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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아름다움 자태와 기교 - 태고정과 공북루 방화수류정

부서지고 그을리고…세월의 흔적 아름다움으로 고스란히

  • 웹출고시간2013.10.09 19:04:43
  • 최종수정2013.10.17 17:29:26
하늘이 점점 높아지는 풍요의 계절 가을이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 낭만적인 여행을 떠나거나, 대한민국 곳곳에 자리한 역사적 흔적을 찾아 마음의 양식을 채워가는 답사를 떠나기 좋은 시절이다.

하지만, 계획단계부터 일정이나 자금에 빠듯해 하며 실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오랫동안 마음을 모았던 일이라 부담을 안고서라도 길을 잡아 떠나기도 한다. 그런 저런 일들이 부담을 주기도 하지만, 길 떠나는 마음은 가볍고 벅차다.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아름답지 않는 곳은 없지만, 문화유산과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고 아름답다. 대한민국 중심에 위치한 경기도, 그곳에서도 남부지역의 중심도시인수원에 오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을 만날 수 있다.

염상덕 수원문화원장으로부터 수원화성과 방화수류정에 대한 설명을 들어본다.

염상덕 수원문화원장 인터뷰

"화성, 조선후기 정치·경제·사회적 변화 집약한 문화유산"

△수원화성, 방화수류정은 어떻게 찾아가나?

- 수원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팔달문이나 북문으로 오는 방법과 고속도로를 타고 와서 화성행궁이나 화성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둘러보는 방법이 있다. 교통편이 좋아서 하루만의 짧은 여유라 해도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는 조건이다.

△수원화성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 수원화성은 조선후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집약한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수원화성에 도착하면 처음에 마주하는 곳이 대체로 화성행궁이다. 팔달산을 든든한 뒷배경으로 하고 웅장하게 자리잡은 화성행궁과 넓은 행궁광장을 마주하게 된다. 팔달산은 작은 산이지만, 정상에 올라가면 맑은 날에는 주변 10킬로 내외의 오산, 화성, 용인까지도 관망할 수 있는 곳이다.

화성의 자리잡음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지리적인 위치 점유에 있다. 주변을 에둘러 보아도 막히는 곳이 없이 탁트인 시원한 공간이 군사적인 방어와 대도회지로의 성장이 가능하게 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의 구조는?

- 화성은 평지성과 산성이 결합된 구조다. 조선의 당당한 군왕인 정조가 도착해서 제일먼저 맞이하게 되는 장안문의 든든한 위용, 서쪽으로 단아하고 아름다운 보물 화서문과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군사적 시설인 서북공심돈이 자리하고 있다.

팔달산으로 오르면 굳건한 서장대가 위치한다. 마치 정조대왕의 심지인듯 작지만 단단하고 높은 기상을 자랑한다. 팔달산에서 팔달문으로 성벽이 이어진다. 팔달문은 최근 복원수리를 마쳐 화려함을 더했다.

동쪽으로 얕은 산자락을 따라 외적의 침임을 알리는 봉돈이 있고, 창룡문이 위치한다. 수원사람들은 "북문은 부서지고,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있고, 남문은 남아 있다" 한다.

일제시대도 견딘 수원화성의 사대문이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무너진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한바퀴를 돌고 나면 동쪽과 북쪽의 중간쯤에 광교산 자락에서 흘러내려오는 수원천과 잇닿아 있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만나게 된다.

△방화수류정의 구조는?

-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은 수원화성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단아한 화홍문과 화려한 방화수류정(보물 1709호)은 화성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방화수류정은 동북각루라고도 불리며,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詩)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다.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조선 헌종 14년(1848)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방화수류정은 어떠한 역할을 해 왔는가?

-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고,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방화수류정 밖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일명 용연이라고 부르는데, 가을 달빛이 풍성한 때방화수류정에서 이어지는 성벽과 각건대와 동장대(연무대)로 이어지는 선은 고고하기까지 하다.

누각에 올라서 시한수 읊조릴 수 있다면 신선이 따로 없을 것이다. 사계절 어느 때라도 좋다. 봄에는 꽃들이 넘치고, 여름에는 신록이, 가을에는 달빛이, 겨울에는 하얀 눈이 자리를 채워 액자를 만든다.

△화성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은?

- 수원에서는 여러 가지 실험들이 진행중이다. 화성 축성 200주년에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화성의 아름다움과 정조의 애민사상과 아버지를 그리는 애뜻한 효 정신은 기리고도 넘친다. 하지만, 다음은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에 대한 답을 달고 실천중이다. 보는 것을 넘어 즐기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간 많은 문화유산이 조상의 빛나는 얼을 기리고, 자긍심을 충족하는 소중한 자산으로 마음을 채웠다. 하지만, 10년, 20년, 한세대를 지나면서 문화유산이 우리 자신으로 우리의 삶으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수원화성은 박제된 성이 아니라, 그 안에 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물론 근대도시로 성장하면서 몇 차례의 도시확장과 개발이 있었지만, 여전히 화성을 하나의 경계로 인식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간다. 화성에 사는 사람들은 화성의 역사를 체득하면서 만들어가는 사라들이다.

