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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자

전 보은문학회장

 오랜만에 가을 산길을 걸었다. 산은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끼게 해주는데 산길 초입부터 들꽃이 지천이다. 쾌적한 향기를 뿜어내는 산국과 감국이 노랗게 웃고, 해국과 쑥부쟁이가 보랏빛 얼굴로 파란하늘을 향해 하늘거린다. 능선을 따라 주변에 하얀 구절초가 상큼한 모습으로 흐드러졌고, 물봉선, 벌개미취 등 수많은 꽃들이 자기의 빛깔과 향기와 의미를 지니고 피어 있다.

 맑은 새소리에 섞여 나무들끼리 수런거림과 낙엽끼리 부딪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이따금 툭 툭 밤과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밤나무아래에는 빈 밤송이가 수북하게 쌓여있고 등산로에는 밤과 도토리가 꽤 많이 떨어져 있으며 겨울을 준비하는지 바쁘게 돌아다니는 다람쥐도 보인다.

 나도 다람쥐처럼 수확의 계절을 맞아 평소보다 손길이 바빠졌다. 벌레 먹은 밤을 고르고 껍질을 까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밑반찬이 될 만한 도토리묵, 호박과 가지도 썰어서 말린다. 그리고 좀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고추부각으로 풋고추를 밀가루에 묻혀 찜 솥에 찐 다음 말리는 것이다. 고추가 작은 것은 통째로 하고 큰 것은 자르는데 매운 것은 정도에 따라 물에 담갔다가 이용한다. 이 고추부각은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좀 욕심을 부려 많이 만들려고 한다.

 이렇게 햇빛에 말려야 하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르게 되는데 종류에 따라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곶감이다. 단단한 감을 껍질을 깐 다음 줄에다 몇 개씩 묶어 말려도 보았고, 채반에다도 말려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내어놓고 저녁에 들여놓는 일을 반복하며, 골고루 말리기 위해 햇빛을 본 것은 뒤집어 놓는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는 열개씩 묶을 수 있는 감 말리는 도구를 사용해 옥상의 빨래 줄에 걸어 놨다가 저녁에는 비닐로 덮어준다. 아침에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옥상에 올라가 비닐을 벗기는데 한 동안은 비닐 밖이 아닌 안에 습기가 차서 물이 뚝뚝 떨어지곤 한다. 감에 있는 수분이 새어나오는 것인지 한 20일 정도 지나면 비닐을 벗겨도 물이 차지 않는다. 아마 감의 겉이 어느 정도 건조돼 그런 것 같은데 속은 홍시처럼 물렁하다.

 그런데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곶감 만들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까서 잘 말리려 해도 비가 며칠 오면 바로 곰팡이가 생기고 감이 축 쳐져서 버려야 한다. 그런 걸 참 많이도 반복한 것 같다.

 어느 해는 분명 날씨가 좋아 옥상에다 곶감과 고추부각을 널어놓고 외출했는데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며 소나기가 내려 어느 정도 말린 것들을 다 버려야 했다. 가정에서 만드는 곶감은 햇빛과 바람이 적당하고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곶감을 맛볼 수가 없다.

 곶감을 만들 때, 아침에 옥상에 올라가 빨래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감을 보면 흐뭇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답답해진다. 언제쯤 먹기 좋은 곶감이 될지, 아직 더 얼마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앞으로 열흘, 아니 한 달, 그 안에 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도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언제쯤 이루어질지 의문인 때가 많다. 많은 노력과 고통의 경험을 반복하며 "이제 때가 왔어." "이제 다 익었어." 이렇게 확신했는데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캄캄함과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고 수정하는 경우도 있고,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막막함을 딛고 다시 용기를 내고 자신감을 되찾으며 힘든 시간을 극복하고 목표에 재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삶은, 떫은 감이 달고 맛있는 곶감으로 가는 과정에서, 순기능인 햇빛과 바람이 아닌 역기능의 비를 만나 실패를 경험하듯이 우리 자신의 의지로 되는 것은 한계가 있어, 인내심을 가져야 할 때가 참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삶 자체가 참고 기다리는 일의 반복이 아닐까? 그렇게 성취되지 않아 아파하고 마음고생하면서 성숙해지고 자신 속에 존재하는 오만함이 조금씩 작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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