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이 서방, 진급을 축하하네.

자네는 '진작 이런 소식을 전해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 송구하다'는 말을 했었지· 아닐세. 작년에 진급했더라도 물론 기뻤을 테지만, 금년에 이 소식을 들으니 훨씬 더 반갑게 들리는 걸 어쩌나.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했네. 언제나 함께 해야 든든한 법일세. 또 우보만리(牛步萬里)란 말도 있지 않은가. 소걸음이 아무리 느려도 만 리를 간다는 말일세. 가정이나 직장도 하나의 공동체이고 보면 독주(獨走)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게 나의 소견이네.

여보게, 자네가 처음 우리 앞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를 기억하네. 얼굴과 키가 길쭉한 자네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굳어 있었지. '도둑놈!' 내 딸의 마음을 훔쳐간 자네는 실업계 출신이랬지. 나는 갈등했고 고민했네. 평생 편견이나 편애를 지양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우리 사위'로는 용납하기 어렵더란 말일세. 국립대학을 졸업했다는 대목에서마저도 확신을 갖기가 결코 쉽지 않았네.

그 날, 딸아이가 인사를 시키겠다며 자네와 함께 나타났을 때 우린 이미 각오했었네. 무슨 말인고 하면 자네의 장인·장모가 될 우리 둘 다 독하지도 못하고, 맺고 끝냄이 분명해서 자식들의 혼사를 두고 해라, 마라 할 수 있는 성격이 못 되었다는 말일세. 반면 결혼은 결국 즈이들이 좋아서 하는 것이란 사실을 너무나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거기에다 자네가 언어 연수를 위해 거의 빈주먹으로 1년 간 호주에서 고군분투했다는 고행담은 카운터 펀치나 다름없었네. 소위 내 딸 밥 굶기지는 않겠다는 소시민적 계산이 나 자신을 굴복시켰던 거지. 나는 기꺼이 술잔을 내밀었네. "자, 내 술 한 잔 받게!"

여보게, 그간 자네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네. 참으로 고맙네. 우리의 선택이 옳았던 셈이지. 더구나 자네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장기(長技)도 있지 않은가 말일세. 휴일이면 집에서 여러 가지 요리로 딸아이를 행복하게 해 준다니 사랑받을 자격까지 충분하네그려. 형광등도 갈아 끼우지 못하고, 두꺼비집은 겁이 나서 더욱 열지 못하며, 환갑이 넘도록 세탁기 작동법조차 알지 못하는 이 가련한 인생에 비하면 자네는 소위 엄친아 수준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 번 진급을 축하하네. 생각하기에 따라 대리 진급에 무어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을 것이네. 그러나 진급이란 노력에 대한 정당한 인정이고 인센티브라 할 수 있을 걸세. 한편 한 계단 올라서면 그만큼의 포용력이나 통찰력도 갖추어야 하고 세상을 더 멀리, 더 넓게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노파심으로 이해해 주게. 또 이런 계기가 왔을 때 '어느 자리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정한 자기 성찰도 따라야 하리.

이 대리, 이렇게 부르고 나니 왠지 부드럽고 친근감이 느껴지네. 다소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하겠지만 유능하고 신뢰받는 일꾼으로서의 몫을 다해줄 자네를 기대하겠네. 늘 활기찬 삶 속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기를 바라며, 이참에 손주도 하나 안겨 주면 더욱 고맙겠네. 늘 건강에 유의하게나.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