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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과 붉은 단풍이 잘 어울리는 날씨다. 바람은 나뭇가지 끝에 이파리를 가볍게 스친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한강이 보인다. 먼빛으로 출렁이는 물결 사이사이 햇살이 반짝인다.

엊저녁 아들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큰아들은 어릴 때 중이염으로 여러 번의 수술을 겪고, 지금도 대학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닌다. 일하느라 바빠서 제때 치료를 받게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큰 탓에 유독 마음이 쓰였다. 그런 아들은 심성 고운 청년으로 성장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나는 언제나 부모로서 아들 편이고 든든한 조력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이 오히려 내 인생의 응원군이 되어간다. 남편과 싸웠을 때도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믿고 기다려줬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들어주고 남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속마음도 털어놓는다. 끝도 없는 나의 욕심을 드러내도 가만히 듣기만 하고, 내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는 처음으로 비수 꽂힌 말을 한다. 자신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한다'라며, 타인과의 비교로 힘들었던 시간을 토로한다.

끝없이 흐를 것만 같은 한강은 바다로 흘러간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을 솔트 라인(Salt Line)이라고 한다. 두 물의 차이는 염분이 있느냐 없느냐로 차이가 심한 경우 솔트 라인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 솔트라인은 수시로 변해서 가뭄으로 강물이 줄어들면 강 위쪽에 형성되고,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불어나면 바다 쪽으로 깊이 들어간다. 경계선에서 선을 넘으면 담수였던 물은 마실 수 없는 소금물이 된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선이 선명해질수록 속앓이를 심하게 겪었다. 내게 주어진 삶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면서도 늘 타인을 의식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나의 자존감은 타인과의 비교로 무너진다. 감추고 싶은 열등감을 더 깊숙이 넣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들과 얘기할 때마다 은연중에 나의 본모습이 나왔었나 보다. '엄마는 충분히 잘살고 있어.' 하며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상처받지 않도록 위로한다.

로키산맥의 높은 산꼭대기는 만년설이 뒤덮여 나무나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다. 산의 경계선 트리 라인(Tree Line)이다. 날씨에는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처럼 전선(前線)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무장충돌이 일어나는 전선(戰線)이 형성되는 것처럼, 자연뿐 아니라 세상 곳곳에 수많은 경계선이 있다. 단지 선 하나의 작은 차이일 뿐인데도, 생명이 살기도 하고 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하기도 한다.

한 끗 차이로 나의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면 분명 존재감이 뚜렷해졌고 성장하는 삶을 살아왔다. 지금 이대로 멈추지 않고 '나로 살기'로 한다. 가끔 잊어버리고 혼돈을 겪을 때면 비수로 꽂힌 그 말을 기억해야지.

아들을 만나고 귀가하는 길이 평온하다. 가을이 한창인 풍경도 곁눈질로 보다가 이제야 비로소 창밖으로 온전히 바라본다. 나를 향하는 마음의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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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날 특집 인터뷰 - 윤희근 경찰청장

[충북일보] 충북 청주 출신 윤희근 23대 경찰청장은 신비스러운 인물이다. 윤석열 정부 이전만 해도 여러 간부 경찰 중 한명에 불과했다. 서울경찰청 정보1과장(총경)실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게 불과 5년 전 일이다. 이제는 내년 4월 총선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취임 1년을 맞았다. 더욱이 21일이 경찰의 날이다. 소회는. "경찰청장으로서 두 번째 맞는 경찰의 날인데, 작년과 달리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그간 국민체감약속 1·2호로 '악성사기', '마약범죄' 척결을 천명하여 국민을 근심케 했던 범죄를 신속히 해결하고,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건설현장 불법행위' 같은 관행적 불법행위에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으로 법질서를 확립하는 등 각 분야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만들어졌다. 내부적으로는 △공안직 수준 기본급 △복수직급제 등 숙원과제를 해결하며 여느 선진국과 같이 경찰 업무의 특수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전환점을 만들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 다만 이태원 참사, 흉기난동 등 국민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건들도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맞게 된 일흔여덟 번째 경찰의 날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