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통령이 참석했다는 소위 '청담동 술자리 첼리스트 의혹'은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강남일대 술집에 출연하며 손님들의 노래 반주를 해 온 여성 첼리스트가 일탈 된 행동을 감추기 위해 남자 친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그만 온통 나라를 뒤집어 놓은 사건으로 비화 된 것이었다. 처음 이 녹음을 들었을 때 야당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윤대통령, 한동훈 법무장관, 김앤장 변호사 30명이 참석, 첼로반주에 맞추 동백아가씨 등 유행가를 부르고 새벽 3시까지 광란의 파티....' 이들은 국정농단으로 치부하고 대대적인 윤대통령을 공격할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만약 사실이었다면 국민적 비난을 받기에 충분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첼리스트의 고백은 소설과 같은 거짓말이었다. 남이 연주한 곡을 자신이 연주한 양 자신의 SNS에 동영상을 공개한 것부터가 진실성에 문제가 있는 여성이었다. 그동안 경찰 소환에 불응 해온 그녀가 경찰서를 찾아 진실을 밝힌 것이다. 언론계에서도 야당 대변인의 처신에 부정적인 견해다. 기본적인 팩트만 체크했어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녹음 파일 인 것을 알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김 대변인은 국장감사장에서 서둘러 전 국민들에게 공개했다. 면책 특권을 믿고 나중에 허위라고 판명돼도 대통령과 한동훈법무에 치명타를 입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국회의원으로서 위상을 생각지 않은 처신이었다. 전, 현직 언론계 인사들의 얼굴에 먹칠한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해당 유트뷰와 국회에서 방영한 야당 대변인은 과오를 범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일이 있으면 또 피하지 않겠다'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박지현 민주당 전직 비상대책위원장이 대변인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 사람의 거짓말을 공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어떤 확인 절차도 없이 폭로하고 세상을 시끄럽게 한 잘못은 매우 무겁다'며 '일부 유튜버들이 돈벌이를 위해 펼치는 마구잡이식 폭로를 대변인이 가져오면서 야당의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지금 혼란에 빠져 있다.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비리에다 모두 7가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가장 신임하고 있다는 측근 두 명이 구속되었다. 신문 방송들이 앞을 다투어 비리의 중심에 있는 대장동 관련자들의 폭로를 보도하고 있다. 검찰은 이대표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대장동과 관련 측근들의 자금이 흘러갔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인 것 같다. 이 대표는 '유검무죄, 무검유죄다. 조작의 칼날을 아무리 휘둘러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음을 믿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형악재가 민주당을 뒤흔들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이르면 연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지만 사법리스크에 대한 당내 내홍도 깊어지고 있다. 경선에서 지고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총리의 귀국설도 나오고 있다. 이낙연계 의원들이 극구 부인하지만 당내에서는 이미 군불을 지피고 있다. 한국 현대정치사에 지금처럼 야당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처음이다. 2022년은 이제 12월에 접어든다.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총파업에 국민적 우려가 깊어가고 있다. 경제는 어려운데 국가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민주당은 당이 어려울수록 심기일전하여 국민들이 바라는 것에 주안을 두어야 한다.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것은 과감히 버릴 때 신뢰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말 나라가 걱정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국민이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여, 야 협치는 실종된 지 오래이며 경제는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두 개 진영으로 나뉜 광화문, 용산 집회현장에는 일촉즉발의 살벌함마저 느낄 수 있다. 주말이면 광화문 일대는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말이 지나면 양 진영은 서로 이겼다고 선전한다. 태극기를 든 보수들은 이재명민주당 대표 구속을, 야권진영은 대통령 퇴진 피켓을 들었다. 야권 진영 시위에는 중,고생들까지 나왔다고 한다. 지금 어린 학생들까지 피켓을 들어야 하는 절대 절명의 시국인가. 이 같은 시위 양상은 지난 문재인 정권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조국법무장관의 사퇴와 조국수호로 촉발 된 양 진영의 힘겨루기는 대선이 끝난 지 반년이 넘었어도 아직도 진행형이다. 시위에는 전국 규모로 버스를 대절하고 엄청난 양의 피켓이 등장한다. 이같은 시위를 벌이려면 많은 돈이 소요된다. 누가 뒤에서 이 돈을 대주고 있는 것인가. 요 며칠사이 북한은 여러 번 탄도미사일을 동해로 쐈다. 동해에 떨어진 낙탄을 주어보니 러시아제였다고 한다. 북한이 엄청난 돈을 들여 도입한 미사일로 당장 호구가 어려운 북한이 어디서 마련한 것인가. 국론은 둘로 쪼개지고 양당 대변인들은 연일 비난 일색의 성명전을 내 뱉고 있다. 야당 대변인은 한 유트뷰의 근거 부족한 루머 까지 국정감사장에 들고 나왔다. 나중에 어떤 결론이 나든 대통령과 여당에 상처를 주면 된다는 식이다. 나중에 가짜로 밝혀졌을 때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한 결속과 저항으로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십 수년간 이대표를 보좌했던 측근들이 지금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성남시 관계자로부터 이 대표가 대장동 사업 진행 과정에 대해 직접 대면 보고를 받았고 대장동 일당의 요구를 수용해 정책에 반영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동 개발 업무상 배임혐의와 10개가 넘는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이대표의 검찰소환도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또한 우리 헌정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 기관이다. 눈만 뜨면 상대당의 허물만을 찾고 진정으로 해야 할 민생은 생각지도 않는다. 보도를 보면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출범 후 6개월 동안 정부가 제출한 각종법안 77건 가운데 한 건도 처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 임기 초에 제출되는 법안은 국민들에게 약속한 국정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법안인 경우가 많다. 과거 야당은 임기를 시작한 새 정부가 낸 법안이 통과되도록 협조해 주는 것이 상례였다. 국민들의 선택에 대한 야당의 예우이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후 국회에서도 의식 있는 의원 사이에서 자성론이 일고 있다. 국민의 힘 조경태의원은 '입법부 일원으로서 안전 법령 등을 촘촘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죄송스럽고 안타깝다'며 '국회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한 책임이 있다. 그런 마음으로 사과문 발표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대표 방탄보다는 진정으로 국민과 나라부터 걱정해야 할 때가 아닌 가 싶다.
