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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열어준 사람들 미용봉사회 '환희회'

20년 전 현역 재원들로 첫 결성
요양병원 ·정신병원 등서 꾸준히 봉사활동

  • 웹출고시간2014.04.17 19:53:24
  • 최종수정2014.04.17 19:53:24

'싹둑, 싹둑!'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인 '예사랑병원'에 들어서니 문마다 이중 잠금장치가 무겁게 다가온다. 알코올중독 환자의 특성상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려는, 사고 예방 차원의 방침일 것이다. 미로 같은 복도를 따라 미용봉사현장을 들어서니 멀리 창문을 통해 봄 햇살이 눈부시다. 알코올중독 치료중인 환자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옆 환자들과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머리 깎으니 좋으세요?"

"그럼, 하루가 개운하지. 고마운 사람들이야. 실력도 좋고. 저 사람들이 왔다 가면 병원이 다 환해지는 것 같아. 진짜 봄이 온 것 같지"

머리를 깎고 있는 환자들에게 '언제 퇴원하느냐?'라고 물어보자, 대부분 '내일'이면 퇴원한다고 대답한다. 그만큼 환자들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가보다. 무심천 벚꽃은 벌써 피고 지었건만, 어쩌다 이곳에서 갇혀진 봄을 맞이해야 하는지, 애처로웠다.

'환희회' 미용봉사회 신순우(59) 회장은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한 이분들은 환자라기보다 삶에서 잠시 휴식기를 갖는 느낌입니다. 헝클어지고 비쭉비쭉 제멋대로 나온 머리카락을 잘라드리고 나면, 무척 좋아하십니다. 덕분에 우리들 마음도 더욱 개운합니다"라고 말한다.

'온 인류여, 서로 포옹하라. 그리고 온 세계에 이 포옹을 퍼뜨리자. 형제들이여, 별빛 빛나는 저편에는 자비로운 환희의 신이 있나니~'

음악애호가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베토벤의 '합창교양곡' 제4악장 '환희의 송가' 중(中) 클라이맥스에 해당되는 가사다. '환희의 송가'는 괴테와 함께 독일 문단의 양대 산맥이었던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詩)다. 20년 동안, 아무런 조건 없이 봉사의 일념으로 어려운 이웃들의 머리를 손질해 준 '환희회'의 역사를 듣다보면 저절로 '환희의 송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환희회' 김길례 봉사자는 "머리 손질을 마치고 거울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을 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 봉사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합니다"라고 말한다. 상대방이 행복해지니, 나도 행복해진다고 담담히 말하는 봉사자들의 손길이야 말로 진정 자비로운 '환희의 신'은 아닐까.

미용봉사회 '환희회'가 처음 결성된 것은 20년 전, 1994년이었다. 현재 라마다 호텔 앞에서 '환희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가연씨가 초대 회장이었다. 처음 미용봉사회가 결성될 당시에는 모두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거나, 미용사로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재원들이었다. 신순우 회장은 "그때 거의 모두 처녀미용사들이었어요. 자비를 털어 티셔츠와 장난감 혹은 떡과 같은 음식을 준비해서 주로 고아원을 방문했죠. 아이들의 머리도 깎아 주고 하루 종일 함께 놀다보면 하루가 금방 갔어요. 그때는 봉사회원들이 7~1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회원이 28명이니 많이 늘었지요"라며 그 시절을 회상한다.

환희회 봉사회는 1회 이가연 회장, 2회 김성란 회장, 3회 신순우 회장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환희회 봉사회는 알코올전문병원, 진천 효병원, 성심노인요양병원, 청주의료원 정신병원 등에서 거의 매일 미용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예사랑 병원 이태영 원무과장은 "환희회 미용봉사회는 언제나 인기 만점입니다. 그만큼 친절하면서도 미용 실력이 출중합니다. 늘 헌신하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면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슬쩍 눈치를 보더니 자신들이 선호하는 미용사 쪽으로 줄을 서려고 한다. 신순우 회장은 "여기도 똑같죠. 사람 사는 사회잖아요. 늘 봉사를 하러오다 보니, 자신들이 좋아하는 미용사를 기다리다 찾아가는 거죠"라고 미소 짓는다.

머리를 깎던 어떤 알코올중독 환자가 중얼거린다.

"난, 눈 떠보니 병원이야. 젠장!"

그 소리에 봉사미용현장은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꽃잎 여는 눈부신 봄날, 환자들의 머리를 손질하는 환희회 봉사자들의 가위에 봄빛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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