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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자

전 보은문학회장

 내 생일은 11월 초순으로 친정어머니가 김장배추를 절여 놓은 상태에서 낳아, 그 당시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큰 언니가 김장도 담그고 밥도 지으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내게 생일은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어머니가 해주신 하얀 쌀밥과 미역국 고등어 자반구이 그 정도이고, 결혼 후는 외식과 작은 아들이 내게 준 선물 몇 가지가 생각난다. 유치원 다닐 때, 온종일 보이지 않더니 작은 선인장으로 꾸민 화분을 들고 왔고,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연보랏빛 국화를 안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내 생애 최고의 선물로 기억되는 것도 그 아이가 고3일 때, 수능을 본 다음날의 생일이었다.

 수능시험을 보던 날, 시험 장소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온종일 긴장과 초조함에서 보낸 후, 마지막 과목인 제2외국어가 끝나는 오후 6시 15분, 그 전부터 학교에 도착해 사방에 내린 어둠과 함께 서성이는데 거의 30분이 더 경과한 다음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달려가 수고했다며 안아 주고 밖에서 밥을 먹은 뒤, 집에 돌아와 시험지 답안을 맞춰본 결과, 나쁘지 않아 안도의 숨을 쉬면서 난 아이에게 말했다.

 "넌 이제 시험 끝났으니 찬밥이야. 그리고 내일 엄마생일인데 미역국 끓여줄래?"

 그 아이는 미역국을 끓일 테니 미역과 고기가 어디 있느냐고 묻기에 난 퉁명스럽게 미역국을 끓이려면 재료는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물론 기대도 없이 얘기를 했는데 정말 해줄 것 같이 진지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는 시험결과에 대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더니 시험도 끝났으니 친구들과 만나 놀다 온다며 나갔다. 그날 밤, 난 긴장이 풀려서인지 온몸이 아팠고, 밤새 헛소리를 하며 끙끙 앓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밥을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라면이라도 끓여 보려고 평소보다 좀 늦게 일어나 방문을 여니 작은애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느냐고 물어 보니 그저 웃으며 밥 다 해놓고 미역국도 끓여놨다고 한다. 정말 렌지 위에 큰 냄비가 있었고, 뚜껑을 열어보니 미역과 소고기가 섞인 미역국이 반 정도 있었다. 또 전기밥솥을 열어보니 현미를 섞은 밥이 있었다. 고마운 마음과 감동이 넘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녀석에게 다가가 녀석을 꼭 안으며 "너 시험 잘 본 것만으로 엄마 생일선물 충분한데, 너도 시험 보느라 고생했는데 밥과 미역국을 끓여 놓다니 정말 고마워. 아들이 있어 엄마 정말 행복해" 했더니 많이 쑥스러워 했다.

 지난밤에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던 때가 늦은 것 같은데, 어떻게 재료를 준비했는지 궁금했다. 미역은 나가면서 사놨고, 소고기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정육점이 문을 닫지 않아 고기를 샀고 집에 돌아와 고기는 바로 통째로 2시간 정도 끓인 다음 고기를 손으로 찢어보니 잘 익은 것 같아 불린 미역을 넣고 끓였다고 했다. 미역은 한 봉지를 다 물에 불려 보니 너무 많아 반만 했다고 했는데 싱크대 위에는 불린 미역이 많았다. 간은 집 간장과 약간의 소금으로 했고, 정육점 아주머니가 미역국에 마늘을 넣으면 더 맛있다고 하여 마늘을 넣었단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미역을 팬에 볶다가 하는 것도 있었고 다양했지만 번거로워 엄마가 하던 걸 잘 생각해 보며 끓였고 아주 재미있었다고 했다. 밥은 쌀과 현미가 어디 있는지 알아서 엄마가 하던 대로 쌀을 새벽 3시쯤 2시간 정도 불려서 5시께에 밥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밤에 잠을 한숨도 자지 않았다고 했다. 정말 그랬을 것 같다. 11시 넘어 들어와 고기를 삶고 또 쌀을 불리고 국을 끓이고 했으니 말이다.

 미역국을 먹어보니 그 애 말대로 맛이 좋았다. 그러나 국물은 적고 고기와 미역이 너무 많아 다시 물을 더 붓고 간을 맞춰 끓이면서 즐거웠다. 아이는 고기와 미역을 사면서, 그리고 미역국을 어떻게 끓여야 하나 인터넷 검색을 하며, 또 고기를 삶고 미역국을 끓이며 밥을 지으며 엄마인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 마음이 고맙고 내게 큰 기쁨과 위안을 줬으며 나를 위하는 내 사랑하는 아들 있어 정말 행복한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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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가 만난 사람들 - 김순구 한국감정평가사협회 회장

[충북일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50~60대인 사람들은 모두 다 공감하는 말이다. 절실 할수록 더 노력하고, 어려 울수록 뼈를 깎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딘 CEO들이 적지 않다. 김순구 한국감정평가사협회 회장. 그의 이력과 언변을 보면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의 표상(表象)이라는 사실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김 회장을 만나 고향을 향한 큰 그림이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 주요 업무는 "국민 재산권 보호와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1989년 설립됐고, 2016년 법정단체가 됐다. 주요 업무로는 감정평가제도 개선, 감정평가사 지도·관리 및 연수, 국토교통부장관 위탁업무 등이 있다. 그리고 올바른 부동산 문화 정착을 위해 부동산 감동교실을 운영하고, 국민에 봉사하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자 사회공헌사업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충북 출신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나 "저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을 늘 생각하면서 자랐다. 아주 어릴 적 아버님께서 작고하셔서 홀어머님이 저를 어렵게 키웠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자란 친구들이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