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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8.22 18:10:0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연못에서 깨달은 불심 산자락 타고 올라

대패밥 물고 가는 까치 떼 따라가 지은 절

불심 앞에 무릎 꿇은 여름 가을이 저만치

대웅전 덤벙주초 자연따라 지은 절 집

서민적 비로자나불 최고의 걸작 꼽히고

통일대사 탑비 용트림에 승천할 듯

도굴꾼에 상처 입은 부도탑 복원


절 집의 여름은 언제 왔다 가는지 부처님도 잘 모른다. 깨달음에 정진하다보면 무더위를 느낄 새도 없다.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에 있는 각연사(覺淵寺)도 그런 곳이다. 속세에서는 한바탕 심술을 부리는 염제(炎帝)이지만 불심 앞에선 어쩔 수 없다는 듯 무릎을 꿇고 만다. 비로전 풍경(風磬)에 매달려 앙탈을 부리던 여름이 체념이라도 한 듯 사미승의 목탁구멍 속으로 꼬리를 감춘다.

깨달음을 얻는데 특별한 장소가 있을까마는 각연사는 연못에서 득도의 길을 찾는다는 아주 별난 이름을 가진 절 집이다. 나말여초(신라말 고려초)에 유일대사가 창건했다는 각연사는 그 깨달음의 미학에 대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유일스님이 절을 지으려 쌍곡에서 재목을 다듬는데 까치 떼가 날아와 대패 밥을 물고 어디론지 사라지더라는 것. 이를 기이하게 여긴 스님이 까치 떼를 따라가 보니 까치 떼가 물고 간 대패 밥을 어느 연못에다 떨어뜨리더라는 것이다. 스님이 연못을 들여다보니 돌부처가 금빛 광채를 발했다. 쌍곡에다 절을 지으려던 스님은 이를 취소하고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니 이 절이 바로 각연사이고 그때 연못에서 건저올린 돌부처가 비로전에 안치돼 있는 석조비로자나불(보물 제 433호)이란 얘기다.


각연사는 조계종 말사로 작은 절집이지만 불심이 넉넉하고 그 불심을 담은 문화재가 일대에 널려있어 불자나 탐방객의 발길이 1년 4계를 두고 끊어지지 않는다. 고려시대의 집채만 한 석축이라든지 마당 곳곳에 산재한 연꽃무늬 좌대 및 여러 부재는 옛 절의 고졸(古拙)한 맛을 더해준다. 게다가 보개산, 칠보산 등 절 집을 감싸고 있는 산에서는 한 여름에도 발이 시릴 정도의 벽계수가 흘러내려 절을 찾는 이의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절 집은 작아도 절 집 마당은 제법 크다. 그 마당은 대웅전, 비로전, 산신각 등을 연결해 주고, 탐방객의 마음을 이어주니 겉보기로 절의 사세(寺勢)를 판단할 것이 아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는 시공(時空)의 발자국이 수도 없이 찍혀 있다. 이 대웅전은 석가모니에 대한 불심이외에도 건축학적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소위 주춧돌과 기둥의 크기로 절집의 높낮이를 맞춘 '덤벙 주초' 양식이기 때문이다. 덤벙 주초란 다듬지 않은 자연 주초석을 덤벙 덤벙 놓았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사방 주초석의 높낮이가 다르고 기둥에 짜 맞추는 부분 또한 울퉁불퉁하나 여기에 기둥을 그냥 깎아 맞추는데 이를 '그렝이 질'이라 한다. 건축자재를 탓하지 않고 생긴 대로 이용하여 자연 친화적인 집을 짓는 선인의 혜안에 그저 탄복할 따름이다.

