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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학자 송부일의 사찰을 찾아서 - 용화사(下)

6·25전쟁-무심천 홍수겪은 고찰
위치 : 청주 흥덕구 사직1동

  • 웹출고시간2011.08.22 15:51:2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용화사의 기록들

*용화사 용화보전

용화사 사적에 의하면 용화사 미륵보전에 봉안된 원래 불상들은 개울가 절터에 방치되어 있었다. 1902년에 현재 용화사 자리에 봉안된 것을 1972년 법당에 안치하고 1990년대 현재의 미륵보전이 완공되면서 일곱 분의 부처님을 봉안하였다가 네 분을 극락전이 신축되면서 모셔오게 되었다. 창건 당시 미륵전과 설교전은 각각 15평이었고 산신각, 칠성각, 행곽, 요사채 등을 갖춘 큰 절이었는데 6·25전쟁으로 법당이 전소되었다.

이로 인해 미륵불 군상이 노천에 방치되어 오다가 1972년 미륵보전을 완성, 보호하여 왔다.

그러나 시멘트 건물로 벽면과 천장이 부식되어 1991년 증축을 위해 미륵보전 중창불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992년 용화사 칠존미륵석불 보호를 위한 기초 공사와 목재공사가 시작됐다. 1996년 용화보전을 완성, 2008년 극락전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미륵부처님 두상 뒤 나한상과 고려시대의 용화사 전신 사뇌사

보물 제985호인 칠존미륵석불을 보니 그 중 한가운데 위치한 여래 입상이 높이가 3.2m로 당당한 체구와 삼도가 뚜렷한 만도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가사를 입고 불상 뒷면에 나한상을 조각한 이 석불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진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래입상 뒤의 나한상은 앞면 여래입상과 후두부가 맞물리면서 부조되어 있고, 상호는 풍만하고 머리는 삭발되었으며 이마의 엷은 주름과 인중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통견 법의는 옷 주름이 U자형으로 유려하게 밑으로 흐르고 있고, 손은 향로로 보이는 물체를 받들고 있다. 이 나한상은 고려 때 유행했던 것으로 신라 신앙을 그대로 입증하듯이 전해지고 있다.

칠존미륵석불은 고려 때 불상으로 추정되며 경내 석탑의 부재, 석등간석, 와편 등이 산재되어 고려시대 폐사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993년 10월, 용화사 동남쪽 100m 떨어진 곳에서 무심천 제방을 확장하기 위하여 전봇대를 옮겨 설치하던 중 '사뇌사 (思惱寺)' 명 반자를 포함한 고려시대의 일괄한 금속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이 유물은 대형의 금동 광배 편을 위시하여 소동, 향로, 촛대, 숟가락, 금강령, 주자 등 사찰에서 사용한 유물로 보인다.

400여점이 발굴된 유물은 보존처리 과정을 거친 뒤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전시, 보관하고 있다.

국립박물관이 옛 절터인 용화사 부근에서 발굴한 청동 반자의 명문을 판독한 결과, 큰 사찰 '사뇌사'로 밝혀져 용화사가 역사적인 고찰임이 확인되었다. '사뇌사'는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창건된 대사찰로 알려졌는데, 일부 학자들은 유물들이 매몰된 때를 몽고의 4차 침입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일설에는 통일 의지가 한창이던 선덕여왕대에 미륵 7존불을 중심으로 70칸 규모의 사찰로 창건되었는데 화랑들의 심신단련과 군사들이 충성을 맹세하는 도량으로 활용되었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진각국사어록에 국사가 '사뇌사'에 하안거 했다는 내용이 있어 고려시대 사찰로 짐작되고 있다. 진각국사는 고려 후기 지눌에 이어 조계종의 두 번째 선종 사찰로 생각된다.

*새벽 범종이 청주에 울리면

그 후에 용화사가 여러 차례 병화를 입어 법당이 소실되고 미륵불도 무심천 대홍수 때 무심천에 묻혔다고 한다.

용화사의 역사를 생각하고 앞 언덕 둑에 오르니 아치형으로 지은 범종각에서 범종이 울린다. 하늘에는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별들이 초롱초롱하고 맑은 공기는 법당으로 향하는 모든 중생의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게 하는 소리이다.

범종은 28번을 타종한다. 욕계의 6천, 색계의 18천, 무색계 4천을 합쳐 28천 모든 나라 대중들에게 도량으로 모이라는 부처님의 소리다.

하루를 여는 법회, 맑은 물을 쪽박에 담아 지극한 마음을 올리는 영혼을 여는 범종의 소리다. 멀리멀리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지는 종소리, "원컨대 법계에 두루 퍼져 무쇠 둘레 어둠에서 나와 다 밝아지소서. 삼악도의 고통을 여의고 도산을 허물어 모든 중생이 정각을 이루게 하소서" 하는 범종 소리에 삼배하니 마음 가득 만파식적을 얻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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