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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의 새충청 문화기행 - 어사 박문수 묘소

천안 은석산에 울리는 충절의 메아리 '암행어사 출두야'

  • 웹출고시간2010.07.04 22:20:4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암행어사 박문수 묘소가 있는 천안 병천은 청주와 지리적으로나 체감적으로나 매우 가깝다. 미호 평야를 가로질러 야산 사이로 난 고개 서너 개만 넘으면 3.1운동당시 만세소리가 드높았던 아우내 장터가 나오고 해발 455m에 이르는 은석산을 오르면 조선시대, 암행어사로 이름을 떨친 박문수(朴文秀)의 묘소를 둘러볼 수 있다. 병천, 목천 일대는 조선시대에 청주목 관할이었다. 비록 오늘날 충남·북으로 행정구역을 달리하고 있으나 충절의 맥을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라든지, 중청도라는 동질감 등은 그냥 생활 속에 녹아있다.

은석사로 향하고 있는 답사반

모내기가 끝난 벌판엔 흙내를 맡은 어린 벼가 두세 뼘 가량 자라 올랐다. 숨 가쁘게 계절을 달려온 신록은 어느새 짙은 색으로 변하며 여름을 쏟아놓는다. 깊은 산의 여름은 늘 한 박자 더디게 오지만 계절의 변화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모습을 달리한다. 산 정수리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계곡으로 흐르는 벽계수는 봄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지우며 여름으로 행군을 재촉한다.

답사반이 은석사 기슭산에 있는 어사 박문수, 고령 박씨 종중의 재실을 둘러보고 있다.

은석산 기슭에는 어사 박문수의 집안인 고령 박씨 종중의 재실이 있다. 1932년 세운 'ㄱ'자 형태의 7간 안채와 '一 ' 형태의 5간 사랑채가 있는데 안채의 대청이 재실로 이용된다. 제법 큰 한옥으로 재실의 품격을 갖추었으나 인기척이 없다. 박문수를 제향하는 충헌사(忠憲祠)는 1990년에 건립되었고 박문수 유물관도 지어졌으나 유물관은 굳게 잠기어 전시품을 볼 수 없었다.

어사 박문수 묘소 앞의 무인석.

충헌사에는 보물 제 1189호로 지정된 박문수 어사 영정이 있고 유물전시관에는 고령 박씨 종가의 일괄 유물로 박문수의 교지(敎旨)를 비롯하여 수부정기(박문수의 손자 박영보가 쓴 것으로 할아버지가 부임 중 겪은 일을 모은 기록) 연보, 관복, 마패, 전적 류 등이 있으나 무시로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재실 돌담을 돌아 박문수의 묘소가 있는 은석산으로 향했다. 산기슭 연못에는 수련과 수선화가 한창 피어 두런두런 여름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 산을 보호합시다' '산악자전거를 타지 맙시다' 등 환경보호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데 '전원주택 분양'이라는 문구는 어쩐지 생뚱맞게 느껴진다.

민초들의 투박한 삶을 보듬고 탐관오리를 징치하여 산천초목마저 벌벌 떨게 했던 암행어사(暗行御史) 박문수. 임금의 비밀경찰 역할을 했던 암행어사는 조선 중종 때부터 시행된 것으로 관련학계는 보고 있다. 암행어사는 주로 당하관(堂下官·정삼품 이하)에서 임금이 임명했지만 더러는 당상관(堂上官·정삼품 이상)에서 임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암행어사에게는 마패(馬牌)와 유척(鍮尺)이 주어졌다. 마패는 암행어사의 신분증명서인 동시 역참(驛站)에서 말(馬)과 역졸을 징발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마패에 말이 1마리 새겨져 있으면 1필, 10마리 새겨져 있으면 10필의 말을 사용할 수 있었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尺)로 각종 도량형을 속이는지 감찰하였다.

어사에게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다. 수령의 유죄여부에 따라 봉고파직(封庫罷職)을 시킬 수 있었다. 봉고(封庫)는 창고는 봉인한다는 뜻이고 파직은 수령의 직책을 박탈한다는 뜻이다. 어사는 감찰의 내용을 임금에게 직접 올렸는데 이 보고서를 서계(書啓)라 했다. 별단(別單)이라고 하는 부속문서에는 보고 들은 내용을 적었는데 여기에는 열녀, 효자, 효부의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암행어사가 임명되어 현지에 도달하기까지 생존율은 30%정도로 매우 위험했다. 병약하여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수도 있고, 산적에게 잡히는 수도 있었으며 자객에게 암살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암행어사는 문무를 겸비해야 임금의 밀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조선조에는 홍무적, 이시발, 정약용, 이건창, 서경순, 조병노, 이면상 등의 암행어사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박문수가 가장 유명하다. 박문수(숙종17년1691~영조32년1756)의 본관은 고령이고 호는 기은(耆隱)이다. 경종3년(1723년) 증광문과에 급제, 어영대장, 우참찬, 병조판서 등을 지냈으나 암행어사로 활약한 일이 가장 유명하다. 충청, 영남 일대에서 주로 활동한 그는 수많은 이야기꺼리를 만들어내며 못된 수령들의 저승사자 역할을 했다.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그의 정의로운 행동과 무용담은 그야말로 통쾌한 감정의 탈출구였다.