대웅전 동쪽으로 있는 비로전은 광명의 부처인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을 모시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불지(佛智)의 무변광대함과 광명을 의미하는 부처다. 그래서 비로자사불을 모신 법당을 비로전(毘盧殿) 또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 부른다. 모든 부처가 손바닥을 편 손 모양(手印)을 하고 있는데 오로지 비로자나불만은 주먹을 쥐고 있다. 오른 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싸고 있다. 주먹을 쥐고 무슨 격투기나 복싱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바세계의 백팔번뇌를 포용하자는 뜻이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각연사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우리나라의 비로자나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광배(光背:부처상의 뒤에 있는 망토 같은 장식물)의 화려함과 달리 비로자나불의 조성 수법은 상당히 서민적이다. 상호(相好:얼굴)에서는 위압적인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소탈한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염화삼소는 불타의 미소 그대로이다. 평퍼짐한 육계(상투)는 나발(머리털)과 거의 구별이 안 된다. 눈, 코, 입은 작은 편이나 귀는 이상할 정도로 크다. 가슴은 빈약하고 왼쪽 어깨에 법의를 걸쳤는데 의문(衣紋:옷주름)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석불 뒤로 장식된 주형광배(배 모양 광배)는 매우 화려하다. 여기에는 모두 9구의 화불(化佛)을 장식하였다. 불타 3형제인 듯 광배 상단부에 나란히 앉은 3구의 화불이 인상적이다. 광배에는 연꽃무늬, 불꽃무늬, 구름무늬가 가득하다. 전체적으로 각 부서 간 조화가 잘 맞지 않는 듯싶어도 한 발치 떨어져서 불상을 살피면 기막히게 어울림의 미학을 연출하고 있다. 화려하나 넘치지 않고 빈약하나 모자람이 없는 불상이다.

보개산, 칠보산 정수리에서 내려오는 맑은 바람과 벽계수는 여름이 머물만한 틈새도 주지 않는다. 거기에다 불심마저 가득하니 각연사 계곡은 속계(俗界)가 아닌 선계(仙界)인 듯싶다. 개울을 막 건너면 석종형(石鐘形) 부도가 몇 기 있는데 웬일인지 총탄 자국이 흉터로 남아 있다. 이 또한 6.25가 남긴 아픈 상처다. 어지럽게 날아든 총탄이 스님의 무덤인 부도를 알 턱이 없다.

통일대사 탑비

계곡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탑비(塔碑)를 만나게 된다. 바로 통일대사(通一大師) 탑비다. 기단에서 비 갓까지 합치면 높이가 4.7m에 이른다. 귀부(龜趺:거북좌대)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首:지붕 돌)를 얹었다. 거북좌대이나 귀두(龜頭:거북머리)부분은 용머리 모습이다. 보주(寶珠:구슬)를 물고 있는 용머리가 포효한다. 국운이 융성할 때 제작된 용머리는 대개 전면을 향해 머리를 꼿꼿이 치켜들고 조형수법이 역동적이다. 힘차게 포효하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비신을 짊어지고 날아오를 것 같다. 반대로 국운이 쇠잔할 때는 용머리가 옆으로 틀어져 있으며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있다.

비신 전면에는 비바람에 닳아 판독이 가능한 것은 2백여 자에 불과하나 뒷면에는 전체 판독이 가능하다. 이수에서도 용트림이 관찰되는데 조각수법이 힘차고 정교하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광종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면 국운이 한창 융성할 때니 돌 거북인들 가만히 있겠는가.

보개산 등성이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팔각원당형 부도 1기가 속세을 굽어본다. 부도는 종모양의 석종형 부도와 기단 및 상륜부를 팔각으로 처리하고 비신을 둥그렇게 조성한 팔각원당형 부도로 구별되는데 후자가 더 화려하고 웅장하다. 부도의 주인은 확실치 않으나 여러 정황으로 봐서 통일대사 부도로 추정된다. 계곡에 있는 탑비와 한 세트다. 이 부도 탑 역시 도굴꾼으로부터 수난을 겪었다. 도굴꾼들이 사리장치를 빼내고자 그 엄청난 부도를 넘어뜨렸고, 그것도 모자라 계곡으로 굴렸으니 그래서야 어디 차후에 극락의 문턱이라도 기웃거릴 수 있겠는가. 이 부도 탑에는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사리공이 없다. 다비식을 한 후 사리가 수습되지 않을 때는 통상 골호(骨壺)라고 하는 뼈 단지를 지대석 밑에 묻는다.

지난 1980년도 초반에 정영호 박사와 당시 충북도청에서 문화재 관리를 담당하던 장현석 씨(현 청주문화원장) 등이 사방에 흩어진 부도 석 부재를 한데 모아 원 위치에 복원하였다. 비록 도굴과정에서 훼손되어 귀꽃이 몇 개 떨어져 나가는 등 상처를 입었으나 조형수법으로 보아 걸작으로 꼽히는 부도다. 복원 당시에 지대석을 들어 뼈 단지를 확인하려다 이 또한 파괴가 아닌가 싶어 그대로 두었다. 동해의 문무대왕암 처럼 문화재 발굴은 더러 발굴을 유보하고 신비한 상태로 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각연사 범종소리를 타고 불심은 산맥을 넘는데 벌써 가을이 저만치 온다. 목탁소리와 범종소리에 맞춰 풀벌레가 합창을 한다.

/임병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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