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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아침 조회가 있는 날이면 으레 전교생이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였지만 오와 열을 맞추어 행진해야 했고, 그때마다 선생님들께서는 질서를 강조하며 여기저기서 고함을 질러대셨다.

그땐 왜 그렇게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길기만 했었는지…. 참을성 부족한 우리들은 너나없이 온몸 비틀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럭저럭 말씀이 하강 곡선을 그린다싶어, '그래 용케도 잘 참아주었다' 하고 스스로에게 박수라도 쳐줄라치면, '에헴, 끝으로!' 라며 다시 목청을 끌어올리시곤 했다. '사서삼경'으로 무장된 교장 선생님은 아침부터 진을 다 빼놓으셨다. 우린 우리대로 그 넓은 운동장에 인질처럼 잡혀 있다는 답답함이 싫어서 대개의 경우 얼른 행진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 날 나는 왠지 기분이 들떠 있었다. 정서가 좀 불안정했다고나 할까. 나는 행진을 하며 옆에 선 녀석에게 우스갯소리를 던지고, 다리를 걸었다. 녀석이 응수해 오자 금방 대오가 흐트러졌다. 교감선생님께서 굉음과 함께 마이크 볼륨을 올리며 비수를 날리셨다. 선생님 몇 분이 우르르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린 서로서로 주의를 환기시키며 그런 대로 다시 대열을 갖추었다. 더 이상의 성가신 일 없이 행진은 끝나고 모두들 교실로 들어갔다.

해방감에 젖은 반 아이들이 왁자지껄 자유를 구가하고 있을 무렵, 얼굴이 벌개진 담임께서 들어오시더니 타고난 음성이 높은음이라도 되는 듯 고함부터 질러대셨다.

"아까 행진하며 장난친 녀석들…, 다 알고 있으니 당장 나왓!"

행진 때 내 주변에 섰던 녀석들이 거 보란 듯 나와 또 다른 녀석에게 시선을 꽂았다. 꼼짝없이 둘은 담임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두려운 나머지 벌써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뭉그적대다가 결국 앞으로 나갔다.

"응, 너지? 또 네 녀석이지? 내 그럴 줄 알았어!"

분노로 떨리는 담임의 목소리가 나 아닌 다른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뺨을 올려붙이는 소리가, '대한민국 짜짜아짜짜!'로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녀석을 바라보았다. '아니, 잘못한 건 녀석이 아니고 나인데, 장난을 시작한 건 바로 나였는데…?' 녀석은 얼굴을 감싸 쥐고 말없이 얻어터지고만 있었다.

담임은 녀석이 워낙 공부하기 싫어하고, 툭하면 서울로 도망갔다 오기 일쑤인데다, 원체 싸움질 잘하는 악동인지라 으레 오늘의 사단도 그 녀석이 저질렀으려니 하고 단정했던 것이다. 녀석은 또 녀석대로 혼쭐나고 얻어터지는데 이골이 난지라 오늘 것도 자신의 잘못으로 지레 자인(自認)해 버린 것이다. 한 마디 변명도 없이 얻어터지고 있는 녀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위기를 벗어난 사실이 다행스럽기도 하여 나는 그저 비겁한(?) 눈물만 훔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 한 귀퉁이에서는 슬몃슬몃 웃음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나보다 재수 없는 놈이, 내 바로 곁에서, 내가 저지른 죗값을 터무니없이 치르고 있다는 통쾌함에 나는…, 나는 교실이 떠나가도록 웃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크악 핫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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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