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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고교시절, 아랫방에 중년 부부가 세 들어 왔다. 그런데 장지문을 사이에 둔 그들과의 동거가 사실 편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사생활이 나를 향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레나룻이 멋진, 까무잡잡한 얼굴의 병연이 아버지는 밤이면 가끔 듣지 않아도 좋을 소리까지 윗방으로 올려 보내곤 했는데 별로 유쾌하게 들리진 않았다. 박수였던 그를 통해 무당이란 존재와 샤머니즘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을 갖게 해 준 것 또한 그 무렵의 일이었다.

해마다 음력설을 쇠고 나면 둘 또는 세 명씩 조를 짠 듯한 여인들이 몰려오곤 했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운전기사 부인, 왜 앞집과 달리 우리 슈퍼는 개점 휴업상태로 쥐와 파리들의 놀이터가 됐는지 모르겠다며 분개하는 아낙네, 어째 그 인간은 서약서를 수십 번을 쓰고도 계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가 하며 울분에 찬 언성을 높이는 여인, 자식의 취직과 결혼 때문에 걱정이 태산인 아줌마, 새로 장만한 집은 살이 끼지나 않았는지…. 온갖 사연들이 장지문에 구상화를 그리며 날아들었다.

이때 병연이 아버지의 응수가 재미있었다. 무엇이든 몽땅 해결해 줄 테니 이실고지해 보라는 듯 가볍게 한 마디씩 끼워 넣으며 구색을 맞추던 그가,

"헌데… 최근 2, 3년 사이에 보살님 댁에 옷가지가 들어오거나 혹 집을 증·개축한 적은 없었수?"

하며 무슨 결정적인 단서라도 찾아내려는 듯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역마살이 낀 떠돌이거나, 4년 기한으로 우주 탐사를 떠난 우주인이 아니라면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왠들 없겠는가? 질문을 받은 고객은 그야말로 만화경 같은 2, 3년의 행적을 순식간에 뒤져낸 다음 한두 가지 정답을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병연 아버진 퀴즈 문제를 맞힌 어린이에게 '정답!' 하고 기 살려주듯 무릎 치는 소리에 이어, '바로 그것 때문에 마가 끼어 하는 일마다 안 풀리고 막혀 버린 것'이라며 결정구를 날린다. 고객은 도루를 시도하려다 견제구를 맞은 주자(走者)처럼 화들짝 놀라며, 단박에 수긍하는 목소리로 화답한다.

맞장구를 확인한 병연 아버지의 작업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먼저 부적을 하나 마련해서 베갯잇 속에 넣어두든가, 남편의 속옷 속에 꿰매주어라. 공연히 남편이 알면 성가신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 대개 남자들은 미신이니 뭐니 하며 돈지랄한다고 화를 내거나,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풀리면 날을 잡아 푸닥거리를 해 보자. 가격은 굳이 따지려 들지 마라. 효험이 있어야지 그깟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느냐?'

자칫 비장해 보이는 목소리로 비책(秘策)을 제시하면, 애간장이 타고 억장이 무너져 찾아온 고객들은 대부분 세상에 다시없는 처방으로 받아들인다.

대문까지 따라 나가 배웅을 하고 돌아오는 병연이 아버지의 슬리퍼를 끄는 소리는 자못 힘이 넘친다. 온 집안 종놈들이 한꺼번에 너른 마당 쓰는 소리와 다름없어 보였다.

대청마루로 올라서며 그는 별것도 아닌데 괜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듯 짐짓 한 마디 내쏟는다.

"어, 춥다! 젠장 담뱃갑 벌기 힘들어 못해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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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