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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완

충북문협회장

우암산 자락 거처가 온통 녹색바다에 파묻혔다.

이곳 상좌골 오르는 길옆에 피었던 이팝나무 꽃은 흰 눈이 되어 아스팔트위에 때 아닌 설경을 그렸고 짙은 꽃향기로 자극하던 아카시아도 누렇게 퇴색되면서 꽃잎을 맥없이 땅위에 떨어뜨린다. 연록색의 조화가 무너지더니 녹색 바탕에 빨간 장미만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집 뒤뜰의 가족같은 감나무 소나무 연산홍 국화등은 녹색 옷을 입고 자태를 뽐낸다. 엊그제까지 우리 집을 지키던 검둥이는 먼나라로 떠나고 들고양이 한 마리가 빈자리를 메꾼다.

삼남매 자식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떠나보낸 우리 부부가 10년 가까이 살아온 거처는 밖에서 생활하는 우리보다 이들이 변함없이 지켜주는 가족이다.

돈을 투자해서 먹을거리를 마련해 주는 동물 가족은 밥값이라도 해야겠다고 짖어대고 울어대고 분주하지만 식물이라 불리는 가족들은 너무나 내성적이고 조용하다.

한자리에 자리 잡으면 옮겨주기 전엔 끔쩍도 하지 않고 굳굳함을 보여 가끔은 그 존재를 잊어 버릴 때가 있다.

이들의 조용함은 집안에서 보호받는 가구나 벽에 걸린 그림들의 정숙성과는 전혀 다르다.

가만히 있는 것은 바로 적극적인 삶의 형태일 뿐 식물들은 그 부동의 자세 안쪽으로 쉼 없이 움직여 자신을 살찌우며 꽃을 맺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후계를 위한 결실을 맺는다.

눈보라 속에서 풀죽은 듯 지내다가 때가 되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그들의 삶을 보면 살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일단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면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공격에도 인내할 줄 안다.

빛과 물만 먹고도 쓰러진다고 엄살 부리지 않고 사람이 자기 시각에 맞춰 팔다리를 잘라내도 불평 한마디 없다. 가뭄으로 물이 없을 때면 차라리 고사하고 마는 고고한 성품은 우리 선조들의 기품을 닮았다.

반면 동물가족은 기온에도 민감하고 사람의 관심을 받으려 애쓴다.

검둥이가 먼나라로 간뒤 자기집 드나들 듯 찾는 길고양이는 얼룩무늬 토종 고양이다. 앙증맞은 모습은 귀엽지만 무단 침입해 남에 것을 탐하는 쥐를 잡을 때는 야성의 본능을 드러낸다.

우리 부부는 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그 대가는 반드시 치뤄야 한다. 아침 일찍부터 이들의 냄새나는 배설물을 치워야 하고 나날이 올라가는 이들의 사료 값을 부담해야 한다.

주말엔 목욕도 시켜줘야 하고 모처럼 휴가를 떠날 때도 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이웃에게 신세를 져야만 한다. 요즘같이 털갈이를 할 때면 집안 청소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식물은 머리가 아닌 본능으로 자신을 변신하고 아름다움과 맑은 공기를 선물하지만 동물은 주는 만큼 대가를 요구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이들의 장점과 단점이 조화를 이루며 우리 가족으로 그 역할을 하게 될 때 아내와 나는 이 공간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인간은 개별적 존재지만 '우리'라는 울타리에 함께 하는데서 위안을 얻는다.

또 얻는 만큼 책임도 무겁다. 나도 가족의 선장으로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남은 삶을 위해, 어떤 삶이든 살아 있음은 숭고한 일이므로 그 숭고한 삶을 위해 남은 생을 헌신할 필요를 느낀다.

세상만사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 흐르는 물에 자신을 던지고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적인 삶을 살아갈 때 존재의 이유를 얻는다.

이제 꽃피는 봄날은 지나간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때론 천둥번개 태풍이 몰아치는 험난한 여정을 겪어야 한다. 따스함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이 순간이 진정 행복한 시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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