이태원 핼러윈 데이 참사로 인한 사망자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꿈 많은 소년 소녀들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연인과 손을 잡고 거리를 행진하다 죽음을 맞았다. 악령을 쫓기 위한 축제가 죽음을 불러 온 아이러니 행사가 되었다. 한류를 사랑하여 서울에 온 외국의 젊은 청년들도 화를 당했다. 사망자 154명 가운데 26명으로 국적은 이란, 우즈베키스탄, 중국, 노르웨이, 러시아, 미국, 일본, 프랑스, 호주, 스리랑카, 오스트리아, 카자흐스탄, 태국, 베트남이다. 모두 장래가 촉망되는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다. 미국인 스티브 블레시(62)씨는 아들을 졸지에 잃고 망연자실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내와 쇼핑을 하던 중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를 통해 비보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매체와 전화인터뷰에서 '마치 1억 번을 찔린 것 같은 아픔'이라고 심경을 전했다. 그는 '그냥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슬픈 사연이 어디 이뿐인가. 엄마에게 '그동안 키워줘서 고맙습니다. 이젠 잘 할게요'라고 문자를 한 20대 여성은 싸늘한 죽음으로 부모 품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았던 딸을 먼저 보낸 엄마의 오열은 차마 못 볼 장면이다. 베트남 국적 20대 여성은 2년 전에 한국에 유학을 와 대학교에 진학했으며 토요일 오후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가족들이 오지 못하자 재한 베트남인 동포들이 그녀의 빈소를 쓸쓸히 지켰다. 이처럼 엄청난 비극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태원 해밀턴 호텔을 중심으로 1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는데도 치안력은 속수무책이었다. 주말 심야까지 이어지는 각종 시위를 막느라 경찰력이 집중되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다. 지난 화요일 공개 된 한 경찰관의 처절한 절규가 귀에 쟁쟁하다. '제발 돌아가 주세요.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라는 호소는 현장에 있던 경찰관들이 온 힘을 다하여 인파를 저지 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러나 군중들의 떠드는 소리에 묻혀 성난 파도와 같은 인파를 저지하지 못했다. 사후 약방문격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에서 많이 열리고 있는 각종 가을 축제 현장도 안전대책을 짚어 봐야 한다. 언제 어디서 또 끔찍한 사고 재발할지 모른다. 이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스스로 경계하고 위험한 곳은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장례를 치르고 유가족들의 비통함을 다스리는 시간이다. 서울시장, 행안부 장관, 용산구청장 등이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다. 정부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책임소재를 가린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야당 일각에서는 이를 정략에 이용하려 정부를 무조건 비판하고 나섰다. 터무니없는 낭설을 확대 포장하여 언론에 띄우고 있다. 참사현장에서 대통령 탄핵 집회까지 연다고 한다. 지금은 국가 애도기간이다. 영혼이 미처 떠나지 못한 참사 현장에서 정치집회를 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가. 일부 언론도 이에 동조하고 있어 진영간의 갈등을 획책하고 있다. 꽃다운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정부는 유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최대한 노력해야 함을 상기시키고 싶다.
단양은 늦은 봄 철쭉이 제일 장관이다. 소백산 연화봉 부터 국망봉까지 4.5㎞ 구간 곳곳의 철쭉터널은 상춘객들을 사로잡는다. 철쭉은 과거 조선시대에도 장관을 이루었던 것인가. 조선 유학의 태두 퇴계 이황은 단양군수로 재직하면서 철쭉풍경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울긋불긋한 것이 꼭 비단 장막 속을 거니는 것 같아 / 호사스러운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이네' 단양기 두향과의 사랑을 마음속에만 두고 그녀가 선물한 매화분을 평생 옆에 두고 완상했다는 퇴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단양군수로 재직하다 안동 고향으로 돌아 온 퇴계는 매화시 100편을 남겼다. 백편의 시가 모두 두향을 그리워 한 것은 아닌지. 일설에는 운명하면서 두향이 선물한 매화분이 죽을 까 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이 차가운데 / 매화나무 가지 끝엔 둥근 달이 오르네 / 구태여 부 르지 않아도 산들바람도 이니 / 맑은 향기 저절로 뜨락에 가득 차네 (獨倚山窓夜色寒 梅梢月上正團團 不須更喚微風至 自有淸香滿院間) 매화나무 가지 끝에 걸린 등근 달을 혹 두향의 얼굴에 비유한 것은 아닐까. 맑은 향기는 바로 두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만 같다. 단양 곳곳에는 퇴계와 두향의 숨은 사랑이 깃든 유적이 여러 곳이다. 구 단양읍에 있는 이층 누각 이요루(二樂樓), 구담봉이 바라보이는 강선대(降仙臺)는 두 사람이 시를 화답한 곳으로 아름다우면서 애처로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요즈음 단양 곳곳의 단풍이 절경이라고 한다. 가곡면 보발리와 영춘면 백자리를 고갯길 보발재도 새로운 관광지가 되고 있다. 한 신문이 이곳을 소개한 글이 눈길을 끈다. '오색단풍 속에 숨어 뱀이 똬리를 튼 듯 보이며, 그 절경이 한 폭의 그림과 같아 탄식이 절로 난다' 탄식이 나올 정도라니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치솟는다. 지도로 보발리 가는 길은 살펴보니 바로 역사의 길이 아닌가. 단양읍에서 출발하면 도담리를 거쳐 가곡면을 질러간다. 도담(島潭)은 조선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의 설화가 있는 곳이다. 남한강변 덕천리는 고려 때 유명한 사찰 덕천사(德泉寺)가 있던 유적이다. 보발재는 향산리 삼거리에서 꺾어져 들어간다. 이곳에도 고려 때 세운 삼층석탑이 남아있다. 신라 석탑의 유형을 계승해 단아하고 아름답다. 이 탑으로 미루어 향산리에도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마을 주변을 돌면 공터에는 옛 와편이 뒹굴고 있다. 보발재는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가 있는 백좌리로 가는 길목 고개 정상에 있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군청에서 지난해 500여 주의 단풍나무를 추가 식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발재 단풍소식이 입소문을 타고부터 주말이면 전국에서 찾아 온 관광객들도 붐비고 있다는 것이다. 단양은 사계의 풍경이 모두 아름답지만 마을마다 역사의 향기가 숨 쉬고 있다. 보발재 단풍을 구경하면서 퇴계와 두향의 애처로운 사랑의 길도 답사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심각한 정치 갈등으로 혼돈 상태를 이루고 있다. 여야 대화는 실종됐으며, 비난과 저주만이 난무하고 있다. 대체 어쩌다 이런 나라가 되었나. 야당은 대통령의 미국발언만을 문제 삼아 연일 공격하고 있다. 대통령 흠집 내기에 사활을 건 듯 한 분위기다. 여야 대표는 비속어를 했느니 안했느니로 연일 녹음기판만을 틀며 삿대질로 응수한다. 