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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일간 면벽수행의 결실 '청주 서예가의 길'

장학진 서예가 지난 4월 10일부터 6월 11일까지
3개 단체 36명 작가 서예작품 충북대 담벼락에 옮겨

  • 웹출고시간2014.07.03 15:44:35
  • 최종수정2014.07.03 15:45:29

'9년 동안 면벽하며 혼돈(混沌)속에 뼈만 남았다. 좁쌀만한 빛이 들어와 바라보니 만물은 곧 텅 빈 세상이었다.'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행 끝에 달마대사가 얻은 깨우침이다. 따지고 보면, 달마대사의 면벽수행은 오로지 자신(我)의 깨달음을 위한 과정이었지만, 그의 수행은 의미가 남달랐다.

2014년 4월 19일부터 시작된 '청주 서예가의 길'이 장장 54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지난 6월 11일 마침내 완성이 되었다. 오로지 장학진(56) 서예가의 손끝과 땀방울로 이뤄낸 결실이었다. 54일간의 '서예가의 길' 작업과정은 자신만이 아닌, 서예(書藝)를 위한 지난한 면벽수행이었다.

거칠고 더러웠던 벽을 하얀 화선지로 바꾸고, 기증받은 서예가들의 글씨를 한 땀 한 땀 벽에 새기듯 글씨를 입혔다. 그것은 침묵을 채워 마음을 비우는 일이기도 했다. 천불천탑(千佛千塔)을 빚어내듯 공들여 쌓아 올려낸 그의 심결에 54일간의 여정이 고스란히 배어 거리에 묵향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을 찾았다.


"거, 참 좋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시민이 잠시 나무그늘 아래 가던 길을 멈추고 벽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천천히 담벼락을 따라 가며 글씨를 감상하기도 하고, 옆에 붙은 작가의 약력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렇듯 충북대학교 정문 담벼락에 새겨진 서예작품이 오고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이곳 담벼락에는 충청북도 초대작가급 서예작가 35명의 작품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과거 이곳은 인적도 드물어 밤이 되면 낡은 옹벽으로 더욱 어둡고 을씨년스럽던 거리였다. 하지만 이제 새롭게 담벼락이 화선지가 되어 서예가의 글씨로 단장된 곳에는 활기가 넘치고 밝은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된 것이다.

"좋은 의미였어요. 작품을 낸 작가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되어 만족합니다. 청주가 직지의 도시로 자리 잡았잖아요. 그렇다면 청주에 '서예가의 길'이 하나쯤 있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는 먼저 충북대 정문에서 복대초등학교 방향의 인도 옆 옹벽 300여m구간을 주목했다. 어둡고 황량한 이 길을 '서예가의 길'로 살려내고 싶었다. 작년 5월, 충북대학교와 청주시 그리고 흥덕구청과 꾸준히 협의를 마쳤는데 과정이 복잡했다. 옹벽은 청주시 관할이고 관리는 흥덕구청이었으며 토지는 충북대 소유였다. 먼저 이곳에 소요될 예산 3천만원은 청주시와 충청북도의 협조로 마련되었다. 그런 연후에 올 3월부터 옹벽 뒤쪽 배수로 공사와 담벼락 페인트작업을 시작했다. 작가 선정은 2013년 1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청주의 서예 전업 작가 중심으로 진행했다. 혹시 모를 잡음을 피하기 위해 공평하게 청주의 서예 3개 단체(미협, 서협, 서가협)소속의 초대작가 위주로 추천받았다. 이곳에 참여한 작가는 모두 3개 단체에서 추천된 36명이었다.

"작가들에 보내준 작품을 규격에 맞게 확대해 벽에 먹지를 붙이고 그 위에 확대된 글씨를 붙여 연필로 일일이 외곽선을 따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외곽선에 페인트를 입히는 작업이죠."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구한 먹지를 담벼락에 대고 무더위와 씨름해야 했다. 하루 8시간의 외로운 강행군이었다. 혼자서 온전히 그 일을 감당해야만 했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은 아내와 주말이면 대학 서예학과에 다니는 딸이 청주로 내려와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빨리 끝나는 작품은 하루면 충분하지만, 글씨가 많고 비백(飛白)이 많은 경우 2~3일이 걸리는 일도 허다했다. 자신의 글씨가 아닌, 타인의 작품을 하나씩 묘사하는 일은 자신을 감추고 비워야 가능했다.

"이곳 담벼락에 새겨진 작품들은 작가 특유의 개성이 있어요. 그 글씨를 벽면에 옮기는 작업은 나를 없애야 가능했어요."

그 작업은 지난한 노력과 행위가 반복되는 인고의 수행과정이었다. 때론 무모한 노동과도 같은 작업과정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자신의 내면에 잠복되어 있던 번뇌와 나약함을 다스리기도 한다. 결국 침묵을 채워 마음을 비우는 일이기도 했다.


장학진(56)서예가는 대한민국 서예전람회에서 특선을 2번이나 수상한 바 있는 실력파 작가다. 현재 청주시 사회복지관과 중앙도서관,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을 거쳐 지난해부터 청주시 평생학습관에서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40년, 오직 서예라는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 '청주 서예가의 길'은 새롭게 만난 삶의 산책길과 같은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길을 찾는 시민들에게 우리 전통의 민족정신이 담긴 붓글씨의 우수성과 문자의 예술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54일간의 여정을 그는 시원한 듯, 그저 허허롭게 '서예가의 길'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 있다.

/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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