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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사람들 - 괴산 전통시장 생선좌판 서영선·김혜리 부부

  • 웹출고시간2016.04.17 15:50:34
  • 최종수정2016.04.17 15:50:34

괴산농협쪽에서 바라본 괴산 장터 초입이 장꾼들과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충북일보=괴산] 식목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 28일 괴산전통시장을 찾았다.

완연한 봄 날씨를 맞아 오늘따라 장터에는 온갖 물건을 갖고 자리를 편 장꾼들과 장터를 찾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괴산장터는 읍내로 16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날이면70여명의 장꾼이 모여 장사진을 이룬다.

장터는 비가림 시설이 있는 전통시장과 이면도로에 난장으로 펼쳐지는데 먹거리가 많은 도로쪽에 인파가 많이 몰린다.

오늘은 생선장수에서 목사로 활동하다 다시 장꾼으로 살고 있다는 서씨 부부를 찾아 그가 살아온 길을 들어봤다.

자~아! "한보따리에 5천원 물 좋은 생선 들여가세요"..

남편은 생선을 손질하고 부인은 비닐봉투에 생선을 담고 있다 . 보통 손질은 서씨가하고 부인은 생선 상담과 수금을 한다.

할머니 저번 장에는 왜 안 오셨어· 응 허리가 아파서 못 나왔지.. 그래 지금은 괜찮으세요· 괜찮으니 장엘 나왔지. 갈치 좀 줘..예 할머니

서영선씨가 정답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익숙하게 갈치 손질을 한다.

3일, 8일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괴산읍 전통시장 괴산장터에 가면 괴산농협 앞에서 서영선(63), 김혜리(63)씨 부부가 생선 좌판을 펼치고 능숙한 칼질로 손님을 맞고 있다.

괴산전통시장

장꾼이 된 이유는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부부도 다른 장꾼처럼 처음에는 먹고 살기위해 장사를 시작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보다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장에 나서는 독특한 장꾼이다.

부부는 경기도 광주에서 동갑이내기인 아내를 만나 23세에 결혼을 하고, 경기도 광주에서 작은 누이가 운영하는 조그만 목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어렵게 보내다 큰 딸이 청주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서씨 부부는 큰딸의 학업을 위해 청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생면부지인 청주에 와서 서씨는 옥산의 평범한 직장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취직을 한지 채 1년이 안되서 사고를 당한다.

서씨가 공장에서 작업도중 기계에 손가락을 다쳐 쇠를 4개를 삽입하는 중상을 입고, 근 한 달간을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서영선·김혜리 부부

그러나 이 사건이 서씨부부의 인생을 통째로 뒤 바뀌게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당시 서씨는 먹고 사는 것이 어찌나 궁핍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게 막막했던지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며 아내 몰래 눈물도 참 많이 흘렸다고 한다. 얼마나 절박하고 힘이 들었으면... 오죽하면 아내가 고생을 참지 못하고 도망이나 가지 않을까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다 했었다며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모두 아내의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병상에 누워 퇴원 후에 살아나갈 방법을 고민하고 있던 중 '궁하면 통한다'고 같은 교회에 다니던 집사님이 아내에게 생선장수를 권유했다.

장사라곤 전혀해보지 않아 낮가림이 심한 서씨는 처음에는 극구 반대를 했다. 그러다 아내의 설득(주님의 뜻)과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는 자식들의 얼굴을 떠 올리고 장사를 할 것을 결심한다.

김혜림씨는 장사 도중에도 틈틈이 생선의 신선도를 위해 물을 뿌리며 생선을 정리한다.

퇴원 후 부부는 맨 주먹으로 청주 육거리 시장에 있는 생선 도매상(삼일수산)을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물건을 팔아서 값을 치를테니 오징어 10짝을 외상으로 달라고 막무가네로 요구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부부의 말을 들은 사장님이 "우선 2짝으로 시작을 해보라"며 선뜻 오징어 2짝을 내주었다.