여당도 밀리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하여 대선당시의 결속과 대응으로 전력을 가다듬고 있다. 민생은 실종되고 국회는 대선당시의 극한 정쟁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얼음과 숯은 함께 섞이지 못한다'는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이란 4자 성어가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이런 이유에서 인지 여, 야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가 30%가 넘는다는 여론 조사도 있다. 국민들 사이에 정치 혐오의식이 팽배하여 국회 해산론 까지 나오고 있다. 성군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 주말은 진영 간 대결의 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민노총과 야당은 대통령 탄핵 피켓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당시의 촛불행진으로 끌고 가고 있다. 이에 보수와 태극기 세력도 맞불작전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 정권의 조국법무장관 퇴진 당시의 대결 구도로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포용성은 세계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다. 한국행정연구원 사회조사센터가 올해 초 OECD 36개 회원국의 2000~2019년 정치적 포용지수를 비교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마이너스(-) 0.73으로 32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우리나라는 정치적 차이로 인한 자국 내 갈등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비율이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 포용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1.97)로 나타났으며, 스웨덴(1.56)과 핀란드(1.40)가 뒤를 이었다. 터키가 마이너스(-) 2.47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과제로 여야(與野) 간 대결정치의 극복 등을 꼽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세계 각 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싹튼 위기가 뒤엉켜 지뢰밭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공격적인 통화 긴축, 중국의 가파른 경기 둔화, 유럽 에너지 위기 등이 요인이다. 한국경제는 현재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복합 위기를 겪고 있다. 국민들의 체감 물가는 장난이 아니다. 주부들은 시장가기가 겁이 난다고 한다. 환율·주식·채권 등 금융시장 쪽은 물론 기업의 수출·생산·투자 및 민간 소비 등 실물경제까지 동반 경고음이 커지면서 향후 몇 개월이 가장 어려운 시절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기업들도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 악재에다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미래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정치는 위민(爲民)을 생명으로 해야 한다. 당리당략에 빠져 국민을 생각하지 않으면 민심이 떠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가수 중 한분이 소리꾼 장사익이다. 굵게 패인 얼굴의 주름과 고요하게 토해 내는 노래 가락은 한이 넘쳐 비감에 젖게 한다. 장사익이 부른 백설희 노래의 '봄날은 간다'는 명곡의 반열에 올라있다. '어머니 꽃 구경 가요'라는 노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늙은 어머니를 산 속에 버리려고 아들은 지게에 어머니를 태웠다. 그리고 산으로 올라간다. 산이 깊어지자 어머니는 '아이구머니나'하며 자신을 업고 꽃구경 가자는 아들의 뜻을 알아차린다. 그때 어머니는 길가에 솔잎을 따 뿌리기 시작한다. 아들이 '솔잎은 뿌려 뭣 한데유'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돌아갈 길 잃을까 걱정이구나' 자신을 산 속에 버리려는 아들의 야속함 보다 길 잃을까 걱정하는 어머니 마음이다. 장사익은 불혹을 넘어 데뷔한 늦깎이 가수다. 마흔다섯을 넘긴 후에야 그는 소리꾼으로 무대에 서게 됐다. 20여 년간 15군데나 직장을 옮겨 다닐 정도로 인생은 파란만장했다고 한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장사익은 이렇게 술회했다. "안 다녀본 회사가 없었습니다. 보험회사 무역회사 카센터까지. 직장생활이 안 맞는 사람인데 그걸 모르고 꾸역꾸역 다녔지요. 그땐 세월을 버린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다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무료함을 달래려 노래교실도 다니고 악기도 배웠습니다." 장사익은 태평소 연주자가 되겠다며 전국의 농악, 사물놀이를 돌며 공부했다. 국악을 좋아한 힘이 그를 출세의 길에 올려놓게 된다. 장사익의 뛰어난 실력을 알게 된 이는 천재 피아니스트 임동창 교수였다. 장사익은 술좌석에서 임교수의 피아노 반주에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날 이후 마음이 맞았던 두 사람은 신촌에 있는 소극장에서 이틀간 공연을 했다. 100석 규모인 작은 극장이었지만 관객이 구름같이 몰렸다. 장사익 소리꾼은 이렇게 가수로 데뷔했다. 장사익 노래는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미국 등 외국에서 교민들이 그를 초청하여 공연을 부탁했다. 한때는 2년간 공연 스케쥴이 꽉 차기도 했다. '찔레꽃' '봄날은 간다' 그리고 '꽃구경'은 타향에서 고국이 그리운 교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장사익은 정통 트롯가수는 아니다. 그렇다고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도 아니다. 장사익이 부르면 그 노래는 청중의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서 그를 '장사익 류'라고 분류한다. 1995년 1집 '하늘가는 길'을 발표한 후 그는 13번의 전국투어 공연과 9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한국대표가수로 애국가를 불렀다. 고난 속에서 역경을 이기고 한국의 탑 가수로 성공한 것이다. 장사익이 10월 초에 서울을 시작으로 가을 공연을 시작한다. 이번 소리판 주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라고 한다. 이는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 장사익은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싸움도 하고 사랑도 하고 미워하면서 인간의 역사가 된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만남 자체가 차단됐다. 부서지고 깨지고 화해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이제 만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인간은 누구나 사랑과 미움의 역사를 가지고 산다고 했다. 미움도 설움도 사랑에서 싹이 튼 감정이다. 화해하지 않는 미움은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끝내 좌절하지 않고 화해하며 꿋꿋하게 살아온 소리꾼 장사익. 그의 한(恨)을 사윈 소리와 성공 인생이 이 시대 빛나는 이유다.
