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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진천 농다리

천년을 숨쉰 다리 자연 숨결이 '일렁'

  • 웹출고시간2011.07.07 15:52:0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어렸을 적, 필자는 초정에서 비상초등학교까지 매일 15리를 걸어 다녔다. 벗들과 함께 언덕을 넘고 개울을 지나 마을 샛길로 질러가고, 다시 산과 들과 냇가를 넘어야만 비상초등학교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학교 뒷산에서는 뻐꾹새가 울어대고 운동장 저편의 드넓은 논에서 개구리 합창하는 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우리는 선생님의 풍금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푸근한 풍금소리가 교실을 감싸 안으면 참새처럼 입을 모아 재잘재잘 거리는 모습은 합창도 아니고 놀이도 아니며 학습도 아니었다. 그저 자연과 호흡하며 자연과 하나 되려는 생명의 작은 몸짓에 불과했다. 풍금소리도 아이들의 노랫소리도 모두 바람소리처럼 맑고 경쾌했다.

아카시아 향과 밤꽃 향이 그윽하게 다가올 때에는 이것저것 다 팽개치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흥미로운 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남자들은 축구와 배구를, 여자들은 고무줄놀이와 공기놀이를 즐겨 했다. 고무줄놀이를 할 때는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새신을 신고 달려보자 팔짝, 단숨에 높은 산도 넘겠네'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을 사이에 두고 팔짝팔짝 뛰면서 노래를 불렀다. 짓궂은 친구들은 여자들을 놀리기 위해 고무줄을 끊어버리고 달아나기도 했다.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겨울에는 교실마다 장작난로를 지펴야 했다. 불지피기와 난로청소는 주간당번의 몫이었는데 제때 불을 지피지 못하면 친구들의 원망에 선생님의 핀잔까지 들어야 했으니 그것도 할 짓이 아니었다. 2교시가 끝나면 선생님은 아이들이 가져 온 양은도시락을 이글거리는 난로 위에 올려놓았다. 맨 아랫것에는 물을 부어야만 타지 않고 누룽지가 생겨 그 맛이 일품이었다.

개나리, 진달래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하면 산길과 오솔길만을 찾아 다녔다. 학교를 빨리 갈수 있는 큰 길을 제쳐놓고 외진 곳만을 찾아 다녔던 것이다. 이름 모를 들꽃에, 꽃의 향기로움에 넋을 잃고 학교 가는 것까지 포기하기도 했다. 일명 '거리학생'을 종종 했던 것이다. 산길에서 만나는 솔숲의 그윽함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을 수가 없다. 아침 햇살은 솔숲에 떨어져 빛나고 주변의 수많은 잡목들과 들꽃들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봄바람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보자기 책보를 펼쳐 도시락을 까먹고 나면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그날은 학교를 갈 수 없다. 내친김에 계곡에서 가재를 잡고, 개울에서 송사리를 잡아가면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면 초정리 촌놈들 모두 시냇가로 모였다. 버드나무 피리를 만들어 노래 부르고 물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가 풀숲이나 돌 틈 속에 숨어있는 고기를 잡았다. 미꾸라지 붕어 쉬리 등 봄날에는 잡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어린 물고기가 잡히며 살려주곤 했다. 더 키워서 여름날에 잡아먹겠다는 초정리 촌놈들만의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촌놈들의 지혜는 이뿐만이 아니다. 물고기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불을 지펴 구워먹거나 고추장에 버무려 볶아먹기도 했다. 구워먹을 때는 석쇠를 이용했고 볶아먹을 때는 먹고 버린 통조림통을 이용했는데 인근의 논과 밭에서 마늘과 파 등을 뜯어 버무려 먹으면 꿀맛이다. 아직 시냇물은 차고 시린데 촌놈들은 냇가에 풍덩 빠져 물장구를 친다. 간만에 묵은 때도 벗기고 마음까지 청량하게 다듬는다. 꼬마물떼새는 시냇물과 버드나무를 사이에 두고 부산하게 날갯짓을 한다. 봄바람에 신이 나고 촌놈들의 놀이에 정겨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우리를 침입자로 생각하고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다. 새집만 보면 호기심과 장난끼 발동하는 촌놈들이지만 눈 주위에 노란색의 띠를 갖고 있는 예쁜 꼬마물떼새의 사랑스러움에 덩달아 침입자가 아니라 파수꾼 노릇을 했다. 사람과 사람사이, 인간과 자연 사이에 이토록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좀 모자라고 아쉬움이 있어도 촌놈들은 여백의 미로 생각하고 상호간에 친숙하고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했다.