부부는 들뜬마음에 아무생각 없이 티코에 오징어를 싣고 무작정 강서 쪽으로 가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장사를 시작했다. 아내가 오징어사려 하는 외침을 하자 동네 아주머니 몇분이 오징어를 살려고 모였으나, 오징어가 얼어붙은 상태로 떨어지지가 않아 고생하면서도 결국 1시간만에 다 팔았다. 부부는 그 길로 도매상으로 돌아가 오징어 2짝 외상값을 갚고 다시 2짝을 받아 역시 2시간도 안돼서 다 팔았다.

그렇게 첫 날 벌은 수입이 3만원, 부부는 그 날 밤 기뻐서 잠을 못 이뤘다. 부부가 계산을 해본 결과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훨씬 금액에 놀라며 장사를 계속하기로 작정한다.

다음 날은 서씨 혼자 장사 길에 나서 오징어 5짝을 팔았으나, 집에 와 계산을 해보니 원금만 남았다. 서 사장이 오징어 크기를 무시하고 전 날 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윤은 없었지만 동네에 '티코 오징어'는 싱싱하고 값이 싸다는 소문이 나기시작 했다.

부부가 몇일 후 그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는 오징어 2짝, 꽁치 2짝, 동태 2짝을 모두 팔았다. 생선이 잘 팔리자 욕심을 내 생닭도 팔기로 하고,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장판을 주워 티코에 깔고 마이크와 스피커는 중고자동차 매매센터에서 얻어 장치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서씨에 의하면 어찌된 일인지 물건만 가지고 나가면 어김없이 모두 팔렸다. 생닭 50마리가 한시간도 안되서 다 팔리고 다시 50마릴 다팔아도 오후 4시께면 장사를 접고 집으로 와 성경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티코를 타고 장사를 하고 있었는 데 1992년께 하루는 "본격적인 장사를 하려면 리어카로 장터에서 장사를 해야 한다"는 삼일상회 사장님의 조언을 듣고 리어카에 각종 생선과 생닭을 싣고 조치원, 괴산, 증평, 진천, 음성장을 찾아다니며 장사를 시작했다.

장터를 떠돌기 시작한지 1년만에 서씨는 드디어 조치원장에 내 자리를 마련하고 본격적인 생선 좌판을 펼쳤다.

부부는 장사를 시작한 후로 한번도 장을 거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태풍이 와도 폭설이 내려도 장날이면 반드시 장에 나가 좌판을 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주님의 뜻인지 몰라도 장터에 자리를 잡은 후에도 준비해간 물건들을 남보다 항상 일찍 다 팔고 돌아와 성경공부에 매진했다.

조치원에 좌판을 펴고 장사를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각 장(중부4군, 충주)에 내 자리를 마련하고 열심히 장사를 하다 보니 살림이 안정됐다.

2003년 아내가 신학대학을 권유했으나, 서씨는 장로로서의 역할에도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반대를 했다.

그러나 아내가 대신 신학대학에 등록을 하고나서 다시 권유를 해와 아내의 말대로 주님을 믿고 낮에는 장에 나가 열심히 장사를 하는 와중에도 주일에는 목회 일을 밤에는 신학공부에 주력한 끝에 7년만인 2010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목사안수를 받고나서 부부는 목회 일에 전념코자 다니던 모든 장을 접고 청주 시내에 생선 도매상을 차리고 집에서 목회 일에 전념하다 드디어 1년 후 청주 가경동에 개척교회를 설립 신앙 전파에 몰두했으나 여의치 않자 때가 아님을 알고 3년만에 교회를 그만둔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성전을 준비키 위해 다시 장꾼의 길로 들어섰다.

서 부부의 꿈은 군 복무를 하는 막내아들이 전역 후 의대를 진학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복음과 인술을 펼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받침을 하는 것과 평생 숙원인 성전 건축을 위해 부부는 오늘도 열심히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괴산 / 김성훈기자 hunij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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