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유제완

충북문인협회장

엊그제까지 맹위를 떨치던 폭염도 고개를 숙이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분다. 잠잘 땐 열었던 방문도 닫아야 하고 엷은 이불도 덮어야 한다.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휴일을 맞아 농촌 들녘에 나가보니 어느새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과일도 몸집을 잔뜩 키워 제 색깔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참으로 세월이 빠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한다. 70대는 70㎞ 세월이 달음질친다더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새 사이로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세월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처럼 내가 세월의 아쉬움을 갖는다는 것은 이는 곧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연민이 아니겠는가.

끔찍한 시련과 핍박 속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도 '인생은 아름답다' 했으니 삶이란 어쩌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게다.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식상하기 조차한 이 아포니즘에 동의하는 것을 나 또한 삶의 역정이 순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좌절과 절망을 겪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그동안 내게 주어진 시련들은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나 세상에 등불이 되어주는 훌륭한 분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구국열사들의 그것과 비교되지 못하지만 늘 무엇을 이뤄 보겠다는 의지만 갖고 나섰던 무모함 때문에 좌절과 시련도 남달리 많이 겪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주위에 처한 환경과 인간관계에 얽매여 딛고 일어서야만 했다.

나이가 든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있어 지금이 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그 고통의 날들을 양념처럼 추억으로 떠올리며 내 무뎌진 감성을 자극하곤 한다. 오늘도 나는 남은 생애의 어느 굽이길에서 오늘을 생각하며 후회를 되뇌일까봐 진정한 삶을 채찍질 해 본다.

어떤 친구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왜 평생 신문과 함께 했습니까' 내 대답은 쉬웠다. '적성에도 맞고 먹고 살기 위해서지' 신문사에 입사한 한참 후에야 내 직업에 대한 보람이나 긍지를 갖게 된 것이지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 매달렸던 것이다.

사람처럼 영혼의 스펙트럼이 넓은 존재는 없다. 사람은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아 먹을 수도 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사람과 짐승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사람은 언어로써 뜻이 통하고 제도로써 공평하게 나누는 길을 찾는다. 사랑과 연민으로써 존재의 의미도 찾는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김춘수 시인이 노래한 그 꽃이 되는 게 사람이다.

여기서 이름은 존재의 원래 의미일 것이다. 더 비약한다면 사람은 스스로 깨달아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의 삶은 짐승처럼 천박하게 사는가 하면 하늘에 신과 같이 사는 경우도 있다. 어떤 층에서 살아가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내가 요즘 꿈꾸는 것은 대부분 이루기 어려운 것들뿐이다. 영원히나 불멸 같은 꿈, 완전한 사랑, 완전한 삶,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글을 남기는 꿈,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백 번, 천 번 생각해도 이룰 수 없는 꿈인데 욕심을 낸다.

생각하면 사람이기 때문에 깊어지는 삶에 내면 풍경이 메마른데서 오는 병일 것이다.

낙출허(樂出虛) 즐거움은 마음을 비우는 데서 비롯된다. 최근에 새롭게 익힌 말이다. 마음을 고요하고 한가하게 지니고 분수에 넘치게 바라는 마음을 반쯤 접어 둘 때 즐거움이 생겨난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글귀를 다가온 이 가을과 함께 하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고요하게 지니고 분수에 넘치는 마음을 접는 법을 터득해야겠다.

'그렇게 살다 왔다고 해라' 서암스님이 마지막 남긴 말이다. 허허로운 삶을 살다 입적한 서암스님이 세상살이에 대해 기쁠 것도, 괴로울 것도 없고 지나고 보면 모두가 한바탕 꿈이라며 무소유, 무집착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다. 아침저녁 찬바람은 소리 없이 이슬을 서리로 변화시키고 신록의 푸르름도 단풍으로 바꿔 버릴 것이다.

가을은 버릴 줄을 아는 진리를 가르치는 계절이다. 단풍줄에 서있는 나도 낙엽 될 날이 머지 않으니 비울 줄 아는 법을 배워야 되지 않겠는가.

떠나가고 잃어가는 세월 속에서 내가 얻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또 실제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 있어야만 공허해지지 않는다.

내 인생 안에 도대체 무엇이 예정돼 있고 그 인생이 어떻게 마감될지는 알지 못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후회없이 사는 게 삶의 지혜일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