 도계 조형물 경쟁 '공생모색' 필요

  • 웹출고시간2011.08.10 16:24:3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하늘에서 본 저수령 모습이다. 굽이가 경북사면에 훨씬 많음을 알 수 있다. 소백산 관광목장은 지금은 폐쇄됐다.

행정적으로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와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를 남북으로 연결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북쪽의 도솔산(해발 1,1314m)과 남쪽의 황정산(1,077m)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850m이다.

산세는 경북 사면이 훨씬 가파르고 굽이가 매우 심하다. 속리산 말티고개 정도는 아니지만, 이른바 구절양장의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저수령 일대의 GPS 고도표이다. 죽령(북)과 벌재(남) 사이에 위치한다.

반면 충북사면은 영로 아래가 가파른 편이지만,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경사도가 완만하다.

따라서 충북사면서 고갯길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마치 고원지대를 지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얼마전까지 이곳에 소백산 관광목장이 운영됐었다.

백두대간인 만큼 마루금(능선) 자체가 분수령 역할을 한다. 북쪽 사면의 물은 남조천을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반면 남쪽사면의 물은 한천을 거쳐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저수령의 어원은 경상도 사면에서 생겨났다. 저수령 중턱 쯤에는 저수골, 안골 등의 마을이 현존하고 있다. 저수골에서 저수령의 지명이 생겨났다.

◇대동여지도 속의 영로

대동여지도의 저수령(故峴)이다. 충북 단양과 경북 은풍(지금의 예천)을 남북으로 연결하고 있다.

단양과 은풍(지금의 예천군 하리면) 사이에 도로를 의미하는 선이 남북 방향으로 그어져 있다. <그림 참조>

그리고 선과 백두대간이 종횡으로 교차되는 지점에 '故峴'이라는 고개 이름이 표기돼 있다. 바로 지금의 저수령(低首嶺)이다. <그림참조>

조선후기 지명인 고현이 지금의 저수령인지에 대해서는 다소의 논란이 존재하고 있다. 일부 자료는 단양 영춘의 '고치령'을 고현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발음이 비슷하기는 하나. 역사적인 기록과 논리를 거의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각종 고문헌은 고현을 직접 지칭하지 않고, 그 주변 지형을 기술하고 있다. 대동지지(1861·철종)의 경상도 풍기군 산수조는 인근 도솔산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서쪽 이십리 순흥 창악면계에 있다. 죽령과 함께 연하여 있고 북으로 단양 경계에 접한다. 산이 중첩하고 깊이가 아득하다.'(兜率山西二十里順興昌樂面界 與竹嶺相連 北接丹陽界 重疊幽阻)

여지도(1757·영조)의 단양군 산천조 역시 도솔산을 '군의 남쪽 오십리에 있다. 죽령으로부터 왔다'(在郡南五十里 自竹嶺山來)라고 적었다.

핵심을 말하면, 죽령 남쪽에 도솔산이 위치한다는 뜻이 된다. 이에 비해 일부에서 거론하는 고치령은 죽령에서 훨씬 북쪽인 단양 영춘면에 위치하고 있다. 물론 고치령 근처에 도솔산이나 황장산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고현(저수령)은 조선 초기의 세종실록지리지, 중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그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저수령에는 조선 후기들어 사람과 물산의 교통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주인공은 장돌뱅이로 속칭됐던 보부상들이었다.

대동지지는 단양 토산품으로 잣(海松子), 대추(棗), 옻(漆), 오미자(五味子), 회양목(黃楊), 먹(墨), 당귀잎(辛甘菜), 누치(訥魚), 쏘가리(錦鱗魚) 등을 적었다.

반면 예천 토산품으로는 철(鐵),닥(楮), 뽕나무(桑),은어(銀口魚) 등으로 기록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이 보부상들에 의해 양쪽 장시에서 거래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근·현대의 저수령 영로

일제시대 지도이다. 단양과 예천 사이에 가느다란 붉은선이 그어져 있다. 이용도가 낮은 '등외도로'라는 뜻이다.

일제시대 작성된 지도에는 붉으면서 가느다란 선이 단양과 경북 예천을 남북으로 연결하고 있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는 전국의 도로를 정비하면서 1등 도로는 '굵은 붉은색', 2등 도로는 '옅은 녹색', 3등 도로는 '자주색' 등으로 표시했다.