우리 정치사에 오늘날처럼 희망이 없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이 같은 감정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여당은 권력 다툼으로 혼미에 빠져 있고 야당은 사법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재명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다. 짜여 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전체주의 실황을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하다. 여당은 젊은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폭로를 기회로 당원권 정지를 도출한 이후 비대위를 출범하면서 법적 재단을 받았다. 결과는 이 대표의 소송은 기각하면서 비대위의 법적 효력을 정지시켰다. 이대표와 소위 윤핵관으로 지목되는 당 지도부의 권력 상투는 쉽게 끝날지 않을 것 같다. 모두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 치부를 드러냈다. 여당 지도부의 한심한 작태에 많은 국민들이 혀를 찼다. 문재인 정부로부터 어렵게 정권을 이양 받은 국민의 힘은 위기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윤대통령이 여당 연찬회에 참석, 국민들에게 긴장 된 모습을 보이자고 술 대신 콜라로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떠나간 뒤에 맥주 파티를 했다는 후문이다. 지금 국가상황이 어렵고 당내 문제가 곤경에 빠졌어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번 국회에서 대통령과 주고받은 문자가 기자들에게 알려진 후 대통령의 지지도는 추락했다. 이번 주 조사한 여론 조사에서도 30%대를 간신히 넘었다. 고의든 아니든 이 문제는 권성동 대표에게 책임이 있다. 책임을 모르면 그는 얼굴이 두껍거나 무능한 정치인이다. 자당 대통령 후보의 지지도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신의 몫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어떤 정치인이라도 이 같은 일이 생기면 책임을 지는 것이 도리인데 대통령과 당을 곤경에 빠뜨리고도 죄책감이 없다. 야당 민주당의 행태는 오만과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정권을 국민의 힘에 내 주고도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결국 정의롭지 못한 처신으로 비대위원장 임무를 마쳤다. 그에게 당헌개정이 일사부재의 법 정의에 위배 된다는 일부당원들의 질책에도 두리뭉실 '정무적 판단'이라고 변명했다. 배가 산으로 가든 조각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든 뭐 어떠냐는 식의 대꾸다. 과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우상호 답지 않은 처신을 보여주었다. 그가 한마디라도 '저스티스(justice)'를 주장했어도 실망가운데서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을 게다. 정치, 정치인이 존경 받으며 때로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은 국민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개인이 입법기관이기 때문에 법과 정의를 목숨보다 중요시해야 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정치, 정치인은 그 책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얼굴 두꺼운 정치인이 많다. 앞으로 2년 뒤 치러지는 총선과 대선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에는 국가 원로가 없으며 존경받는 정치지도자가 없다. 좌우, 진보, 보수로 나뉘어 상대적 정치인을 헐뜯고 폄하하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학덕과 역량을 가진 인사들은 분쟁의 흙탕물에 빠지기 싫어 정치를 하지 않는다. 한국 정치의 장래는 국민적 존경을 받는 이들의 출현에 달려있다. 그리고 헌신짝처럼 버려진 '정의(正義)'를 회복하는 데 있다.
임진전쟁 당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때 궁중을 지키던 군사나 신료들은 거의 도망을 갔다. 임금보다는 자신이 먼저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이들이 궁을 먼저 빠져나간 구실은 늙은 부모를 먼저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겠다는 것이었다. 춘추관 사관들 마저 사초가 일본군 수중에 들어갈 것을 염려하여 불태우거나 산속에 묻었다. 임금이 탄 말이 궁을 빠져 나갈 때 호위를 한 신료 내관 궁녀 들은 90명 남짓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임금의 말고삐를 잡은 신하는 도승지 백사 이항복이었다. 횃불을 높이 들고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본 중전이 그가 누군가를 궁녀에게 물었다. '도승지 영감'이라고 말하자 중전은 '공의 충성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라고 감동했다는 고사가 있다. 이항복은 먼저 집에서 가족들과 이별했다. 가족들의 울부짖는 모습을 뒤로하고 궁으로 달려간 것이다. 그에겐 바로 '공(公)을 우선으로 하고 사(私)를 뒤로 한다'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승지는 임금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모시는 직책이다. 그는 자신의 가족보다는 임금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의주로 임금을 모시고 피난하면서 친구인 한음 이덕형과 더불어 명나라 원군 파병을 이루어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했다. 가족들에게 편지 한 장 보낼 수 없는 전장에서 백사는 선공후사의 직무를 완수함으로써 공직자의 임무를 다한 것이다. 사기(史記)에 선공후사의 고사가 기록 된다.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때 명장 염파와 재상 인상여는 공을 다투는 사이였다. 염파는 자신의 공이 큰데 인상여가 더 총애를 받았다고 불평했다.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는 것을 꺼려 다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를 비겁자라고하는 소문이 나라에 퍼졌다. 그때 인상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막강한 진나라 왕도 욕보인 내가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나와 염장군이 있기에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두 호랑이가 싸우면 형세가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를 피하는 것은 나라의 급한 일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선공후사)이기 때문이다." 염파는 이 같은 말을 듣고는 인상여의 대문 앞에 찾아가 사죄하였고 둘은 서로 목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요즈음 정치권에서 선공후사를 응용한 '선당후사(先黨後事)'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크게 반발하는 이대표에게 선당후사의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대표는 "'선당후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매우 가혹한 것"이라며 금기시해온 비난용어 까지 구사하며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삼성가노(三姓家奴)'란 말까지 썼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장래가 창창한 젊은 정치인, 그것도 여당 대표 입에서 이런 표현이 나와선 안 된다. 