이번에 수원시에서는 '생태도시' 차없는 도시를 만들면서 화성행궁 주변의 신풍동, 장안동 일대에 변화를 꿈꿨다. '차없는 거리'라는 아주 단순한 프래카드 안에는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차없이 걸어가면 사람들이 화성을 보겠지하는 단순한 생각을 기반으로 해서, 문화유산과 그곳에 축적된 사람들의 궤적을 직접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화성은 보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 되었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화성이 만들어 놓은 수원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방화수류정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박제된 역사에서 벗어나, 화성을 묵묵히 지켜온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이 일궈온 역사를 자부심으로 되돌려주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곳 일대는 수원의 역사를 품고 있다. 경부선이 개통된 1905년부터 학생들이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왔다.

기차라는 신문화가 실어온 새로운 풍속이다. 그리고 1930~40년대는 화홍문 밖으로 수원의 근대 체육시설인 시민공설운동장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한국전쟁 때는 넓은 공터에 피난민들이 들어와 삶을 이어가기도 한 곳이다. 이후 화성복원과정에서 아름다운 명소로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으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수원 화성에 사람들이 걷기 시작하고, 천변에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도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이 더 빛나고 눈에 띄이겠지만, 이것을 만들어 가고 지켜가는 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곧 오리라 믿는다.

하늘이 높고 푸르른 이 때에, 수원화성에 들러 가을을 만끽하고 수원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한번 취해 보면 좋겠다.

# 태고정

태고정

태고정은 당초 용담면 소재지 서북쪽, 주천가는 도로의 남쪽 언덕, 주자천변의 절벽위에 위치했으나 용담댐 수몰로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 25, 1530)에 의하면 당초태고정이 있은 자리엔 이미 15세기말경에 현령 조정(趙鼎)이 지은 이락정(二樂亭)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현종7년(1666)에 당시의 현령 홍석(洪錫)이 크게 고쳐 짓고 이름도 태고정으로 바꾼 것으로

꾸었던 것을 보인다. 홍석은 현종 5년에 용담 향교를 개축하고 동 8년 삼천서원을 창건했다.

1911년 태고정은 침략자 일본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국가재산으로 강제 몰수 공매 처분 되었으나 당시 송림리의 임소환(林昭煥)이 250원에 사서 용담군의 공유물로 정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태고정은 도리 기둥에 난간을 갖춘 전면 3칸, 측면 2칸, 팔작기와지붕의 누각으로 송준길(1606~1672)이 쓴 '太古亭'의 현판과 송시열(1607~1689)이 쓴 '龍潭縣太古亭記'의 현판이 있고, '太古亭重修贊助人芳名記' '龍潭八景' 등의 현판이 걸려있다.

(전북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 13-14)

# 공산성 공북루

공주 공북루

공북루는 공주 공산성의 북문으로 선존 36년(1603)에 망북루터에 지은 것으로 높은 기둥을 세워 위에는 누마루를 깔고 아래는 통로로 사용하는 2층 다락집 형태로 고창의 공북루와 비슷한 형태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각 칸의 간격은 일정하며 중앙 어칸에는 출입을 위한 문이 달려있던 흔적이 있다.

공북루는 최근 배불림 현상 등이 발생해 공북루를 비롯해 금강방향 금서루 누각부터 공산정, 만하루 구간의 복구공사를 진행중에 있다.

공주시는 공산성 금서루 주변 성벽에 낙석방지책을 설치하고 출입 통로에 강구조물 설치, 성상로 우수 유입 방지를 위한 강화 다짐 실시 등 안전시설을 설치했다.

# 수원성 방화수류정

수원 방화수류정

성에는 문루말고 다른 누각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원성이다.

각루는 주위의 경관을 즐기며 휴식할 수 있도록 성안의 높고 경치좋은 곳에 세우기도 한다. 수원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특이한 건축형태와 함께 주변의 경관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석축과 전돌로 쌓은 아래 성벽에 총구를 뚫은 성곽의 망루이지만 아래의 용연과 더불어 주변환경을 즐기려는 의도에서 선조의 여유있는 삶을 느낄 수 있다.

조선 정조 18년(1794)에 세운 것으로 건물이 아름답고 조각이 섬세하여 근세 한국 건축 예술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김병학기자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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