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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7.03 20:13:51
  • 최종수정2014.11.04 11:00:09

'1778년 카를로스 3세의 명으로 지어진 문'이라는 뜻으로 마드리드 동쪽 경계를 표시한 알칼라문(Puerta de Alcala).

'티센 보르네미사(Thyssen-Bornemisza)'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이날 저녁에는 '플라멩코(flamenco)'를 보기로 예약을 해둔 상태였는데 공연 시간까지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어두워지는 거리에는 가로등과 간판 조명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마드리드의 저녁노을을 따라 조금씩 걸어보기로 한 나는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약 10여분 떨어진 곳에서 파리의 개선문과도 비슷한 문을 만나게 됐다.

이것이 바로 마드리드의 독립문인 '알칼라(Puerta de Alcala)'문이라는 것이다.

마드리드 지하철

알칼라문 정 중앙에 있는 'Rege Carolo III Anno MDCCLXXVIII'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예전 같으면 그냥 의미 없는 영어알파벳 나열로 보고 넘겼을 텐데, 문득 의미 없이 새겨둘 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라틴어를 검색하기 시작한 나는 특히 뒤에 새겨진 긴 알파벳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로마자임은 분명한데 검색해보니 'Rege(왕) Carolo III(카를로스 3세) Anno(년도) MDCCLXXVIII(1778년, M 1000, D 500, C 100, L 50, X 10, V 5, I 1)'이라는 의미였다. 지난 1778년 카를로스 3세의 명으로 이 문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자면 국가 동쪽 경계를 표시한 동대문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숙소 근처로 가 미처 보지 못한 광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몇 정거장 되지 않는 거리지만 지하철 요금이 우리나라 돈 2천300원에 달하는 1.5유로나 됐다.

푸에르타 솔 광장(Puerta del Sol)의 야경. 저녁이 되면 현지인들의 자유분방한 느낌이 묻어나는 곳이다.

술이 한 모금, 두 모금 들어가면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순식간에 쓰레기와 오물이 여기저기 쌓이기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풍경에 더 익숙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결코 싸지 않은 금액이다. 여럿이 함께 왔으면 택시를 타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린 나는 숙소 근처 솔 광장으로 향했다. 오늘 아침에 본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정답게 맥주를 나눠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마요르 광장의 야경. 이 광장은 낮의 활기참보다 밤의 차분한 느낌이 인상적인 곳이다.

조금 더 걸어 마요르 광장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거리 모습에 약간 실망스러웠다. 광장에 들어선 건물마다 화려한 조명으로 거리 전체를 환하게 밝히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낮에 봤던 어마어마한 인파들도 온데간데없고, 거리는 차분하다 못해 스산하기까지 했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 이동하는 거리에 불과한데 이 두 광장의 밤낮 분위기가 이처럼 확연한 차이를 보이다니.

드디어 플라멩코를 보러 갈 시간이다. 스페인 하면 '플라멩코'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춤을 보기 위해 나는 아침 일찍부터 공연 예약을 해두었다. 공연장을 향해 걷다보니 낮에 갔던 알무데나 대성당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낮에는 마드리드 왕궁의 화려함에 묻혀 존재감을 몰랐는데 밤이 돼서야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순간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가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말할 때 풍기는 도도함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장은 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된 간판을 달고 있는 타블라오(Tablao)다. 공연장 앞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긴 줄이 이어졌다. 이곳은 일찍 간다 해도 예약한 순서대로 좌석을 일일이 지정해주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다지 크지 않은 무대 아래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음료수와 음식을 시키기 시작했다. 타블라오(Tablao)란 스페인어로 '판자를 깐다'는 tablado에서 나온 말이다. 이곳은 바닥이 나무로 되어있는 극장식 레스토랑이다.

음식이나 음료를 먹으면서 1시간 반 정도의 공연을 보게 되는데 전통공연을 보고 지루하진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다.

Corral de la Morreria. 공연 전 사람들이 무대 앞에 앉아 음식과 음료수를 미리 주문해 기다린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기타 반주와 두 손으로 박자(팔마)를 맞추며 노래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용수들의 화려한 춤사위와 구두소리(사파테아도)가 어우러져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어떠한 감탄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흡입력을 느꼈을 것이다.

플라멩코는 바일레 플라멩코(춤), 칸테 플라멩코(노래), 토케 플라멩코(기타)의 삼위일체의 종합 예술이다.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무용수가 한 명씩 등장하고 느릿느릿한 리듬의 춤사위가 시작됐을 때 노래의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한을 품고 있는 목소리와 눈빛, 그리고 하늘을 향해 떨어내는 듯한 손놀림은 왠지 모를 허망함이 느껴졌다.

플라멩코 공연 모습인데 사진으로 당시 무용수들의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전체적인 리듬과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느껴진다

슬슬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춤사위와 노래는 마치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듯한 격정적인 분위기에 다다랐다.

노래하는 목소리와 손동작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가는데 마치 그 느낌은 너무나도 슬픈 한을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살풀이 같은 느낌에 빠른 박자를 입혀 가는 듯 했다. 그런데 마치 그 감정은 터질 듯 터질 듯 긴장되지만 터지지 않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그리고 한시도 눈을 뗄수 없게 만드는 놀라운 흡입력에 플라멩코는 정말 완벽한 종합예술이라는 생각을 했다.

공연이 피날레에 다다랐을 때 늘씬한 젊은 무용수와 풍만한 체구에서 연륜을 느낄 수 있는 무용수의 무대 위 모습은 그날 공연을 보러 간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과 여운을 줬다.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하루 일과를 플라멩코를 보며 마무리하게 됐다는 것에 너무나도 가슴이 북받쳐 오르는 감동과 여운을 느꼈다. 그리고 잊지 못할 환상의 무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간직하게 됐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관객들이 공연장을 빠져 나가는 내내 오랫동안 무대 주변을 서성거렸다. 아쉬움이 남아서다.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보고 나서 십대소녀들이 갖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어느덧 자정이 넘었다. 숙소에 돌아온 나는 공연 당시의 느낌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렇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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