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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그 옛날 중앙초등학교 주변이 복개되기 전 하천이 있었다. 어느 날, 종례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다 보니 먼저 하교하던 아이들이 뭔가를 향해 종주먹질을 해대며 아우성을 쳤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속에 웬 젊은 여자가 주저앉아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들이 그냥 지나칠 리 있겠는가· 요즘처럼 학원 갈 시간에 쫓기기를 하나, 컴퓨터가 있어 얼른 집으로 가서 게임을 즐길 것도 아니니 급할 게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어떤 녀석은 '미친 년!, 미친 년!' 하며 나이는 비록 어려도 정신은 말짱하다는 우월적 지위를 맘껏 누리며 아이들 앞에서 용기를 자랑했다. 또 어떤 녀석은 작은 돌멩이를 주워와 위협사격을 하며 잔인함을 뽐내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녀석은, 미친년은 빤스를 입지 않는다고, 확인시켜 주겠노라며 긴 장대를 들고 나타나 물속에서 부풀어 오른 치마를 걷어 올리느라 끙끙대기도 했다.

그러다 선생님이 달려오셔서 아이들의 귀가를 독촉했고, 물속의 불쌍한 인어공주가 도로 위로 나오자 아이들은 또 와와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당산 밑 길가에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 있었다. 몇 그루 나무가 그늘까지 만들어주어 마치 오아시스를 연상케 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물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다리를 쉬는 주막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언젠가부터 한 여인이 점령해버렸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의하면 어느 유명한 요정의 마담이었는데 정신이 돌아버렸다는 것이다.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각색된 이야기가 진실인 양 나돌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그저 조용히 그늘에 앉아 검고 큰 가방에서 꺼낸 자투리 천으로 자신의 치마에 자꾸 덧대어 기우고 또 기우고 할 뿐이었다. 미친 여자란 소문이 아니고, 그런 기이한 행동만 하지 않았다면 감히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카리스마 있는 얼굴이었다. 상당히 기품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무도회에 입고 갈 멋진 드레스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백마 탄 왕자나 황금 수레를 탄 임금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반짇고리에서 꺼낸 천 몇 조각을 엄마 몰래 가방에 넣어두었다. 하교 후 돌아오는 길에 조심조심 다가가 자투리를 그 검은 가방 옆에 슬쩍 떨어뜨렸다. 나를 바라보는 눈길에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녀는 따스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고, 입가엔 어렴풋한 미소마저 머금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착각했다. 이 아줌마는 미친 게 아니라고. 어쩌면 더럽고 탁한 세상이 싫어서 옛날의 선비들이 청맹과니로 살아가듯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온 여자일 거라고! 그도 아니면 세상 구경 온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다시 돌아갈 날을 위해 지금 수많은 깃털로 변할, 수없이 많은 천들을 달며 날개옷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거짓말처럼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나는 말했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그녀는 미친 여자가 아냐. 하늘나라에서 온 천사였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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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