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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9.15 19:13:31
  • 최종수정2013.09.26 08:45:53

탄금호 전경과 충주

조선시대 광혜군때 낙향해 은거한 유근과 임진왜란때 수많은 군사가 숨겨진 탄금정의 애환은 우리 역사를 다시한번 되 짚어 본다.

제월대에 위치한 고산정은 절벽위에 위치한 정자로 한때 만송정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제월대를 찾는 이는 많으나 고산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 정도다.

탄금대의 역사를 전찬덕 충주문화원장으로부터 들어본다.

전찬덕 충주문화원장이 해설하는 탄금대

"탄금대(彈琴臺)는 조상의 얼이 깃든 곳으로 찾을 만한 곳이고 가꾸어야 할 사적지로 구석구석에 담긴 사록과 가치성을 그대로 묵과 할 수 없는 곳이다."

전찬덕 충주문화원장은 탄금대에 대해 "탄금대는 본래 대문산 또는 견문산이라고 불리워오던 작은 산으로 그 밑에는 남한강과 달천강이 합류해 산세가 평탄하면서도 암석이 중첩하고 기암절벽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경치도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라 진흥왕 때인 6세기 중엽 가야왕실의 악사 우륵이 가야의 멸망을 예감하고 신라로 투항하자 신라 진흥왕이 그를 받아들이고 왕이 몸소 국원(오늘의 충주)에 행차하여 하림궁에서 우륵을 불러 가야금을 연주하게 하였던 데서 탄금대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고 설명했다.

또 "임진왜란 때는 신립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격전하다가 패전하자 신립장군이 투신자결을 한 전적지로서도 유명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야금에 대해서 그는 "가야국 가실왕이 중국의 악기를 보고 창제한 것인데 이 가야의 악기가 신라로 전해지고 그 악기에 맞는 악곡이 우륵에 의하여 작곡되고 총체적인 음악의 온전한 형식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 신라로 이어지게 돼 가야문화가 신라로 온전하게 계승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탄금대가 우리 고유문화의 전수와 관련되는 유명한 경승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으면서 다시 탄금대로서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592년 4월 28일 임진왜란 초기 침략왜군을 저지하려던 신립과 김여물을 비롯한 수뇌부와 8천여명에 달하는 군사가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워 장렬한 최후를 맏이한 곳이 아주 가까운 지역이었기에 우륵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신립과 관련된 비장한 죽음의 현장에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전 원장은 탄금대에 대해 "오대산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탄금대 북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강이 한강과 합수되는 지점에 자리한 국가지정 명승 제42호로 충주시내에서는 서북쪽으로 3km 지점에 위치할 정도로 가까워 시민들은 산책코스로 많이 이용하고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소풍과 피로연 등 옛 추억을 심어주고 있고 외지 관광객들에게는 충주를 찾는 첫 번째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탄금대에는 "충혼탑을 비롯한 팔천고혼위령탑, 충장공신립장군순절비, 우륵선생탄금대비, 감자꽃노래비, 탄금대사연노래비 등이 산재해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접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향후 보존에 더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 탄금정

탄금대(탄금정)

악성 우륵과 관련이 있는 탄금정은 충주의 명물로 인정받고 있다.

2층 누각형태로 이곳에 올라서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당초에는 충주관아 내 연못에 천운정이란 정자가 있던 것을 사직산에 재건했다가 1955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당시에는 목조로 된 정자가 낡고 헐어 현재의 이 정자로 대체했다고 전한다.

탄금정에서 강쪽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탄금대에서도 가장 절경인 열두대가 있다.

그곳에는 서번 박재륜 선생의 글에 죽사 박충식 선생의 글씨로 세운 '신립장군 순국지기'비가 서 있다.

탄금정이 서 있는 탄금대는 충주에서 서북쪽으로 3km 지점의 반기문공원과 맞닿아 있다.

