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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무의 새충청 문화기행 - 도원리의 돌탑

돌탑이 사열하는 무릉도원 강가

  • 웹출고시간2010.07.19 00:05:4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여름의 한 복판으로 치달으며 찜통더위가 어김없이 기승을 부린다. 겨울 추위를 동장군(冬將軍)이라고 부르는데 비해 삼복더위를 염제(炎帝)라 부르고 있으니 아무래도 겨울나기보다 여름나기가 더 어려운 모양이다. 화양동은 청주인근에서 가장 이름난 피서지로 한 여름이 되면 거대한 목욕탕을 연상케 한다. 기암괴석과 너럭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며 더위를 쫒아준다.

피서객들이 한 곳으로 몰리는 번잡함을 피하려면 청천면 도원리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은 여름나기다. 화양동 입구 다리에서 왼쪽으로 꺾어들면 화양동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도원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경관은 화양동만 못해도 속리산 문장애에서부터 피톤치드와 산소를 쟁여 싣고 달래강(達川)으로 달리는 청천강의 모습을 보면 어느새 더위가 저만치 달아난다.

그 계곡에도 바캉스 시즌이 열리면 텐트가 빼곡이 들어차지만 그래도 화양동보다는 한결 널널하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자연 그대로를 이용한 '도원성 미술관'을 감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피서도 하고 예술에 대한 안목도 틔울 수 있는 명소다.

피거산(避居山) 자락에 판암 계통의 돌로 쌓은 300여개의 돌탑은 이곳을 찾는 탐방객이나 피서객들에게 큰 볼거리를 제공한다.

도원성 성주로 불리는 고승관 교수

돌탑을 쌓은 주인공은 고승관 전 홍익대 교수(70)다. 지금부터 26년 전인 지난 1984년, 야외조각공원을 물색하던 고 교수는 청천 피거산 자락에 이르러 '그가 찾던 명당'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이곳에 왔을 때 알 수 없는 전율이 느껴지데요. 산과 강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무엇보다도 피거산에서 어떤 기(氣)가 분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이곳에 정착하여 돌탑을 쌓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금속공예와 조각의 중진인 그가 모든 것을 다 청산하고 청천 도원리에서 둥지를 튼 것은 자연과 예술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피거산 자락의 임야 15만평을 매입했다. 당시, 동네사람들은 '부동산 투기꾼이 아니냐'며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사실 도시인이 농촌사회에 정착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농촌사회로 자신을 편입시키는 일이다. 주소를 옮겨놓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농촌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행정적 절차보다 훨씬 어려운 것은 심정적으로 농촌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일이다. 정착 후 3년 동안은 아무 작업도 안 하고 농부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친분을 다졌다.

이질감을 해소하면서 고 교수는 농촌 사람들과 함께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왜 돌탑을 쌓느냐고 물으면 '그냥 좋아서 쌓는다'는 대답이다. 돌탑의 유래는 무려 3천년을 오르내린다. 청동기 시대 선돌이 아마도 우리나라 돌탑의 원조가 될 것이다. 선돌은 믿음과 경계선을 뜻한다. 현재 남아 있는 선돌도 꽤 많은데 거의가 마을의 수호 임무를 띠거나 아이 낳기를 원하는 기자석(祈子石) 역할을 한다. 역사의 강을 타고 내려오면서 삼한 시대에는 돌탑과 솟대 문화로 바뀌게 되고 그 후에는 서낭당, 돌미륵, 돌장승, 하루방 등으로 변모해 나간다. 외적인 모습은 달리해도 하늘을 향해 비는 인간의 행위와 정성은 매한가지다. 돌탑과 솟대는 하늘의 향한 인간의 의지이자 인간과 하늘이 이어지는 소통의 통로다.

고승관 교수가 20여년간 쌓은 돌탑.

