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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충북 최초의 시위지역은 '충주'

본보, 국가기록원*신문자료 확인
충주高 학생, 자유당 특강청취 강요하자 거리로 진출
청주지역 학생들 연합 시위는 짧게는 이틀정도 늦어
상당공원 '충북 4.19기념탑'은 충주高 전혀 언급안해
당시 도내서도 희생자 3명발생… 기념탑엔 내용 전무

  • 웹출고시간2013.04.17 20:08:1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4.19 혁명과 관련된 충북 최초의 시위는 청주지역 학생들이 아닌, 충주고 학생들에 의해 충주지역에서 처음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따라 충주고 학생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은 청주 상당공원의 '충북 4.19혁명 기념탑'은 자칫 역사를 오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보는 제 53주년 4.19혁명 기념일을 앞두고 현존하는 한국기록원 자료와 당시 신문기사 등을 면밀히 살펴봤다.

그 결과, 4.19혁명과 관련된 충북에서의 최초 시위는 청주지역 학생들이 아닌, 충주고 학생들에 의해 1960년 3월 10일 처음으로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 1960년 3월 25일자 기사로, 충주에서는 3월 10일, 청주에서는 3월 12일 첫 시위가 있었다고 기사화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전국 시위현황을 기사화하면서 1960년 4월 25일자 2면 기사를 '3월 10일 忠州에서 충주고교생 3백명이…'라고 적었고, 4.19관련 다른 단체의 자료에서도 같은 내용이 발견됐다.(그림참조)

충주고 학생들의 4.19를 전후한 민주화 활동

충주고 학생들의 이같은 시위는 대구, 서울, 대전 등에 이은 전국 4번째로,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던 마산지역 시위(3월 15일)보다 닷새 정도 이른 것이다.(표참조)

'충고 60년사'와 '충주시지' 등은 3월 10일을 전후한 당시 충주고 학생들의 시위 촉발 원인과 시내진출 과정을 보다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표 참조)

이날 시위는 학교측이 학기말 고사를 중단하고 자유당 홍모 민의원의 정치특강 청취를 강요하면서 촉발됐다.

시내로 진출한 3백여명의 충주고 학생들은 "학생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2㎞ 가량 진출했으나 경찰 곤봉 세례를 받으며 대열이 붕괴됐다.

이후 충주시외버스터미널에 2차 집결해 다시 시가행진을 시작했으나 역시 경찰의 기습을 받고 20여명의 학생이 연행당하며 이날 시위가 종료됐다.

그러나 이날 이후에도 희생자의연금을 걷고, 또 노은 등 면지역을 시민들에게 질서를 호소하는 등 후속 활동을 계속했다.

동아일보 등을 바탕으로 작성한 4.19혁명 전후의 진행

이에 비해 청주지역 학생들의 연합시위에 대해 동아일보 기사는 '3월 12일', 상당공원 '충북 4.19혁명기념탑' 명문은 '4월 18일'이라고 기록했다. 당시 동아일보 전국적인 시위 내용을 보도하면서 '3월 12일 淸州에서 150명의 학생이…'(3월 25일자)라고 적었다.(그림 참조)

따라서 4.19혁명과 관련된 도내 최초의 시위는 충주지역이 짧게는 이틀, 길게는 한달여 앞서는 셈이 되고 있다.

청주 상당공원의 '충북 4.19 학생혁명 기념탑'은 충주고 학생들의 시위 내용을 전혀 기록하지 않아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념탑 건립추진위(위원장 김현수)가 지난 2010년 11월 3억5천만원의 예산으로 청주 상당공원에 세운 '충북 4.19혁명 기념탑'은 충주고 학생들의 시위 내용을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그림참조)

따라서 탑 명칭을 '충북 4.19혁명 기념탑'에서 '청주 4.19혁명 기념탑'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충주고 학생들의 시위 내용도 명문화하는 것이 기념탑 설립취지에 맞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4.19혁명 당시 충북에서도 3명(박스선)이 숭고한 목숨을 잃었으나 상당공원 기념탑은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 당시 전국적으로는 186명(원)이 희생됐다.

이와는 별개로 당시 4.19 시위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186명이 숭고한 목숨을 잃었고, 여기에는 '충북인' 3명도 포함돼 있으나 상당공원 기념탑에는 이같은 내용이 전혀 기록돼 있지 않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당시 충북인 희생자 3명은 모두 남성으로, 16~20세가 2명, 21~25세가 1명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림참조)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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