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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물한계곡과 도마령

도심선 못찾는 솔바람 가득…영동 민주지산 도마령 달밭집서 별헤는 밤

  • 웹출고시간2011.06.30 17:18:0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유월의 햇살 좋은 어느 날 오후, 낯선 시골길을 걷다 돌담 틈 사이로 하얀 뭉게구름이 풀숲에 내려앉은 모습에 시선이 꽂혔다. 가던 길을 멈추었다. 버려진 시골 뒷마당이던가. 장독대 사이로 채송화 새싹이 기지개를 켜고,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대지가 내품는 흙의 날숨 들숨을 온몸으로 품고 일어서는 풀잎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누군가의 관심을 얻지 못해도 저들끼리 소꿉장난하고 햇살과 새소리 바람소리와 어깨동무하며 노래하는 모습이 마뜩해보였다. 어찌 저리도 평화롭고 다정해 보일 수 있을까. 나는 저 풀숲이 궁금해 돌담을 뛰어넘어 들어갔다. 낯선 침입자가 된 나는 몸을 낮추고 숨소리 발자국소리까지 숨죽였다. 침입자를 아는 것일까. 풀숲의 전령 민들레는 화들짝 놀라기는커녕 어서 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터질 것만 같은 하얀 속살을 기꺼이 내게 맡겼다.

"안녕, 여기는 들꽃이 모여 사는 앉은뱅이 숲이야. 내 이름은 솜털구름이지. 솜털처럼 가볍고 하얀 홀씨 같다고 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야. 지난 겨울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어. 북풍한설이 왜 이리도 길고 질기던지, 꽁꽁 언 땅을 비집고 세상 밖으로 올라오는데 젖 먹던 힘을 다 쏟아 부어야 했어. 그래도 나는 행복해, 이처럼 맑고 향기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너 아니·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나 아닌 누군가에게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준 날이 오늘이라는 것을. 너무 떨리고 부끄러워. 그리고 내 곁에 있어준 네가 고마워."


민들레는 가볍게 더 가볍게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고 방긋 미소를 띠운다.

풀숲의 친구들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려는지 민들레 홀씨 하나가 살포시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친구들도 하나 둘 그 뒤를 따라가며 춤추기 시작했다. 순간 풀숲은 노래하는 교실, 춤추는 악동들의 낙원이 되었다. 나도 풀숲에 앉아 저들과 함께 아득하고 누추한 삶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솜털 같은 자유인이 되고 싶다.

영동 민주지산 도마령의 도담요 풍경.

충북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담안마을 달밭집. 민주지산 도마령 7부 능선쯤에 위치한 달밭집은 도예가 도담島潭 김계순 작가가 둥지를 틀고 자연과 호흡하며 삶을 즐기는 공간이다. 하늘과 가까운 산중의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위치해 있지만 바람과 햇살, 구름과 무성한 숲, 계곡과 계곡을 넘나드는 날짐승과 들짐승이 모두 가족이자 벗들이다. 작가는 이곳에 황토집과 황토공방을 짓고 장작가마를 손수 만들었다. 모두 이곳의 흙으로 빚었고 이곳의 나무를 재료로 했다.

하늘과 가깝다 보니 밤하늘은 온통 별천지다. 도회지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어디 그 뿐인가. 보름달이 너무 붉고 밝아 산 정상에 불이 난 줄 알고 119에 신고를 한 적이 있으니 달밭집이라는 이름이 제격일수밖에….

나는 딸들과 함께 달밭집의 황토방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여름휴가를 섬으로 가자는 아이들의 주문을 묵살하고 '아주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줄 테니 잔 말 말고 따라오라는 애비로서의 권위에 기죽어 있었는데 초롱초롱한 별빛 달빛에, 밀림 같은 적막강산에, 찰랑찰랑 거리는 바람소리 물소리에 아이들은 잠시도 엉덩이를 가만 두지 않는다. 대자연과 함께 까불까불 거리는 모습이 별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마침 작가와 인연이 깊은 대금연주자, 소리꾼, 그리고 사진작가 부부까지 하룻밤을 함께 묵을 수 있었으니 그날 밤을 그냥 보낼 리 만무하다. 마당에 장작불을 지피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삼겹살 파티에 노래와 흥이 뒤따랐다. 제 아무리 크게 떠들고 지랄대도 간섭하는 이 아무도 없다. 그저 도마령의 이름 모를 대자연만이 그날의 추태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곳에서 손수 흙을 구하고 그릇을 빚으며 장작불을 땐다. 정교함이 아닌 자유분방함으로, 유약이 아닌 가마속에서 재를 날려 표현하는 기법으로, 인공이 아닌 불꽃과 황토의 조화를 통해 그릇을 만들고 살며 사랑한다. 작가의 아담한 가마를 보는 순간 소설가 김훈이 쓴 <자전거 여행>에서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불길은 새롭게 흔들리는 바람이다. 봉통에 때는 불은 첫째 칸을 예열시키고, 첫째 칸을 돌아나온 불길은 여러 개의 살창구멍으로 빠져나가 둘째 칸을 예열시킨다.(중략) 가마를 익히는 불길은 열熱이 아니라 흐름이다. 겉불꽃은 공기와 더불어 발랄하게 놀아난다. 겉불꽃은 자유롭고 무질서하고 불안정하다. 대체로 말해서 분청사기와 막사발의 그 자유롭고 여유로운 질감은 이 겉불꽃이 놀다간 자리이다. 그래서 막사발들은 사람처럼 제각기의 표정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인용이 길었지만 김훈의 표현 그대로 작가의 작품은 모양새나 느낌, 그리고 질감이 모두 다르다. 그 어느 것 하나 똑같거나 비슷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고 자연스러우며 정감이 있다. 장작가마에서 구운 도자기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것 같다.