비록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촌놈들이지만 하는 짓거리는 천진난만하고 자연의 후덕함을 그대로 닮았다. 조개구이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지만 조개구이보다 달콤한 초정리 촌놈들만의 추억과 자연이 준 선물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건너야 할 험하고 메마른 사막이 무수히 있지만 지난 날의 아름다운 추억과 순결한 영혼이 내 기억의 바다에 맑게 간직되어 있기에 두렵지 않다. 봄날의 초정리 하늘빛이 너무 고왔다.

고향을 생각하니 상처 입은 내 마음에도 새순이 돋기 시작한다. 투박한 질그릇의 삶, 오지그릇 삶이 그리워지고 민무늬 사랑이 새삼스럽다. 아, 나의 삶이여, 사랑이여, 추억이여, 봉선화 씨앗 터지는 생명의 소리여, 연정이여.

'천년의 다리'라 불리는 진천 농다리를 한 고개, 두 고개 건너다보니 어릴 적 시골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수많은 아날로그 서정이 내 마음을 시리고 아프게 하였지만 논두렁 밭두렁을 오가며 뛰어놀던 이야기와 시냇가에서 첨벙첨벙 물장구치던 악동들의 놀이만큼 신나는 게 없었던 것 같다. 돌다리를 건너던 소년은 지금 지천명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나의 존재는 막막하고 누추하며 비루하기 짝이 없으니, 이 길 한 가운데 서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시원과 함께 해 온 것 중에 다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징검다리, 섶다리, 방축다리, 살래다리처럼 한국의 서정이 묻어있는 다리에서부터 최첨단 공법의 다리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걷고, 자동차가 달리고, 기차가 쏜살같이 질주하는 다리에서부터 사찰의 도량과 아늑한 삶의 미학을 표현하고 있는 다리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기능과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천년의 다리에는 수많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천년의 숨결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의 다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며 마음과 마음이 하나되게 하고 자연과 문명, 이승과 저승, 현실과 이상이 만나는 곳이다. 송광사 삼청교는 속세를 떠나 부처의 길을 가려는 결연함과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구도의 세계를 기원하며 걷는 길이다. 곡성 태안사 능파각은 다리이자 금강문이며 누각의 기능까지 하면서 정갈한 마음으로 불국에 이르도록 하고 있다. 큰 돌과 작은 돌이 촘촘히 박혀 있는 선암사 승선교는 오가는 사람에게 두 팔을 벌려 품어주는 매력이 있고 불국사의 다리는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인도하는 다리가 아니던가.

조선의 돌다리 중 가장 긴 다리인 서울의 살곶이다리는 중랑천과 청계천이 합궁해 한강으로 접어들기 직전에 있는 다리이기 때문에 군사 및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다리를 밟으면 그 해에 신비한 효험을 얻는다는 풍습이 있는 청주 남석교는 지금 땅 속에 묻혀 있지만 새로운 세상의 빛과 햇살을 품을 준비가 한창이다.

농다리는 푸른 하늘과 푸른 산천, 그리고 하염없이 부서시고 흐르는 모래사장을 거느리고 있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로 작은 돌을 촘촘히 쌓아 만들었다. 100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자줏빛 지네 같은 모습으로 바람 불고, 눈보라 치고, 꽃이 피고 지고, 녹음 우거지며, 산짐승 들짐승 할 것 없이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무심하게 가고 오던 길이다. 가까이서 보면 물고기 비늘 같고 멀리서 바라보면 몸집 큰 지네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진천읍에서 남동쪽으로 6km 떨어진 구곡리 굴티마을 앞에서 진천읍내를 관류하는 백사천과 이월면을 흐르는 덕산 한천이 합류하여 큰 내를 이루는 곳에 천년을 살아 숨쉬어 왔으니 사람의 마음은 가볍고 정처 없지만 농다리는 한결같이 푸른 기운을 머금고 있다.

인근에 초평저수지와 수련원이 있어 푸르게 여문 호수와 숲과 계곡을 벗 삼으면 좋다.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가 지척에 있으니 신화와 전설과 역사의 길을 따라 투어하며 스토리텔링을 엮어도 좋다. 세종대왕이 초정리로 행차하던 중 마셨다는 소습천의 우물과 인근의 산과 들을 따라 바람처럼 구름처럼 유유히 노닐면 또 어떠한가. 천년을 견디면서 세월의 풍화가 빚어낸 기묘함을 가슴에 품고, 그 오랜 시간 속에 묻어있는 대자연의 기운을 몸으로 마음으로 호흡하며 새로운 천년을 꿈꾸면 어떠한가. 이곳은 사유의 길이자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길이며 너와 내가 하나되는 순결하되 잔잔한 감동이 물결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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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