고 교수는 20여 년 동안 302개의 돌탑을 쌓았다. 피거산 산자락에서 돌탑은 강을 향해 사열한다. 지난 1993년에는 이원종 서울시장, 김재관 충북예총회장, 김덕영 충북지사가 이곳을 방문하여 타임캡슐을 묻고 갔다. 그 안에는 서울시 행정에 관한 자료, 88서울올림픽에 관한 자료가 들어있다. 지금까지 모두 13개의 타임캡슐을 조성했다. 앞으로 충북, 청주의 행정자료나 문인들의 작품도 본인들이 원하면 타임캠슐 안에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아주 특별한 돌탑이 있다. '영수탑'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그 탑에는 장가 못간 노총각의 절절한 사연이 담겨있다. 이 마을에 영수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어떤 장애를 갖고 있었다. 장애인 시어머니를 모실만한 규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낙담한 영수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고 교수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그를 추모하며 '영수탑'을 쌓았다. 장가못간 설움을 위로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불끈 솟구친 영수의 남근을 형상화 했다. 이 돌탑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에게 아름아름 소문이 나면서 이 탑을 끌어 앉거나 배경으로 하여 사진을 찍는 여인들이 부쩍 늘어났다. 영수의 한이 서린 돌탑이 어느새 기자석(祈子石)으로 변한 것이다.

고 교수는 돌탑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돌탑 공원을 설명하며 가끔 퀴즈를 낸다. 이 돌탑의 개수를 알아 맞춰보라는 퀴즈다. 맞추는 사람에게는 십만 원을 주겠다고 경품까지 내걸었다. 박영수 전 청주문화원장, 임승빈 청주대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문예지 '딩아돌하'회원들이 마침 이곳을 찾았는데 회원들은 밑져봤자 본전이니 저마다 대답을 했다. 100개, 150개, 300개, 500개 등의 대답이 여기저기서 나왔는데 302개에 근접한 300개가 당첨되었다. 고 교수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10원짜리 동전 하나와 1만 원 권 지폐 한 장을 내놓으며 "여기에서는 이 둘을 합쳐 '십만 원'이라고 부른다고 하여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고 교수는 앞으로 500개의 돌탑을 쌓겠다고 말한다.

담쟁이 덩굴로 덮힌 고승관교수의 집

"올해가 고희이니 죽을 때까지 그 목표치를 채울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그와 악수를 해본 사람이라면 돌탑 쌓기로 거칠어진 손의 까끌까글한 감촉과 상당한 팔 힘을 느끼게 된다. 무슨 보약을 먹어서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밥을 하루 한 끼만 먹고 나머지는 맥주로 대신한다. 게다가 줄담배를 피운다. 그럼에도 건강상 별 문제가 없다. 벌써 수십 년 째 계속하는 그만의 식 습관이다. 그래서 그를 찾으려면 다른 선물 필요 없이 맥주 몇 병이면 OK다. 그의 기이한 식 습관을 범인이 따라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 이유인지 그에게는 여러 별명이 붙어 다닌다. '도원성주' '산 신령' '괴짜' 등이 그에 관한 별칭이다. 왜 밥을 안 먹느냐고 물으면 '속이 거북하여 작업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흰머리, 턱수염이 강바람에 휘날려도 그의 창작열은 좀체로 식지 않는다. 젊은 날에 촉망받던 금속공예가가 화양동 초입에 들어와 사는 이유를 아는 것은 아마 산새나 들짐승 만일 것이다. 88서울올림픽 당시 MVP였던 독일의 수영선수 6관왕, 크리스틴 오토에게 왕관을 제작해 준 것도 그였다. 또한 그는 청주예술의 전당 옆 문자의 거리에 메인조형물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산파역으로 초대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도원성 미술관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쥐불놀이를 하는데 지난해에는 돌탑사이로 4천 개의 촛불을 켜놓는 별난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도원성 미술관은 60평 규모로 지어져 '애스펙트 전' 등을 열고 있지만 고 교수의 작품무대는 실내가 아니라 자연이라는 무한대의 열린 캔버스에 있다. 돌탑을 쌓으며 자연과 호흡하고 자연에 동화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아마도 영원한 자유인을 추구하는 것 같다. 돌탑이 예술의 푯대가 되어 청천강에 흐른다. 돌탑이 사열하는 무릉도원 강가. 여름천렵에 나선 피서객들이 예술의 강물에 발을 적시며 물속으로 반사된 돌탑의 그림자를 낚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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