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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학자 송부일의 사찰을 찾아서 - 신륵사(下)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 웹출고시간2011.10.10 20:23:5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신륵사 강월헌

◇명부전의 목각상

석종 부도에서 서쪽 끝에 자리한 명부전 목각상이 아름답다고 하여 이를 알현하기 위해 명부전으로 갔다.

명부전을 드니 새로 채색한 목각상이 있고 십여 년 전에 있었다는 시왕전에 열립하여 있었다는 작은 동자상은 보이지 않는다. 작은 동자들이 붓도 들고, 합장하며 서있던 작고 예뻤던 동자들, 댕기를 땋아 뒤로 늘이기도 하고, 쌍상투를 틀기도 하였다는 말을 듣고 찾아 갔으나 다른 곳에 보관 했는지 동자상이 보이지 않아 서운한 기분이 든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봉안한 경우는 지장전이라고 부르고, 시왕을 모신 경우는 시왕전이라 부른다. 시왕은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정하는 염라대왕을 비롯한 열 명의 왕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공간인 명부세계의 주존이므로 지장전을 명부전이라고 한다.

◇시인 묵객의 대장각비

서쪽 명부전에서 다시 석종부도 위 숲길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가면 대장각기비가 서있다. 신륵사의 뛰어난 풍광 때문인지 문장가나 시인 묵객들이 드나들었다. 그 중 대장각 짓기를 발언한 이곡이 있었고 그 발언을 성취한 이곡의 아들 목은 이색이 있었다.

나웅대사 석종비 보다 4년 늦은 1387년 대장각기 비문을 이숭인이 짓고 권주가 해서로 비문을 썼다. 원래 이 비는 이색과 나웅 문하생들이 경률론을 보관하기 위하여 대장각을 세운 기록비이다.

장방형 지대석 위에 대석을 놓고 비좌를 마련하였다. 대석을 돌에 장방형의 홈을 파서 비신을 앉히고 그 위에 지붕돌을 얹었다. 귀부와 이수를 생략한 채 복련 대석으로 귀부를 지붕돌로, 이수를 대신 하였다.

고려 이전 화려한 비와 달리 투박하게 만든 보물 제230호로 지정된 대장각기비를 고려 우왕 9년에 세웠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비 뒷면에는 시주한 사부대중 이름이 음각되어 있다. 비의 높이는 133cm 너비 88cm로 대리석 비신을 화강암 양쪽으로 세워 보호하고 있으나 석질이 훼손되어 비를 세운 연대까지 손상되어 있다.

◇다층전답

대장각비에서 조금 떨어진 동남쪽에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수리비에 의하면 조선 영조 2년에 세워졌다고 음각되어 있다. 그러나 기법이나 시대상을 보아 고려 때 것으로 추측 된다. 이 전탑 때문인지 고려 때부터 신륵사를 벽절이라 불러 왔다. 탑 전체를 벽돌로 쌓아 올려 유래된 것 같다. 국내 유일의 완성된 형태로 남아 있는 전탑이다.

굽이쳐 흐르는 강가 언덕 바위 위에 세워져 넓은 들을 조망하고, 옛날 옛적 남한강을 배를 타고 오가던 사람들에게 무사히 오가기를 빌어주웠던 망탑이 아닌가도 생각이 된다.

이 전탑 기단 부는 화강암으로 사용 했고 탑신은 모두 벽돌로 쌓았다. 이 기단 위에 다시 3단의 식단을 얹고 그 위에 탑신을 7층 벽돌로 쌓았으며 총 높이는 9.4m이다. 전면 반원 안에 당초문을 조각한 보물 제226호이다.

◇강월헌(江月軒)과 3층 석탑

다층 전탑에서 바로 내려가면 나웅화상 다비식을 한 자리에 아담한 석탑을 세워 놓았다. 작고 아담한 탑으로 나웅대사를 다비 한 자리에 세웠는데 보제존자 부도탑이 있어 나웅대사의 극락왕생을 비는 발원문을 봉안 한 것으로 생각 되는 탑이다.

이 탑 바로 앞에 난간을 두른 육각형 강월헌 누각이 여강 가파른 언덕에 자리를 하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서 있다. 원래 강월헌이란 나웅화상의 당호로 그를 추모하여 이곳에 누각을 세워놓고 강월헌 당호를 달아 놓았다 한다. 본래 이 누각이 석탑과 거의 같이 붙어 있었으나 오래전 홍수로 떠내려가 다시 탑 보다 아래쪽에 철근 콘크리트로 지었다.

충주 월악산에서 시작하여 흐르는 물이 오대산의 물과 여강에 와서 합수하여 흐른다. 신륵사는 오래된 역사와 규모도 웅장하지만 풍경이 뛰어나게 아름다워 그 명성을 더해 준다. 여기에서 푸른 강, 멀리 펼쳐진 모래사장, 고색찬란한 경내의 건물과 같이 울창한 숲속 봉미산 전체가 신륵사 인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 이색도 강월헌 누각에서 노래했다.

'먼 산은 긴 강 밖이요 / 성긴 소나무 푸른 돌 곁으로 세 / 점은 복된 땅에 열렸고/ 보제는 진땅에 열렸네 / 현령은 허리에 홀을 꽂고 절하는데 / 산승은 홀로 벽을 향하였네 / 어쩌면 돌배를 찾아 / 맑은 휘파람 넓은 물에 띄울고.'

이 시를 읽고 강월헌 정자에 앉아 역사의 숨결을 음미 해보고 나오는데 바람이 불어온다.

언제나 쉽게 끝나는 가을의 산야, 모든 중생이 맺었던 소중한 인년의 열매들을 잊지 말라는 고승들의 법문소리가 강물 되어 범부의 가슴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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