반면 도로이기는 하나 그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는 '가느다란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이른바 '등외도로'로, 저수령 고갯길도 여기에 속했다. <지도 참조>

저수령 고갯길은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 이런 모습을 유지했다. 저수령 도로가 지금의 927번 지방도로 승격된 것은 지난 1994년이었다.

이후 비포장 도로로 계속 관리되다가 근래들어 포장도로가 됐다. 언제 포장됐는지 확인하지 못했으나 노면 상태로 보아 몇해전 공사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역사속의 저수령

저수령 남쪽에 황장산(대동여지도에는 鵲城山)이 위치하고 있다.(그림 참조) 이는 조선시대 황장산(黃腸山)으로 지정되며 그 출입이 금지된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이때의 황장은 '속(腸)이 누렇다(黃)'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잘 자란 소나무는 속이 누런 색을 띄고 있다. 조선시대 이같은 황장목은 임금이 관(棺)을 만들거나 궁궐을 짓는데 사용됐다. 따라서 황장산은 '황장판관'(6품)이라는 벼슬아치가 특별 관리했다.

관련 사료와 문화재가 존재하고 있다. 숙종은 1713년(재위 39) 저수령 일대가 포함된 예천, 봉화, 안동지역의 산림을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했다. 황장산으로 지정했으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그 두번째는 황장목을 봉진(封進)하는 폐단에 대해 진달하기를, "안동·봉화·예천 세 고을은 비록 황장산(黃腸山)이라는 명칭은 있었으나, 애당초 금양(禁養)을 하지 않다가 경신년에 이르러 비로소 봉진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대저 소나무가 자라려면 반드시 몇 갑자(甲子)를 지난 후에야 황장에 합당할 수가 있습니다'-<숙종실록>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유물인 황장산 봉산표석(경북도 문화재자료 227호)이 저수령 남쪽 사면인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에 위치하고 있다.

표석은 화강암으로 높이 103㎝,너비 40㎝, 두께 17㎝이고, 받침돌은 화강암 자연석으로 높이 110㎝, 너비 60㎝이다. 표석에 '봉산'(封山)이라고 2자가 음각돼 있다.

강원도 대관령에는 양떼 목장이 있다. 저수령 바로 밑에는 얼마 전까지 소백산 관광목장이 존재했었다.

단양축협은 지난 1994년 저수령 9부 능선의 고원지에 위치하는 일대 35만평을 소유자인 충북도로부터 임대, 관광을 겸한 목장으로 운영해 왔다.

개장 초기에는 적지 않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지난 2001년 중앙고속도로(춘천~대구)가 개통되면서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단양군이 민자를 유치, 일대를 이른바 리조트 타운으로 개발하기로 계획을 세우면서 지난해 1월부터 손님을 받지 않고 있다.

현재 소백산 관광목장에는 풀뜯는 소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저수령 고갯길 정상에 서있는 충북과 경북의 도계 조형물이다. 관문을 세워 공유·공영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회에 여러번 언급했듯이, 충북지역의 백두대간 고갯길 정상은 대부분 경북이 선점하고 있다. 이곳 만큼은 충북과 경북이 영로 정상을 사이좋게 공유하고 있다. <사진 참조>

그러나 1개 고개에 2개의 조형물이 설치되는 것은 분명 낭비적인 요소이다. 하나의 관문을 세우고 양 지자체가 이를 함께 활용하면 이같은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충북과 경북이 관련 협의체를 구성, 공유·공생·공영 등 이른바 '삼공'하는 방안을 집중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협의체 안에서는 백두대간 중부권의 또 다른 고개도 함께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의 명소와 콘텐츠 개발

저수령 주변에는 유적지보다 명승의 이름이 더 높다. 단양팔경의 하나인 사인암이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다.

인근 유황온천, 방곡도예의 연계도를 높힐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단양군은 리조트 사업을 할 경우, 관광목장 복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관령은 고원, 고개, 목장, 눈 등의 이미지로 겨울철 전국 관광객을 가장 많이 흡수하고 있다. 단양 저수령 일대도 비슷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 조혁연 대기자

자료도움: 충북대 사학과, 단양군문화원, 산림청,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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