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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괴산 공림사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과 천년사찰의 속삭임

  • 웹출고시간2011.02.10 21:48:5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공림사의 가을풍경. 사찰도, 방문객도, 스님도 모두 오방색으로 물들었다.

새털구름 깔린 푸른 하늘 아래 하얀 바위와 늙은 소나무와 뱀허리처럼 휘어진 오솔길과 낙엽 쓰는 스님과 합장하는 방랑자의 염원이 모여있는 곳,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의 공림사다. 첫 만남을 엷은 미소로 반겨주는 공림사를 향해 꺼낸 한 마디. 오늘 넌 눈부시게 아름답구나.

천년을 살아 온 느티나무 아래 낙엽이 흩날린다. 낙엽 쓰는 스님 뒤태가 텅 빈 충만으로 가득하다

고즈넉한 한낮, 숲에서 들리는 청아한 산새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거짓의 옷을 훌훌 벗어버린 숲에서는 맑은 솔잎향이 흐른다. 마른 풀잎들이 작은 바람에도 살랑살랑 거린다. 움직이는 것이 어디 바람뿐이겠는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움직이고 흔들린다. 강물도 끊임없이 흐르고 뒷산의 오래된 소나무는 아픈 상처를 안고 사시사철 변화의 몸부림으로 가득하다. 자연의 모든 사물들이 흔들리는 것은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썩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도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이상의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흔들리되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는 대자연의 신비처럼 우리네도 끊임없는 번민과 고뇌, 변화의 몸부림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야 한다.

'끽다거喫茶去'와 '다반사茶飯事'는 모두 차를 즐겨 마신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이미 우리 선조들은 차를 밥 먹듯 했다는 뜻인데 요즘에는 다도를 마치 특별한 사람들이 즐기는 취향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차를 즐겨 마셔야 하는데 우리네는 차보다 술을 더 잘 마신다. 그래서 누구는 "차 마시는 국민은 흥하고, 술 마시는 국민은 망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게 하며 사람과 사람의 간극을 좁혀주고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대학자이며 명필인 추사 김정희는 차를 즐겼는데 입맛 까다로운 추사에게 차를 대준 이가 초의선사였다. 초의선사는 동다송東茶訟에서 "이곳 차의 향기는 다른 곳보다 맑고 신이神異하여 능히 젊어지게 하고 고목이 되어도 되살아나듯 사람으로 하여금 장수하게 한다"며 우리 차를 예찬했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스님. 스님도 이따금 세상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공림사 주지 혜우스님은 첫 만남인 내게 우전차를 선보였다. 곡우穀雨 이전에, 그러니까 갓 솟아난 새 잎을 덖은 차가 우전차인데 그 맛이 맑고 향기롭다. 입안에 들어가는 듯싶더니 온 몸이 초록의 향긋함과 고소함으로 가득하다. 내 마음도 따뜻하고 구순해진다. 아무 말씀도 없으시던 스님은 영욕의 역사를 간직한 천년사찰 공림사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인 공림사는 신라 경문왕 때 자정선사가 창건했다. 경문왕은 자정선사의 법력을 인정해 국사의 칭호를 주었지만 자정은 국사의 지위를 사양하고 초암을 짓고 살았으며, 선사의 덕을 추모한 경문왕이 절을 세우고 공림사라는 사액을 내렸다고 전해져 온다. 조선 중기에는 법주사보다 더 융성했으나 임진왜란 때 대웅전만 남고 모두 소실됐으며 인조 때 다시 중창됐지만 6·25전쟁 당시 공비들이 절에 출몰한다는 이유로 토벌군에 의해 영하문과 사적비만 남기고 모두 전소됐다. 1960년대에 극락전과 요사채를 재건한 것을 시작으로 20여 년간 중건과 복원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니 바람 잘 날 없이 고단하게 역사의 궤적을 돌고 돌아 온 것이다.

사찰이라고 모두 똑 같지 않다. 사찰의 역사와 내력과 가람의 형태와 스님들의 도량에 따라 느낌과 감동이 다르고 수련과 정진이 다르며 생명의 기운이 다르니 찾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예컨대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봉안한 불보佛寶 사찰이고,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法寶 사찰이며,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했기 때문에 승보僧寶 사찰이라고 한다. 팔만대장경에 '큰 산은 큰 덕'이라고 했다. 큰 산은 가볍게 흔들리거나 상처받지 않고 곧은 자세로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 준다. 생명의 기운과 자연의 신비와 드높은 기상과 광활한 대자연의 큰 마음을 갖고 있다. 철철이 새로운 멋과 맛과 향기로움을 주고 있으니 자만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며 늘 푸른 마음이어야 한다. 공림사를 둘러싸고 있는 낙영산의 가르침이다.

