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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운보의 집

쏟아지는 세상의 소리를 붓끝으로 담다

  • 웹출고시간2011.07.21 18:13:5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얼마나 울었을까. 그 울음의 깊이를 소슬한 가을밤은 알고 있는 것일까. 하늘에는 촘촘히 빛나는 별들이 무진장 쏟아질 것 같아 내 마음마저 아슬아슬하다. 초승달은 무엇이 그리 애달픈지 붉게 물들었고 산과 내와 들에서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람이 내 살갗에 닿자마자 새파랗게 몸을 떨었다. 한낮의 햇살이 머물고 간 들꽃세상도 고단했던지 온 몸이 축 늘어진 채 말이 없었다. 소달구지에 몸을 싣고 논두렁 밭두렁을 오가는 자글자글 주름살 많던 촌로도, 지게를 지고 뒷산으로 땔감 구하러 올라가던 검게 그을린 청년도, 마을 앞 시냇가에 모여 앉아 빨래하며 수다 떨던 아낙네도, 물살을 가로지르며 산과 내를 오르내리던 산제비도 어둠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저 속에 수많은 소리가 부서지고 다시 태어나고 합창할 것만 같은데 그 무엇도 들리는 게 없었다. 적막강산, 고립무원이다.

다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눈물 훔치며 보냈을까. 저 많은 대자연이 촐랑대며 몸부림치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 발버둥 쳐보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럴 수는 없다. 이렇게 초라하고 무의미한 나의 삶이 계속된다면 세상과의 인연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리없는 눈물, 소리없는 아우성, 소리없는 몸부림으로 절규했다. 나의 삶과 나의 추억과 나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어둠속에 우윳빛을 띤 곱디고운 여인이 내 곁으로 다가와 맑은 미소와 함께 오종종 예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가슴이 떨려왔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부르르 떠는 손을 그녀에게 맡겼다. "과일이 붉게 익고 제 맛을 내려면 뜨거운 햇볕과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되지요. 마찬가지로 슬픔이 없는 인생, 고통이 없는 삶은 가볍고 누추한 빈껍데기나 다름 없어요. 그러하니 소리를 들으려 하지 말고 저 대자연의 신비를 온 몸으로 느끼려 하세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오묘한 소리가 있는데 귀로 들을 수 없는 심연의 것을 마음으로 들어보세요. 세상이 밝아질 것이고,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 저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숨쉬는 대지의 풍경을 그림으로 담으세요."

운보의 집은 수많은 풀과 꽃과 새와 나비들의 천국이다.


순백의 여인이 홀연히 살아진 다음날, 나는 세상에 대한 눈뜸이 시작되었다. 햇살 부서지는 소리, 귀로를 재촉하는 덜커덩 덜커덩 소달구지 소리,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즐기는 소풍소리, 산새 지저귀고 시냇물 졸졸졸 흐르는 소리, 빨래하는 아낙네의 수다 떠는 소리, 푸른 하늘 드높은 산하 부서지는 소리, 붉은 물든 석양에 대자연이 춤추는 소리….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들을 화선지에 담았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세상의 모든 사물들과 그곳에서 들려오는 심연의 소리를 담으려 애썼다. 득음의 경지를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한 폭의 그림이 끝나고 나면 나는 저 풍경화 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이 생겨나고 내 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비로소 깨달았다. 나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온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안고 저들과 하나 되려 할 때 비로소 세상의 벗들이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참된 삶이라는 생각에 또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는 그를 목수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것이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를 화가로 만들었다. 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그의 재능을 살려주었다. 아내는 그에게 말을 가르치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으며 아내이자 예술가이며 동지로써 그의 곁에 함께 했다. 운보 김기창, 한국미술사에 길이 남을 그의 작품은 두 여인의 사랑과 헌신에 대한 침묵의 화답이었다.