이대표의 그릇이나 지도력도 좋은 평가가 나오지 않는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희생한 애국지사들은 '선공후사'를 지킨 의연한 영웅들이다. 여야 모두 선당후사의 공인정식이 살아야 국민들의 신망을 받는 정당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간신(諫臣)'이란 임금에게 쓴 소리를 하는 신하를 말한다. 때로는 목숨을 내놓아야할 순간도 있다. 임금은 겉으로는 언로를 중시한다며 널리 쓴 소리를 구한다고 하지만 막상 신하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으면 분노조절능력을 잃고 만다. 임금은 군주를 능멸했다는 죄목을 씌워 어전에서 포박하여 의금부에 가두고 친히 국문까지 한다. 대신들이 안 된다고 해도 분을 참을 수 없어 곤장을 치고 머나 먼 귀향을 명한다. 대간에서 간언을 해도 임금은 귀를 막고 어전에서 다시 쓴 소리가 없다고 중신들을 꾸짖었다. 왜 이런 위선적인 말을 앵무새처럼 했을까. 임금과 신하들의 언행을 빠짐없이 사초로 담는 사관들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조선 역대 임금들은 언제나 언로를 활짝 열고 쓴 소리를 구한 임금들로 기록되고 있다. 선조는 어전에서 침묵하며 중신들의 말만 들은 왕으로 유명하다. 분노를 노출하거나 좋은 얼굴 표정을 지어도 중신들의 질책을 받았다. 부처처럼 그냥 아무런 표정도 없이 듣고 있어야만 보통 점수를 받았다. 필자가 최근 발견한 조선 선조대 5년간의 일사(日史) '방사기(邦史記. 조선역사 기록)'를 보면 율곡 이이(李珥)는 임금 앞에 나가 수 없이 많은 간언을 한 것으로 기록 된다. 비위에 거슬리는 말이 있어도 선조는 율곡을 벌주지 못했다. 율곡의 지성과 재주를 너무 아꼈기 때문이다. 그냥 듣고 침묵으로만 일관한 날이 많았다. 임진전쟁이란 미증유의 국난을 당했으면서도 선조는 훌륭한 신하들이 많아 사직을 지키고 참상을 극복할 수 있었다. 충무공 이순신은 살신성인으로 임금과 조국 조선을 지켰다. 모함을 받고 역적으로 몰린 장군을 온갖 반대에도 불구, 석방한 것은 선조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군을 처형해야 한다는 벌떼 같은 소리를 묵살하고 올바른 쟁신(諍臣)들의 간언에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충무공이 명량, 노량싸움에서 왜적을 대파,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결국 선조의 공이다. 일부 사가들이 선조를 무능한 임금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효경(孝經)에 '아무리 무능할지라도 황제에겐 쟁신 7명, 제후는 5명, 대부는 3명, 부모는 쟁자 1명만 있어도 명예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순자(荀子)는 '충신(忠臣)은 임금을 감화시키고 보완 할 수 있으며, 최소한 임금의 잘못을 간(諫)하여 성(怒)나게 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최근 여당 수뇌부들의 일탈 된 행동이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통령은 아직도 대선 후보처럼 행동하고 무능한 비서실은 입을 닫고 있으며, 그동안 문제를 일으킨 여당 수뇌부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실 인사에 관여한 당대표가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자신의 불찰을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원내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대통령 지지율도 오르고 국민의 힘이 산다. 소위 윤핵관과의 갈등으로 피해의식에 찌든 이준석 대표는 미몽 속을 헤매고 있다. 윤핵관을 공공의적이라 생각하고 당권에 재도전, 결전 준비에만 힘을 쏟고 있다. 이들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에겐 지금 쓴 소리를 해 주는 '쟁신(諍臣)'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분골쇄신해야 한다. 대선 결과에 승복 하지 않는 야권은 취임 2개월 밖에 안 된 대통령을 끌어내릴 탄핵 몽상에 빠져있다.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든, 국민들이 피해를 입든 말든 현 정권을 몰락시킬 방법만 연구하고 있는 것인가.
미증유의 국난인 임진전쟁을 불러일으킨 요인 중 하나가 조선 조정의 당파싸움이었다. 일본의 정세를 돌아보기 위해 떠난 동, 서인을 대표했던 사신들은 정반대의 보고를 했다. 일본의 침략이 목전에 다다랐다는 서인의 말에 동인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선조를 안심시켰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도 당파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렸다. 상대 당을 잡아야 권력을 쥐고 영화를 누려야 하지 않겠느냐 식이었다. 서, 남해에서 일본 전선과 대치하며 승리를 거둔 이순신장군도 제거 대상이었다. 서애 류성룡의 천거를 받은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등 공훈이 커지자 실각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서애의 반대파들은 당시 유몽인을 시켜 이순신과 휘하 장수들의 비행을 수집하기 위한 암행어사를 보낸다. 당시 이장군의 휘하에 있던 순천부사 권준은 이 장군의 가장 신임을 받았던 참모였다. 문관출신인 권준은 이장군보다 네 살이나 위였으며 학문과 시문(詩文)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 장군은 권준과 자주 만나 주식을 같이하고 사석에서는 형으로 예우하며 밤을 새워 회포를 풀고는 했다. 당시 군량 물자를 비축하기 위해선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곡식을 거두는 것이 불가피했다. 암행어사 유몽인은 권준을 희대의 탐관오리로 찍어 임금에게 보고했다. 한산도 대첩등 전황을 상세히 알고 있던 선조는 이 같은 어사의 장계를 불문에 붙였지만 이순신 휘하에서 떼어 충청수사로 보직을 변경시킨다. 이장군은 이 같은 처사에 울분을 느끼고 '나라가 언제까지 동인, 서인하며 싸울 것인가'라는 한탄어린 시를 쓰기도 했다. 권준이 이장군을 보필하여 마지막 노량해전에 참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장군의 곁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며 적장의 심장에 화살을 명중시켰던 권준이 분전했으면, 이장군도 적탄을 맞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당파에 중립적 위치에 있던 재상 백사 이항복은 중진들이 모인 자리에서 해학적인 얘기를 꺼낸다. '아침에 출근을 하다 보니 저자거리에서 승(僧)과 환관이 싸움을 하는데 중은 환관의 거시기를 잡고 환관은 중의 머리를 잡고 있더라니까….' 중신들은 백사의 조크에 한바탕 웃었지만 싸울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분쟁만을 생각하는 동, 서 양당 고관들을 은근히 빗댄 뼈 있는 농담이었던 것이다. 요즈음 국회 정상화마저 합의 못한 여, 야당 분위기를 보면 말문이 막힌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자당의 이익과 자리다툼에만 혈안이 된 인상이다. 여당 지도부는 벌써부터 당권경쟁을 위한 자파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소위 윤핵관 사이에도 권력 갈등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은 지인의 아들, 친척들을 채용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과 일부언론은 한 건 잡았다는 식으로 연일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국정은 팽개치고 오로지 출범 2개월밖에 안된 대통령 상처내기에 전념하는 형상이다. 민주당은 대표 선출 앞두고 민심을 외면 한 채 개혁하려는 의지마저 팽개쳤다. 세계 경제 상황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서민가계는 위협받고 있으며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자리다툼과 당파싸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한국의 여름은 임진전쟁 직전의 분위기를 방불하고 있다. 나라 망칠 연구만 하는 것인가.
