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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9.09 16:13:24
  • 최종수정2018.09.09 18:05:32

송원자

전 보은문학회장

 두 달 가까이 만나는 사람마다 작렬하는 태양과 푹푹 찌는 더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아침저녁 서늘한 기온과 함께 들려오는 풀벌레소리가 가을의 길목에 섰음을 느낄 수 있다. 다 지나간다는 말처럼 그렇게 더위는 뒷걸음질치고 달아난 것 같다. 나이 탓인지 시간이 후딱 지나가는 것 같다. 한 곳에 머물지 않는 것이 어디 시간뿐일까?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도, 좋아하는 음식도, 생각과 느낌도 보이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주변을 돌아보면 정말 많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유년시절 온 우주였던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얼마 전, 친구는 술과 다과를 준비해 부모님 산소에 갔다고 했다. 모처럼 혼자 찾으니 마음이 편해, 부모님 앞에서 지난시절과 현재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다가 '어머니 은혜' 노래를 시작했는데 끝맺음은 '스승의 노래'가 됐다고 해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친구는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어머니의 이야기를 자주하고 그때마다 눈물을 보인다. 이렇듯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있다. 비록 사는 곳이 달라도, 아주 우리 곁을 떠났다고 해도 늘 마음의 방 하나에는 어머니가 존재해 있다.

 나 역시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크다. 어머니는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는 출산의 고통을 열두 번이나 겪으셨다. 그 많은 자식들을 키우면서 산전수전 다 겪으셨고, 그 중 어린자식 둘을 가슴에 묻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어머니는 가난함 속에서도 교육열이 높아 보은에 여중고가 없던 때이지만 큰언니를 보은중학교와 보은농고 가사과에, 그리고 둘째언니를 수원으로 유학을 보내는 등 딸들까지 고등교육을 시켰다.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애성이 유달리 많았고 막내인 내게 끝 자식이라고 불쌍해하시며 더 애틋한 사랑을 주셨다. 어머니 연세가 73세 되던 겨울이었다. 천개의 종이학을 접어다 주시며 종이학천개를 갖고 있으면 한 가지 소망이 이뤄진다고 하니 잘 보관하라고 하셨다. 말씀은 안하셨지만 종이학 하나하나에 딸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정성을 다해 접으셨음을 볼 수 있었고, 천개의 종이학을 접으면서 눈도 침침하고 어깨도 많이 아프셨을 것이다. 그 종이학을 간직한 지 얼마 후, 어머니의 염원이 통해 나의 가족 소원이 이뤄졌다. 그 당시 난 둘째아이를 갖고 만삭으로 직장이 멀어 힘겨워 했었는데, 보은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보은으로 발령받던 날 남편은 큰아이와 나를 얼싸안고,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였다. 남편과 나는 지금도 그 날의 감동과 기쁨을 어머니가 가져다주신 것이라 믿고 있다. 그 이후 어머니는 언니와 오빠 네 명에게 각각 천개씩 접어주어 총 오 천개를 접으셨다. 종이학 자체는 하찮을 수 있지만 종이학의 의미에 매달리며 접었던 종이학에서 어머니의 정성과 자식사랑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느낄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알면서도 직장과 육아로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갚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시간이 허락하는데 어머니는 떠나 뵐 수 없고 내 마음속에만 계신다.

 나의 어머니는 감성적이고 다양한 말을 많이 쓰셨다. 산촌과 바닷가에서 보내셨던 유년시절 이야기를 실감나게 잘 들려주셨고, 아름다운걸 보면 그것에 걸맞게 잘 표현하셨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으셨다. 젊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둘째언니도 소설속의 주인공 이름으로 첫 자를 따서 지었다고 했다. 내 기억 속에서도 겨울밤이면 돋보기를 쓰시고 대하소설부터 문학전집을 읽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나 역시 어머니를 그대로 닮아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나를 존재하게 한분,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은혜로 내가 있는 것인데 난 평탄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잊고 살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어머니를 찾게 된다. 이런 이기심까지 어머니는 날 사랑하실 것이다. 희끗 희끗해진 머리칼만큼 나이를 먹고, 내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순간순간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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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