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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난계와 영국사

느리고 힘든 해탈에 이르는 길,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 웹출고시간2011.06.23 12:38:5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해탈解脫에 이르는 길, 걷고 또 걷는다

6월은 온 세상이 눈부시다.

찬연하게 쏟아지는 햇살속에 신록은 날이면 날마다 선명하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그림자는 흔들리는 바람과 함께

신명나는 짝짓기가 한창이다.

겹겹의 시간을 지나 찾아 온 천년고찰의 오솔길엔

다람쥐와 산새 들새 한유롭고 유려하다.

나의 발걸음은 깊고 느리며 이마엔 땀방울이,

입가엔 함박미소가 가득하다.

더 없이 맑고 청명하며 화사한 6월.

그래서 나는 신기루 같은 너를 미치도록 사랑한다.

가볍게 스미고 진하게 머무는 밀월여행,

그래서 나는 너를 죽도록 사랑한다.

영국사는 언제 만나도 한폭의 풍경화요, 한 점의 서정시다.

해탈에 이르는 길은 느리고 길며 힘들고 험했다. 용초폭포와 신령스러운 은행나무를 지나 암벽을 따라 녹음이 우거진 숲속의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니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적요하다. 숲 속은 으레 고요하고 적막하며 소리 소문 없는 무념무상의 곳이던가. 숲 속의 사찰까지 소란스럽지 않고 점잖게 가부좌하고 있으니 적막강산일수밖에. 욕망의 오벨리스크를 세우고 허망한 꿈만 쫓던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절로 숙연해지고 인생의 덧없음과 난장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후회하며 엎드려 속죄를 한다.

몇 백 년을 살아온 것일까. 신령스럽고 경외감이 앞서니 내 마음이 떨려온다.

쓸쓸하고 고적한 순각도 잠시, 다시 소리가 무성하다. 산새들이 울고 시냇물이 울고 곤충들이 울고 바람마저 울면 숲 속은 온통 울부짖음이고 아우성이며 살아있음의 징표로 수굴~ 수굴~ 소리가 꼬리를 문다. 번개치고 천둥비바람이라도 시작되는 날이면 숲 속은 잔치마당이다. 그날 나는 영국사에 반짝이는 별 하나를 심었다.

영국사는 사계절 꽃천지다. 중부지방에서 가장 일찍 겨울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하다. 소나무는 겨우내 하얀 눈꽃으로 치장을 했고 수북하게 덮은 눈더미에 스스로 견디지 못해 가지가 꺾이고 쓰러져야 하는 아픔도 있지만 솔잎에 맺힌 눈꽃은 너무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한낮에 햇살을 받아 조금씩 녹기 시작하면 구슬처럼 영롱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곳에서 소나무의 절개와 꼿꼿함을 만났다. 비바람 눈보라 치는 그곳에서 고독과 가난과 외로움과 사투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반듯하게 하늘 향해 솟아있는 늠름함과 솔잎의 지조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면 산꽃 들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하고 나물들이 뾰족뾰족 올라오기 시작한다. 햇살은 한결 따뜻하고 바람도 제법 산뜻하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두릅이나 고사리순과 취나물 같은 각종 봄나물을 뜯었다.

여름에 보는 영국사는 짙푸른 녹음과 햇살의 신나는 짝짓기로 소란스럽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대자연의 합궁을 온 몸으로 즐긴다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다. 찔레꽃과 아카시아 꽃이 지더니 밤꽃 향기 그윽하고, 싸리꽃도 올망졸망 어여쁘게 피어났다. 이에 뒤질세라 안개꽃도 하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숲속에 숨어있는 산딸기가 빗물로 등목을 마친 뒤 붉은 수줍음으로 내 곁에 서 있다. 통통하고 오종종 예쁜, 붉게 익은 속살을 입안에 넣어 본다. 아,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시고 비릿하지만 입안을 감싸는 상큼 발랄한 맛, 마른 침샘에 맑은 물 솟아오르는 신비. 그래서 어느 시인은 꽃 피는 4월보다 초록의 6월이 더 아름답다고 노래했구나.

산딸기뿐이던가. 손톱만큼도 못한 하얀꽃이 피고 지면 앙증맞은 검은색의 열매가 맺는 게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까마종이라 부른다. 한 송이에 대여섯 개씩 열리는데 통통한 그것을 입안에 넣는 순가 달고 진한 액즙이 쏟아진다. 대지의 기운과 태양의 정기를 받은 까마종을 원 없이 따먹고 나면 석양의 붉은 노을이 귀로를 재촉한다. 붉고 탱탱한 보리수 열매의 단맛도 일품이다.