문의 문화재 단지가 모처럼 경사를 만났다. 대청댐으로 수몰되어 산 중턱에 마련 된 피난지 문의에서 김영환 새 충북지사 취임식이 열린 것이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나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새 지사는 도민에 대한 첫 공약으로 충북을 '문화의 바다'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바다가 없는 충북, 인공의 바다 대청호에서의 이 코멘트는 신선하다. 김지사는 '문화의 소비를 늘려 문화의 생산을 촉발한다는 생각으로 충북을 문화의 바다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충북의 강, 산맥, 문화유산,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들, 지역마다 풍부하게 생산되는 다양한 먹거리 등을 활용해 충북을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과 힐링의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문의는 수몰되기 전 필자가 사랑한 역사의 고향이었다. 조선시대 문의현이 있던 관아지로 아름다운 금강을 끼고 문화가 발전한 작은 마을이었다. 강변 언덕에는 수 만년전 구석기 유적이 즐비했고 높은 산에는 백제를 지키던 고성(현리산성)이 자리 잡았다. 지금은 수몰 된 곳에 이름 없는 절터가 있었다. 필자는 이곳의 절터를 조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깜짝 놀랄만한 와편이 찾아졌다. 바로 김생사(金生寺)라는 명문이 찍힌 기와가 발견 된 것이었다. 와편은 통일신라의 것이 아니고 고려시대의 것이었다. 중원경(충주)에서 살았던 것으로 사서에 기록 된 신라 명필 김생이 이곳에서 살았단 말인가. 그 후 이 절터는 문화재 당국이 구제 발굴하여 보고서를 냈다. 신라명필 김생사라기 보다는 '금생사'라는데 방점을 찍었다. 지금은 아쉬운 점으로 남았지만 이곳 강변에서는 많은 구석기 유적이 찾아졌다. 지금은 문의면이 들어 선 여러 곳에서 구석기가 산란했다. 이 유물들을 정리한 분이 한국구석기 유적 연구의 대가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이융조 박사다. 이박사는 청원두루봉 동굴 선사유적을 시작하여 충북구석기 유적을 세계에 알린 공로자다. 단양 수양개 유적을 위시, 이박사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미호천 소로리 볍씨를 찾아 벼농사의 원류가 한반도 중심 청주에서 시작했음을 과학적으로 고증한 이다. 다른 지역은 볍씨 박물관을 다투어 만들었는데 정작 최고의 볍씨가 나온 소로리는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영환 도정은 숨겨진 충북의 보석을 찾아야 하고 그 보석이 값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새로 출범하는 김도정의 책무다. 미호천은 청주의 미래이지만 충북의 미래다. 이 곳을 어떻게 개발하고 관리하느냐에 미래의 청주, 충북의 성공이 달려있다. 미호천이라는 이름대로 한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강이자 문화의 바다로 만들어야 한다. 충북에 살고 있는 숨은 세계적인 석학들의 의견을 들어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충북은 숨겨진 역사,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다. 역사, 관광자원은 미래의 충북을 가장 멋지고 매력적인 관광의 바다로 부상시킬 소재들이다. 2천만 수도권 인구들을 불러 모을 최고의 매력적인 관광지가 바로 충북이다. 세계에서 제일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한 저력이 충북인에게 있다. 열정을 가지면 한국 최고,세계 최고의 충북을 만들 수 있다. 김지사 부터 앞장서 충북학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짜 내면 가장 위대한 충북을 반들 수 있다. 여기에는 진영논리나 여야가 따로 없다. 문의 문화재단지에서 '문화의 바다'를 만들겠다는 김지사의 선언이 가슴에 닿아 글을 쓰는 것이다.