작가는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작업장에 차실을 꾸몄다. 변변치 않은 공간이지만 공방의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 있고 작가의 에너지까지 엿볼 수 있으니 잘 꾸며진 차실 부럽지 않다. 그곳에서 세상사는 이야기 잠시 접고 작가와 오롯이 앉아 차 한 잔 하면 좋다. 지천명을 훌쩍 넘긴 작가의 얼굴에 맑고 투명한 소녀 같은 물기가 흐른다. 이야기 곳곳에 그녀의 하얀 웃음까지 곁들였으니 자연과 평화, 사랑과 행복이라고 해야 할까. 돈 욕심 사람 욕심 없이 오직 자연을 벗 삼아 좋은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무소유의 정신을 만나는 순간이다.

광란의 불꽃, 굽힐 줄 모르는 뜨거운 불덩어리에서 나온 그릇은 황홀하다. 다탁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것들 중 손님 맘에 드는 것을 골라 찻잔으로 쓴다. 일찍이 도예가 김갑순 선생과 자연주의자이며 프랑스 나오리에서 활동하는 도예가 양승호 선생에게 수련했으니 자연의 숨결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찻잔, 다완, 다기세트, 차탁, 화병 등 차실을 꾸미고 차를 마실 때 쓰는 것들을 중심으로 작업을 한다.

이곳에는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풍경도 만날 수 있는데 황토방 지붕을 감싸고 있는 박꽃이 그렇고, 재래식 화장실도 재미있으며, 인근 산속에서 채취한 것들로 효소를 만드는 옹기도 흥미롭다. 박꽃이라는 게 워낙 지조가 있어 낮에는 수줍음을 많이 타 꽃봉오리를 살짝 감싸고 있다 어둑어둑해져야 꽃잎을 화사하게 펼쳐 보인다. 거기에 달이라도 뜨면 박꽃과 달님의 한여름 밤 사랑이야기는 절정을 이루는데 아, 허전한 아름다움이여 순백의 미학이여.

재래식 화장실은 말 그대로 뒷간이지만 구역질이 나지 않고 되레 구수한 향이 난다. 소나무를 잘라 얼기설기 지은 똥간이지만 내 마음의 안과 밖을 오가며 사색할 수 있는 또 다른 아지트다. 똥을 누고 톱밥과 재를 뿌리게 했으니 냄새도 잡고 거름으로도 안성맞춤인 것이다. 최근 영국에서 열린 꽃박람회에 한국의 뒷간정원이 최고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한국의 자연미학과 철학과 생활과학을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가 직접 만든 옹기에 수십 가지의 효소를 만드는 모습도 신기하다. 산야초, 오디, 함초 등 계절마다 산 중에 자라나는 야생초를 발효시키는 것인데 공방에도 가득하고, 공방과 황토방을 오가는 오솔길에도 가득하다. 저 속이 궁금하다. 효소가 숨쉬는 것 같아, 저것들이 무슨 은밀한 짓이라도 할 것 같아 내 마음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들떠 있다. 이쯤되면 냄새라도 맡아보라며 저것들 중 뚜껑 하나를 열어줄 텐데 눈치를 보니 그럴 것 같지 않다. 다음에 오면 저것들을 아작내고 말리라.

돌아오는 길에 물한계곡을 들렀다. 쏟아지는 계곡물과 소리치는 대자연의 풍경과 눈부시게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춤추는 곳, 이 동네의 특산품인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여물어 가고 감나무 터널이 이방인을 위해 파란 미소를 띠운다. 오늘 나는 아버지와 딸이라는 추억의 상자 속에 또 하나의 추억을 담아왔다.

여기는 소리의 숲

산꽃 들꽃 지화자 좋다며 춤을 추고

산새 들새 햇살속에 촐랑대고

쏟아지는 계곡물 하얀물살

내 마음을 적시며

여기저기서 녹음 올라오며 기지개를 켜니

소리의 숲, 물한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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