탄금대는 오대산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탄금대 북쪽으로 흐르고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강이 한강과 합수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어 대문산 또는 견문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악성 우륵이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가야금을 타면서 제자들에게 노래와 가야금, 춤을 가르친 곳으로 전해지는 이곳은 임진왜란 때 팔도 순변사 신립장군이 순절한 곳이기도 하며, 야외음악당과 궁도장이 있다.

신립장군의 역사는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조총으로 무장된 십수만의 왜적을 창과 활로 무장한 훈련되지 않은 팔천 군사와 함께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려면 배수진 전법이 아니면 불가하다는 전략을 세우고, 이곳 열두 대에서 병사들과 함께 싸우다 47세를 일기로 순절한 곳이다.

탄금대 열두대는 가야금이 12현 열두줄로 '열두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또는 신립장군이 왜병과의 전투에서 군사들을 독전하면서 열기에 달아오른 활시위를 강물에 식히려고 이 대(절벽)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는 전설이 숨어 있기도 하다.

열두대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12단으로 만든 것도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노광호 충주문화원 사무국장은 "탄금대는 수많은 애절한 사연을 품고 있는 곳이다"며 "충주시민들이 이곳에서 쉬기도 하고 민족을 얼을 되새기는 장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 고산정 및 제월대

괴산 제월대

괴산에서 충주방향으로 가다보면 제월대라는 절경이 나온다.

이 제월대 옆에 있는 고산정은 조선 선조때의 서경 유근이 충청도관찰사로 있을 때 이 곳의 풍광을 사랑해 선조 29년(1596) 만송정(萬松亭)과 고산정사(孤山精舍)를 짓고 광해군때 낙향하여 이 곳에 은거하였다고 전한다.

숙종조에 편찬된 괴산군읍지에는 고산정사가 숙종 21년(1695)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고산정사가 전소된 후 재건과 관련된 기록이 없어 현재 '고산정'이라 부르는 정자는 만송정을 개칭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단층 목조기와집으로 사면 모두를 개방하고 평난간을 둘렀다. 정자에는 이원(李元)이 쓴 '孤山亭'이란 현판과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선조 39년(1606)에 쓴 '호산승집(湖山勝集)'이라는 편액과 명나라 사신 웅화(熊化)가 광해군 1년(1609)에 쓴 '고산정사기(孤山精舍記)'가 있다.

이곳을 다니러온 이정국(30)씨는 "정비는 잘돼 있으나 오르는 길에 잡초가 무성해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며 "제월대에 올라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 경호루

경호루

제천 의림지 내에 있는 경호루는 1948년 제천군수 김득련과 서장 김경술의 발기로 서울의 혼순간 오세지의 특지로 지어진 것으로 기둥상부에 공포를 배치한 주심포식이 단순화 된 양식인 이익공 팔작집으로 단청이 돼 있다.

팔작집은 지붕 양측면에 합각을 지닌 사면경사지붕으로 조선시대 상류층 주택의 일반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숙(여.45)씨는 "의림지에 도착해 가장 먼저 이곳에 올라보면 가슴이 시원해 진다"며 "삼한시대때 축조된 의림지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정자다"고 말했다.

# 지선정

지선정

지선정(止善亭)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2년(1610)에 지선(止善) 오명립(吳名立)이 세운 정자로서 오명립의 호를 따서 지선정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현재의 정자는 고종 16년(1879)에 중건하고 1932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기와집으로 내부는 통칸에 2단으로 마루를 깔았다.

내부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충효일생 와차강분'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외부에는 수암 권상하가 쓴 '지선정(止善亭)'이라는 편액을 달아놓았다.

지선정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주변의 벌판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세워져 경관이 수려하며,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서당의 기능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한겨울에는 정자에 온돌을 놓아 추위에 대비했고 여름철에는 창살로 된 문을 열면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지선정은 현재 앞 마당을 정비했으나 표지판의 글씨는 모두 지워져 단 한자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향후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청원군 현도면 중척리 248)

/김병학기자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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