민선 충주시장 3번, 17~18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민선 지사직 3선을 내리 역임한 이시종 충북지사. 모두 8번 선거에서 불패신화를 기록하여 '관운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얻었다. 지난 해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돈독하여 입각을 점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 정부에서의 역할은 더 이상 없었다. 얼마 전 모 신문이 퇴임을 앞둔 이지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공직생활 50년 동안 오직 일로써 승부했다. 늘 일이 먼저였고 명분과 이념보다는 국민을 위한 실용이 우선이었다. 달콤한 언변이나 처세술 대신 우직한 성실함과 업무 성과로 인정받고자 쉬지 않고 일에만 올인 하다 보니 8번의 선거에서 내리 선택받는 과분한 영광도 누리게 됐다' 그가 민주당후보로 도지사에 출마했을 때 필자는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선 솔직히 의심이 갔다. 평소 부침성 없는 내성적인 성격에다 언론인들과도 소통이 안 되었다. 그런데 그는 인터뷰대로 성실과 뚝심으로 행정의 달인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 지사의 구호는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이었다. 그러나 내 세운 업적 가운데 제일로 치는 것은 세계 무예마스터십이다. 그는 무예정신의 가치 확산, 국제친선·세계평화 기여를 위해 2016년 8월 사단법인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 본부를 청주에 마련했다. 그리고 2016년(청주)과 2019년 세계무예마스터십을 열었다. 이 대회는 태권도, 유도, 벨트레슬링, 무에타이, 우슈, 주짓수, 삼보 등 국제종합무예를 겨루는 스포츠 축전이었다. 이 지사는 세계무예마스터십이 올림픽과 쌍벽을 이루는 대표축제로 성장하면 충북이 세계무예 중심지가 되고, 무예 문화·제조·마이스 산업으로 국부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한국의 태권도 시범단이 미국, 프랑스 등 '갓 탈런트'에 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세계무예마스터십도 세계에 알리면 성공이 가능하리라 본다. 충북은 역사문화 자원의 보고다. 이 지사 재임 시 필자는 충주 신라 중원경 유적지와 영동난계국악유적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제안한바 있다. 이지사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고 단계적 추진을 언명했지만 이 문제는 새로 시작하는 김영환 도정의 몫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일본에는 한반도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 1909)의 생가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한국 고도문화권의 하나인 중원경(中原京) 지역은 경주 다음으로 중요한 유적지이다. 국가 지정문화재 등 숫자만 해도 전국에서 수위권이다. 악성 박연선생의 영동 심천면 난계유적은 국악의 성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도 손색이 없다. 이 지사는 지금 75세로 한창 일할 나이다. 집에서 손자나 보고 산천이나 돌아다니며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는 로맨틱 파도 아니다. 무언가 고향 충북을 위해 봉사하고 일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음성 출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나라를 위해 쉬지 않고 있다. 충북도정사에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긴 이지사의 앞날에 건강과 행운을 빌며 그의 경륜이 충북을 위해 다시 쓰여 질 것을 기대한다. 요즈음 한창 유행어가 되는 '미라클 시니어'의 선봉에 섰으면 하는 마음이다.
국회의원 보선과 전국 지방선거도 다 끝났다. 지역마다 희비가 엇갈리고 당선자들의 환한 미소가 언론을 달구고 있다. 대선의 열기 탓인지 조금은 김빠진 분위기였는데 투표율은 상당히 높았다. 단체장 선거는 사실 당과는 거리를 두고 지역을 이끌 일꾼을 뽑는 선거여야 된다. 광역단체장에겐 당적을 준다고 해도 기초는 당적을 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야당의 후보 경쟁에서 기대했던 인사들이 대거 탈락하는 이변을 보였다. 민주당의 경우 현역에는 20%씩 감점을 준 탓인지 많은 지역이 물갈이를 했다. 현역가운데 탈락한 단체장들은 불공정을 들어 1인 시위를 하는 지역도 있었다. 필자는 오랜 언론생활을 해 온 탓에 많은 전직 단체장들을 많이 알고 있다. 지금은 모두 은퇴했지만 지역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온 특별한 몇몇 단체장들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단체장들이 조금은 더 지역을 위해 일해 줬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은퇴하고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 몇 년 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모 지역의 시장은 겨울 새벽이면 제설차가 도착하기 전에 도로에 나가 눈을 쓸었다. 비탈진 길은 눈만 쌓이면 통행이 어려웠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도 몰랐다. 부지런한 시민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이 사실이 기자들에게 알려져 보도가 된 적이 있다. 관광지인 모 지역 군수는 토요일이면 어깨에 '환영합니다'라는 띠를 두르고 기차역으로 나갔다. 집에서는 농사일을 하여 얼굴이 새까맣게 탄 군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띠를 두른 것을 보고 그가 군수인 것을 알았다. 관광객들은 군수의 환대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 분도 2선을 하고는 은퇴했다. 더 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다시 농사꾼으로 돌아갔다. 군민들이 엉뚱한 민원을 들어달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며 다시는 그런 부탁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 민원인은 기분이 나빠 동네로 돌아가 험담을 했다. 들어주지도 못할 민원을 좋은 얼굴빛으로 알았다고 해 놓고는 차일피일 미루는 태도보다는 처음부터 기대감을 주지 않고 부탁을 자르는 것이 민원인에게는 이익이다. 필자는 간혹 그 지역을 찾으면 전화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주위에 알아보니 몸이 불편해 외부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빨리 완쾌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대하고 싶다. 모 지역의 전직 군수는 서울에 출장 오면 시간이 없어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했다. 필자와 우연히 점심시간에 만났는데 승용차 안에서 아침에 싸온 옥수수로 점심을 때웠다. 지역을 위해 이처럼 열정적으로 일을 해 온 이 군수는 나중에 불명예로 퇴직했다. 모두 아까운 분들이다. 모 지역 전직시장은 전문가 수준의 문화재 실력을 가졌던 분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문화시장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가 시장시절에 해 놓은 업적으로 지금 해당 시의 문화력은 놀라울 만큼 커졌다. 이번에 당선 된 새 지사, 시장군수들은 충북, 대전, 충남 지역의 특수성에 맞는 문화력을 키우는데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문화가 힘이고 권력'이라고 한다. 