낙영산은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등껍질 사이로 푸른 이끼가 생명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낙영산은 소나무 숲과 바위산으로 유명하다. 산 이름처럼 하늘의 구름도, 울울창창한 소나무도, 세월의 이끼를 하얗게 뒤집어 쓴 바위도, 계곡물의 폭포도 모두 그림자가 되어 출렁이고 바스락거린다. 하여 숲 속을 오르는 사람도, 하산하는 사람도 모두 낙영산의 시원한 장관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기운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며 낙영산 예찬을 아끼지 않는다. 바위와 소나무와 푸른 하늘과 맑은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의 궁합이 이곳처럼 조화로운 곳도 드물 것이니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유롭고 그 마음은 곡진하다 못해 숲속에 난반사되고 있으니 과히 절경이다. 공림사에 있는 천년 묵은 느티나무는 신령스럽다 못해 보는 이를 아찔하게 한다. 천년을 살고 있다니. 어쩌면 이 느티나무는 공림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과 세월과 생명의 이야기를 제다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위선인지, 누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왔는지를…. 그렇지만 느티나무는 단 한 번도 세상 사람들에게 천기누설을 한 적이 없다. 가볍게 듣고 가볍게 내뱉는 우리와는 생각의 깊이가 다른 것이다.

늦가을 어느 날, 곶감을 만들기 위한 스님의 손길이 분주하다.

대자연의 당찬 기운은 인근의 도명산 가령산 대야산 백악산 청화산, 그리고 화양계곡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이곳은 분명 낙원이리라. 우암 송시열이 물 맑고 숲속의 햇살 가득해 아름답기로 소문난 화양계곡에 '암서재'를 짓게 된 것도 이곳의 정기를 받아가며 책을 읽고 시를 쓰며 풍류를 즐기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발걸음을 고개 넘어 도원리로 옮겼다. 피거산 자락에 20년째 돌탑을 쌓고 있는 도원성미술관의 고승관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금속공예가인 고교수와 돌탑의 인연도 질기다. 젊은 시절,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전국을 헤매다 무릉리와 도원리를 찾게 되었고 한국의 중심이자 무릉도원의 성지라는 생각에 둥지를 텄다. 지천에 돌이 많아 친환경 소재의 살아있는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돌탑을 쌓기 시작하였지만 번번이 무너졌다. 작가의 자존심에 피멍이 가득했고, 그 피멍은 빛나는 투혼으로 재무장되었다. 곡진한 마음과 탑을 쌓는 기술, 그리고 수맥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돌탑을 완성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고교수는 300기가 넘는 돌탑을 쌓게 되었다. 또 차갑고 명료한 물성의 금속을 활용해 인간의 온기와 정감이 넘치는 조형작품을 만드는데도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돌탑이든 금속조형작품이든 그의 손때가 묻은 작품은 모두 인간과 자연이 소통하고 교감하고 있다.

북풍한설이 물러가면 이곳도 맑고 향기로운 봄꽃으로 가득할 것이다.

지금 찬 기운이 밀려온다. 일상은 자잘한 오솔길 같은 것. 모두들 떠나고 바스락거리는 낙엽과 숲속의 오솔길에 이따금씩 보이는 발자국만이 다녀간 사람들의 상처가 깊었음을 알려준다. 저것들도 새벽이면 서리 맞아 선명하게 멍울이 설 것이다. 그러니 상처받은 영혼이여, 산을 향하라. 숲을 걸어라. 이름 모를 어느 산사를 거닐며 햇살의 소중함을 만끽하라. 낙엽지는 소리에, 계곡물 흐르는 명료함에, 푸드득 거리는 새의 날갯짓에, 솔잎향의 청아함에, 햇살과 햇살 사이로 오가는 빛과 그림자의 짝짓기에, 바람의 온기에, 푸른 하늘 뭉게구름의 아련함에 비로소 나를 발견할 것이다. 삶의 지혜를 배낭에 담아올 것이다. 그곳은 생명의 숲, 오래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 글 변광섭(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 사진 홍대기(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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