그의 일대기는 소설로, 영화로, 만화로 만들어지며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1962년에는 이규웅 감독, 조미령, 김지미, 김진규 주연의 '암행어사 박문수'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의 '어사출두'대목은 소설과 판소리의 하이라이트이나 이는 픽션이고 박문수는 실존인물이다. 박문수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으나 이중 두 가지만 소개해 본다.

충청도 청풍에서 그는 왕비 감을 구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어느 양가를 찾았다. 저녁상을 내오는데 쌀 밥 위에 뉘 세 개가 얹어 있었다. 양가 규수가 밥을 지으며 '뉘시오·'하고 손님의 정체를 물은 것이다. 박문수는 아무 말도 않고 밥상위에 반찬으로 나온 생선을 네 토막 내어 그냥 내보냈다. 생선 네 토막은 어사(魚四), 즉 어사(御史)라는 뜻이다. 박문수는 이 규수의 지혜에 탄복하여 왕비 감으로 천거했다. 그가 현종 비 명성왕후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박문수가 활동하던 시기와는 시대가 맞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 청풍은 현종비 명성왕후와 정조비 효의왕후의 관향이다. 조정에서는 왕비의 관향이라 하여 이곳을 청풍도호부(淸風都護府)로 승격시켰다. 부(府)는 목(牧)보다도 한 단계 낮은 행정단위다. 청풍에 한벽루, 팔영루, 금남루 등 관아건물이 남아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번은 함경도에서 암행하는데 사기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늙은 처자가 돈을 사기 당했다. 길목에서 어떤 사람들이 도깨비 자루를 펼쳐놓고 "이 안에 열 냥을 넣으면 100냥이 나온다"고 했다. 물론 같은 편끼리 짜고 그 신기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에 혹한 한 여인이 열 냥을 자루에 넣었다. 사기꾼은 "돈을 자루에 넣고 눈을 뜨면 효험이 없다"며 눈을 감고 있으라고 여인에게 당부했다. 미련한 여인이 눈을 감은 사이 사기꾼은 열 냥이 든 돈 자루를 갖고 줄행랑을 쳤다. 박문수는 그 뒤를 쫓아 사기꾼을 잡고 여인에게 열 냥을 돌려주며 "헛 재물을 탐하지 말라"고 일렀다는 이야기다.

은석사의 돌확 샘물을 한 어린이가 마시고 있다.

박문수의 묘소는 산 중턱에 있는 은석사(銀石寺)를 지나 은석산 정수리 가까운 부분에 있다. 해발 455m의 은석산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데다 산그늘이 등산로에 드리워져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은석사 풍경소리에 여름이 익어 가고 돌확에서 흘러나오는 샘물 속으로 더위가 잦아든다. 그런데 이번 답사에서 좀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흰 개 한 마리가 답사반을 안내하고 있다.

흰 개 한 마리가 마을에서부터 답사 반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 흰둥이는 젖이 퉁퉁 불어있는 것으로 보아 새끼를 난 모양이다. 답사반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맨 앞에 서서 답사반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될 만한 일이다. 어느 집 개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흰둥이의 안내는 산행의 무료함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은석산 정상 가까이 있는 어사 박문수의 묘소 전경

절 집의 풍경소리를 뒤로하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100m쯤 오르면 은석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어사 박문수의 묘소가 잘 정비된 모습으로 길손의 참배를 맞는다. 조선행병조판서 영성군 증 영의정 충헌박공문수 묘(朝鮮行兵曹判書 靈城君 贈 領議政 忠憲朴公文秀墓)라는 묘비가 우뚝 서 있고 무인석 한 쌍과 망주석 한 쌍이 묘소를 지킨다. 이른바 장군대좌형(將軍對坐形)의 명당이다. 장군대좌형의 명당에는 남 주작 방향으로 병졸이 있어야 하는데 아우내 장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묘소 주변 숲 속에는 박문수의 충절과 그 호방한 기개가 살아 숨 쉰다. 소나무, 대나무가 가지를 부비며 무슨 말을 지껄이는 듯하다. "암행어사 출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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