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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옥천 향수30리

초록빛 향수에 젖어 꿈엔들 잊힐리야

  • 웹출고시간2011.06.16 17:51:2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6월 햇살의 키스로 더욱 빛나는 초록 잎새,

바람아 너는 아느냐

흔들리는 저들의 마음을.

푸른 하늘은 왜 풀잎위에서 노니는지

구름은 왜 호수에 내려 앉아 깊고 느리게

물결치는지

그리하여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빛과 소리와 향기로 가득한지

바람아 너는 아느냐

이토록 찬연한 6월의 햇살은 무엇으로 사는지.


햇볕 따가운 여름 한낮에 시골길을 걷다보면 늘 나의 시선은 낮은 곳으로 향한다. 높고 푸른 하늘, 울울창창한 산맥, 그리고 드넓은 호수를 아니보지는 않겠지만 햇볕을 피해 그늘 밑을 찾거나 땅을 보며 조근조근 걷게 마련이다.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신비, 대자연의 내밀함을 발견하게 되는데 여름에 더욱 아름답게 피는 꽃 야생화를 통해 자연의 속살을 감상하는 재미가 흥미롭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피는 여름꽃의 대명사가 해당화라면 시골 논두렁 밭두렁에 피는 대표적인 여름꽃은 쇠비름, 벌개미취, 약모밀, 그리고 패랭이꽃이 아닐까. 쇠비름은 장명채長命菜라고 하여 오래 먹으면 장수한다고도 했으며 늙어도 머리카락이 희어지지 않는 토종 야생화다. 낮고 넓게 자라는 쇠비름은 푸른 잎에 줄기는 붉으며, 꽃은 노랗고, 뿌리는 희고, 씨앗은 까맣다. 이렇게 다섯가지 색을 갖추었다 하여 오행초라고도 하는 쇠비름은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 나물로 애용될 뿐 아니라 설사를 멎게 하고 눈을 치료하는데도 효험이 있다고 했으니 시골 사람들의 기분 좋은 동반자였다.


화려하지도 기묘하지도 않은 벌개미취는 소박한 지성미를 자랑하며 초여름에서 가을까지 오랫동안 꽃을 피우고 온 벌판을 장식한다. 이 또한 반찬으로, 약용으로 애용되었으나 요즘은 그 귀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천으로 널려있을 뿐이다. 노란색 꽃을 피우는 삼백초과의 약모밀은 열 가지 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십약十藥이라고도 하는데 고혈압과 동맥경화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소녀의 발그레한 볼살을 보면 그 수줍음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때묻지 않은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간직한 패랭이꽃. 이슬이 마르기 전에, 햇살이 갓 솟아오른 새벽에 만나는 패랭이꽃은 오종종 예쁘고 정겹고 수다스럽다. 이처럼 여름꽃을 보며 시골길을 걷는 즐거움이란 도시의 뒷골목에서는 감히 상상을 할 수 없는 축복의 시간이며 낯설음에 대한 설렘이자 새로운 것을 찾아 여행하는 콜럼버스의 발견이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장계리까지 30리길을 여행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러하리라.


하계리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섬세하며 미려한 언어, 대자연의 미물을 시리고 아플 정도로 선명하게 묘사하는 언어의 마술사인 그는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은 이 땅의 살아있는 시인이다. 이상을 등단시키고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시인 정지용이 한국 문단의 거목으로 우리 곁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때묻지 않은 한국의 자연미학을 그대로 품고 있는 옥천이라는 고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1902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1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생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의 죽향초등학교)에 다녔으며, 14살 때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집을 떠나 객지생활을 시작하였다. 정지용의 본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다른 집이 들어섰으나, 1996년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생가 앞에는 국민가요이자 국민시 '향수'에 나오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주변의 골목길 풍경이 한유로우며 낮고 느린 논두렁 밭두렁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새 숲과 계곡이 쏟아진다. 자글자글 주름으로 가득한 구릿빛 농부들과 새참 나르는 아낙네의 풍경 또한 한 폭의 그림이다. 푸른 들녘을 따라 걷는 발걸음이 한결 여유롭다. 싱그러운 대자연에 온 몸이 초록으로 물감들고 마음까지 노곤해진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쯤이면 둔주봉(384m)에 도달한다. 둔주봉 아래로 비단처럼 흐르는 금강이 빚은 한반도 지형은 일품이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아니면 나 홀로 걸으면 또 어떤가. 호젓한 강변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한 나그네라는 생각에 젖는다.


바로 이곳이 옥천의 새로운 관광 명소 '향수 30리'길이다. 정지용 생가가 있는 하계리에서 장계리의 '멋진 신세계'를 잇는 30리 문화의 숲을 말한다. '멋진 신세계'는 정지용의 시를 주제로 오래되고 방치돼 사람들에게 잊힌 장계관광지를 새롭게 꾸미고 붙인 이름이다. '향수 30리'길은 예술과 관광이 오묘하게 조합돼 신기하고 볼거리가 많다. 둔주봉은 30리길의 하이라이트다. 둔주봉이 알려진 것은 사진 동호인이 올린 한반도 지형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부터다. 이에 발맞춰 안남면사무소에서는 등산로를 내고 정자를 세웠다. 산길은 안남면 연주리 안남초등학교를 들머리로 전망대와 정상을 거친 후에 피실로 내려와 금강을 따라 걷는 코스가 좋다.


금강 따라 이어진 호젓한 숲길은 소나무숲을 지나 참나무숲으로 들어가야 둔주봉의 깊은 품속에 다다른다. 붉게 물든 꽃밭에 호랑나비 한 쌍이 화려한 구애 비행을 펼치고 있다. 고갯길을 넘나드는 산제비는 허공을 한 바퀴 휘익 돌며 저 산 너머로 사라진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행여 밟힐라 조심스럽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들꽃을 보면서 청정한 자연을 간직한 저것들도 참으로 고단한 삶의 연속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세상 사람들에게 아픈 이야기나 슬픈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일 뿐, 어느 순간 인간의 이기에 짓밟히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은은한 녹음을 담고 흐르는 피실 강변길은 금강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구간이다. 숲과 금강의 아름다운 만남 속에 나그네가 서 있으니 나는 숲의 방랑자요, 강변의 시인이며, 오솔길의 정처 없는 유목민이다. 금정골을 빠져나올 때쯤이면 생명의 숲처럼 내 마음도 숲의 그늘과 강물의 초록 물결로 물든다. 30리길을 걷으면서 만나는 주옥같은 한국의 서정시와 수다스런 조형물을 함께 볼 수 있는 시문학벨트도 이번 여행의 별미라 할 것이다.

옥천은 옻나무와 생선국수가 유명하다. 옻나무는 버릴 게 하나 없다. 5월에 먹는 옻순은 주홍색 새싹이 3cm 정도 자랄 때 따서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싱그러운 맛이 일품이다. 음식의 재료로, 한방의 원료로, 옻칠공예의 필수품으로 애용되기도 한다. 생선국수는 정지용 생가 앞의 구읍식당과 대박집이 잘한다. 고풍스러운 고택인 춘추민속관은 한옥체험, 전통혼례, 한옥학교 등을 운영한다. 옥천 향수30리길은 번잡한 도시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길이다. 숲속의 피톤치드는 심폐기능을 돕고 강가엔 불면증을 없애주는 음이온이 숨쉬고 있으며 새록새록 추억을 잉태시키고 있으니 고향의 길, 생명의 길이며 새로운 미래로 가는 안락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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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