세 살 때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은 운보의 일생은 귀먹고 말 못하는 장애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위대한 인간승리였다. 18세 때인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이래 선생은 '침묵의 심연' 속에서 무려 1만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더욱이 운보는 10년을 주기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혁신하는 놀라운 청조성과 활화산 같은 정열을 보였다. 세필細筆에서 시작해 한국 산하의 정기를 수묵水墨의 농담濃淡과 단순한 색상으로 힘차게 그려낸 '청록산수', 조선시대 민화의 정취와 익살을 대담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바보산수'를 거쳐 말년의 '걸레그림'에 이르기까지 실로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붓가는 대로 넘나들었다. "바보란 덜된 것이며 예술은 끝이 없으니 완성된 예술은 없다. 그래서 바보산수를 그린다"고 했던 운보의 말씀은 대가의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자유와 순수, 그것은 더 없는 운보의 자산이자 해학과 천진성으로 드러나는 묵필의 분수령이 되었고, 무위와 어린아이의 순수함에서 대할 수 있는 순진무구한 미감과 형상성의 바탕이 되었다. 아내인 우향이 타계한 후 운보는 한동안 시름에 잠겼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 자신의 바보산수를 구체화하여 일탈된 작업세계를 펼쳤다. 운보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다섯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신이 처한 장애와 환경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고, 둘째는 그칠 줄 모르는 정열과 창조적인 에너지로 인한 다양한 경향의 창출이며, 셋째는 바보산수에서 샘솟는 한국 미술의 정통성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그 현대적인 재해석이다. 그리고 자연주의적인 사상과 대범성, 해학적 성정도 중요한 대목이다.

2001년 1월 21일 운보가 돌아가시던 그 날까지 기거하며 창작활동을 했던 한옥 풍경. '붓만 대면 무엇이든 그림이 된다'는 운보는 어느 영역에도 구애됨 없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화필로 독창적인 경지를 이뤘는데 말년을 이곳에서 보낸 것이다.

운보만큼 표현이 큰 예술가도 흔치 않다. 세밀묘사, 파격적인 묵법 등 참으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었다. 전통적 소재인 인물과 화조에서 청록산수, 민화풍의 바보산수, 현대적 풍속도, 그리고 추상적 이미지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소재의 폭이 넓고 끝이 없었다. 봉걸레에 먹을 듬뿍 찍어 병풍 위를 오가며 붓이 가는대로 자신의 전체를 품는 행위는 섬세한 붓끝으로 세밀화를 그리던, 힘찬 필치로 세상 모든 형태를 구사하던 작가가 마지막 어느 경지에 도달한 달인으로서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고 계산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 보여주는 봉걸레의 이런 작품들은 운보의 다양한 장르 중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운보의 모든 작품에는 작가만의 내밀함과 저 깊디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의 세계가 만나고 있으니 소리 없는 아우성이요, 살아있는 자연미학이라 할 것이다.


운보의 집은 운보선생이 지난 80년대 초 이곳 형동리 일대 4만여 평 부지에 사저인 전통한옥을 비롯해 미술관, 조각공원, 카페와 갤러리 등을 건립한 후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는 문화공간이다. 이곳은 주변경관부터 빼어나다. 청주권에 이만한 경치를 자랑하는 곳도 드물 것이다. 소백산맥의 자락에 위치해 산세가 험한 울울창창 산을 뒤로 하고 있다. 물 맑고 바람 시원하고 달 밝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울 수밖에….

전통한옥은 2001년 1월 21일 운보가 돌아가시던 그 날까지 기거하며 창작활동을 했던 곳이다. '붓만 대면 무엇이든 그림이 된다'는 운보는 어느 영역에도 구애됨 없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화필로 독창적인 경지를 이뤘는데 말년을 이곳에서 보낸 것이다. 크고 작은 수석과 조경수와 샘물과 화초와 분재가 방문객 모두를 반갑게 맞이하며 운보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니 짧은 여행길에 눈과 마음이 호사스럽다.

야외조각공원과 분재를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와함께 미술관에서는 운보와 부인 우향의 작품 및 유품이 전시돼 있고 뒷산에는 푸른 대자연과 함께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다. 숲속의 길을 거닐면서 예술의 향기에 취하고 자연의 미학에 마음 빼앗기면 어떠한가. 인생이란 이처럼 쉬면서, 즐기면서 가는 노정이 아니던가. 말 대신 붓으로 세상과 뜨겁게 소통하고 사랑했던 운보선생을 다시 보고 싶다면 지금 운보의 집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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