앞으로 4년간 충청권의 문화력이 눈부시게 격상되는 기대를 가져본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 귀양시절 61세에 고향 예산 화암사(華巖寺) 낙성 소식을 듣게 된다. 화암사는 바로 추사의 증조부인 영조의 사위 월성위 김한신(金漢藎. 1720 ~ 1758)이 중건한 절이다. 임금이 사위에게 내린 별사전 안에 있던 절이기 때문에 추사 가문은 이 절을 원찰(願刹)로 삼았다. 유학자로서 불교에 남달리 천착했던 추사에게 영향을 준 사찰이 바로 화암사다. 절에서는 추사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상량문과 절 안에 지은 누각에 대한 현판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요, 명필의 글씨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시경(詩境)'은 아름다운 곳 즉 시가 나올만한 경치를 지칭한다. 젊은 시절 부친을 따라 청나라에 갔을 때 당대의 석학 옹방강선생을 만나고 그로부터 송나라 시인 육유(陸游)의 글씨 '시경(詩境)를 얻어 화암사 병풍바위에다 각자했다. 이에 연관을 지어 절에서는 건물을 지으면서 '시경루'라는 현판을 달고자 했던 것이다. 추사는 귀양지에서 부인의 죽음에 임종도 하지 못한 채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런데 화암사에서 시경루 현판 부탁을 받았다. 추사는 인편에 두 가지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화암사에 가면 당시 추사가 보낸 진묵 시경루(詩境樓) 현액은 없다. 추사 글씨를 갖고 나무에 각을 한 현판이 예산 고택 추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추사 글씨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화암사를 찾아 진묵 보기를 희망해 왔다. 그러나 후대에 각자한 현판만을 보게 되어 실망하는 이들이 많았다. 시경루는 작은 현판이지만 추사가 써온 예서체중 가장 아름다운 글씨로 평가받는다. 추사는 예서를 '서법의 조가(祖家)'라고 했다. '만약 서도에 마음을 두고자 하면 예서를 몰라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예서의 서법을 근본으로 삼은 것이다. 추사가 추구한 예서세계는 서한(西漢)시대 비석의 방경(方勁 : 모나며 굳셈), 고졸(古拙 : 예스럽고 졸박함)의 구현이었다. 한 대의 수많은 명비(名碑) 탑본을 얻어 피나는 노력 끝에 최고의 예서를 쓰게 되었다. 필자는 최근 경남의 모 암자에서 한 스님이 소장하고 있는 묵적 한 점을 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묵적은 고색창연한 한지에 쓴 '시경루'였다. 왼쪽에는 추사의 방인(方印) 낙관이 두 개 찍히고 오른 쪽에는 전서(篆書) 두인(頭印)을 찍었다. 처음에는 난해하여 읽을 수 없었다, 필자는 한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의 도움을 받아 두인을 해석하는데 성공했다. 추사가 직접 도장을 새겨 거꾸로 찍어 해석이 어려웠던 것이다. 두인은 바로 화암사의 정경을 시로 적은 듯한 송나라 말기 옹삼(翁森)의 시 '사시독서락(四時讀書樂)'에 나오는 '낙화수면개문장(落華水面皆文章)'이었다. '꽃이 떨어지니(꽃비) 모든 것이 시(문장)로다' 고향을 그리며 꽃비를 생각한 것인가. 필자는 추사의 가장 아름다운 예서 '시경루'를 진묵(眞墨)으로 고증하는 행운을 얻었다. 5월 중순 화암사 뜨락에는 아카시아 꽃비가 날리고 있다. 고사(古寺) 풍경의 그윽함에 한편의 시가 나올 법하다. 바다 건너 제주 천리 타향에서 현액을 써 보낸 추사의 심경은 어땠을까. 시경루 한 획 한 획에는 추사의 슬픈 마음이 표현 된 것만 같다. 추사의 오열이 묻은 유묵을 만져보니 필자도 숙연해 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날 청주 무심천(無心川)을 생각하면 조선 최고의 명필이자 경학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이 생각난다. 무심천은 선사시대부터 청주의 젖줄이었으며 통일 신라 5소경의 하나였던 서원소경의 치소(治所)였다. 추사는 '무심(無心)'을 가슴에 넣고 산 분이다. '중생이 욕심을 갖고 헛되이 집착하면 번뇌·생사·보리·열반 등 모든 것이 생기게 된다. 무심을 깨치기만 한다면 이 같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유학자답지 않게 추사는 불자가되어 부처의 가르침을 게송하며 살았다. 해남의 친구 초의선사와 글을 주고받으며 불심을 닦았다. 난을 잘 그리지 않은 추사가 말년에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라는 특별한 작품을 남겼다. 이 그림을 처음에는 부작란(不作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기존 서법을 전혀 지키지 않고 화제를 쓴 것이어서 일부학자들 사이에는 진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불이선'은 초의선사의 화두였다. '난과 선이 둘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차(茶) 한잔으로도 선(禪)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설법해온 초의는 난을 통해서도 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사는 난(蘭)을 즐겨 그리지 않았다. 난을 그리는 것이 어렵고, 그림 속에 인품이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20년 연하인 대원군 이하응이 추사의 집을 출입할 때 난화(蘭話)를 통해 이 같은 심경을 드러냈다. 불이선란도의 화제를 보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내려갔다. 서도의 정형을 깬 파격이다. 추사의 작품은 글씨의 품격이 곧고 골격이 준수한데 비해 치기가 엿보인다. 추사의 글씨라고 보기에는 장난 끼가 가득 담겨있다. 그림 하단 왼쪽에 추사는 '달준이를 위해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단지 한 번만 있을 수 있고,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 (示爲達俊放筆 只可有一 不可有二)'고 적었다. 그리고 선객노인(仙客老人)이라는 낙관을 찍었다. 이 난화의 난 잎은 바람의 반대방향으로 꺾이듯 반전을 이룬다. 10년여를 제주도와 북청에 두 번 유배를 당하고 고통스럽게 살아온 삶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추사는 만년에 생활고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두 번씩이나 귀양을 갔다 온 터로 사대부들의 발걸음이 끊기고 녹봉이 없어 곤궁했다. 이때 문전에 와서 추사에게 도움을 준 그룹이 바로 청나라를 자주 다녔던 역관(譯官)들이었다. 추사의 그림이나 글씨는 청나라 지식인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역관들은 추사의 유묵을 받아가 진귀한 물건들을 교환했다. 젊고 씩씩한 역관들을 친구처럼 생각한 것이 추사문집에도 나타난다. '불이선란도'는 추사의 '무심'한 삶을 드러낸 파적의 산물이다. 작품을 받은 달준이라는 인물도 역관으로 보이는데 장난삼아 그려준 그림이 지금 국보적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평소 난을 그리지 않던 추사의 난 그림은 '무심'한 추사의 선문답이자 체제에 대한 지식인의 저항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월초파일을 앞두고 무심천에 연등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모두 욕심을 버리고 번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만 같다. 세계는 지금 핵전쟁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푸틴의 전 근대적 야욕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동서가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어떤 명분이든 인류의 멸망을 가져오는 핵전쟁만큼은 피해야 한다. 청주 무심천의 연등 광명이 전쟁에 광분하는 세력들의 가슴에 까지 닿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