숲속과 호수에서 쏟아지는 피톤치드와 음이온으로 욕망의 때를 벗기고 생명의 기운을 채우면 좋겠다.

6월의 숲속에서 불멸의 향기를 느끼고 순백의 미학을 찾고 생명의 존엄함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녹음으로 우거진 영국사 바지랑대에 고추잠자리가 내려앉을 때쯤이면 산속의 열매들이 하나 둘 익어가기 시작한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하늘이 맑고 높으며 투명할수록 잠자리는 지척에서 하늬바람과 함께 가을햇살을 즐긴다. 가을꽃의 여왕이라는 산국화 꽃잎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꽃이든 바람이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하늘소 딱정벌레 장수말벌 신선나비 사슴벌레…. 이곳은 곤충들의 낙원이다. 그들에게도 먹고 사는 게 시시때때 전쟁터 같지만 나름대로 질서를 갖고 있다.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죽이고 파헤치고 부수고 짓이기는 인간의 이기와는 달리 생존을 위한 순리며 생명의 질기고 질긴 법칙 같은 것이 존재한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이곳의 생명들도 가고 옴을 계속한다. 종달새처럼 맑고 고운 것들은 알록달록 예쁜 꽃잎과 싱그러운 잎새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예쁜 것들은 무엇을 해도 곱고 예쁜 법이다.

산 정상에 3층 석탑이 오롯이 앉아 명상에 젖는다.

그리하여 영국사는 생명의 숲이다. 노곤하지만 에너지로 충만하고 흔들리지만 좌절하지 않으며 혼자인 것 같지만 수만은 동료들로 가득하다. 낱낱이 셀 수 없는 꽃잎은 지천으로 흩날리고 여기 저기 떠돌던 바람과 구름도 머물다 갈 정도로 마뜩하다. 저잣거리에서 상처입은 사람들의 고단하고 시린 손 잡아주는 치유의 공간이다. 온 종일 트림하는 대지의 노래와 무럭무럭 자라나는 숲속의 병정들과 꼼지락거리는 새싹들로 부산하다. 험한 산을 오르되 정복하려 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으며 오로지 영국사의 생명들과 함께 호흡하고 살며 사랑하려는 사람들의 지혜의 보고이자 생명의 매트릭스인 것이다.

30m 높이에서 쏟아지는 옥계폭포 물살의 아찔한 곡예비행은 이내 계곡 전체를 소리의 숲으로 만들고 나그네의 뼛속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옥계폭포와 인근의 난계국악박물관을 잇는 소풍길도 매력 만점이다. 국악의 거성 난계 박연이 폭포에서 피리와 대금을 불었다고 하여 박연폭포라고도 불린다. 30m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살의 아찔한 곡예비행은 이내 계곡 전체를 소리의 숲으로 만들고 나그네의 뼛속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젖먹던 힘을 다해 아래로 굽이치는 물살과 물살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물꽃을 보면서 작고 나약하며 보잘 것 없고 여린 인간의 존재가 쓸쓸하다는 생각에 젖는다. 피톤치드와 음이온으로 욕망의 때를 벗기고 생명의 기운을 채우면 좋겠다. 숲 속의 나무와 식물이 발산하는 피톤치드는 식물이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산하는 휘발성 물질인데 혈압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춰 주며, 몸의 긴장을 이완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또 계곡이나 폭포주변에서 물 분자와 공기가 마찰할 때 생성되는 음이온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불면증과 두통을 없애주며 집중력 강화와 식욕증진에 도움을 준다.

난계국악박물관에서는 신명나는 우리가락 체험이 한창이다.

인근의 고당리 난계국악박물관은 난계의 업적과 다양한 국악 정보를 소개하는 곳이다. 1층에는 국악실과 난계실, 영상실이 있고 2층에는 정보 검색 코너와 국악기 체험실이 있다. 그리고 난계국악기제작촌에서는 타악기와 현악기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30여종에 달하는 타악기 공방에서는 사물놀이와 모듬북의 비밀을 만날 수 있으며 국악의 향연에 흠뻑 빠져볼 수 있다. 현악기 공방에서는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붙여서 만든 울림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거문고, 큰 대의 밑뿌리와 말총 등의 조화를 통해 탄생하는 해금의 신비를 엿볼 수 있다.

이 지역 특산품인 포도로 빚은 와인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연과 문화와 역사와 함께하는 여행…. 이제 세속에 대한 자잘한 연민이나 고민거리를 훌훌 털어내자. 숲과 계곡과 오솔길을 걷고 또 걸어보자. 거기서 만나는 수많은 생명을 벗 삼아 소풍을 즐기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자. 나만의 새로운 알파파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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