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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종일 내렸다. 잎 진 가로수들이 추적추적 비에 젖고,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젖어들어 스산하다. 겨울 저녁은 빨리 오고, 닭은 어둠이 내리자마다 횃대에 올라가니 회색도시의 사람들도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부산하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날을 준비하려는 자성의 시간, 꿈을 빚는 시간이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송년회를 핑계로 이 골목 저 골목, 이 술집 저 술집 뻔질나게 드나들 것이다. 없는 모임도 만들려 할 것이고 밤 늦도록 술과 노래와 욕망의 골목길을 오가며 절박하게 자유의 피를 토할 것이다. 물론 제대로 가슴 펴고 살아본 적 없는 도시민들에게는 살고자 하는 뜨거운 용광로같은 것일 수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삶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쏟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언제부터 이토록 술을 즐겼는지, 유흥문화에 관대해졌는지, 그리하여 이 나라 전체가 술잔치에 젖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매년 35억 병의 소주와 45억 병의 맥주를 소비하고 있으니 쌀밥 먹는 양보다 술 먹는 양이 더 많다. 모임과 회식자리가 많고, 두 사람 이상 모이면 정신줄 놓을 때까지 술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며, 술 잘 먹는 것을 독립투사라도 되는 양 자랑거리로 삼고 있으니 이 나라는 술독에 빠져 있다. 그 속에서 쏟아내는 말의 성찬은 즐거울 순 있어도 결코 이성적이지 못하다. 시대에 대한 욕설과 비판과 저항의 육두문자가 남발하고 주변사람들을 마음까지 들었다 났다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술 마시는 취향에 따라 성격을 구분짓기도 한다. 전통주를 즐기는 사람은 까다롭고 고집이 세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가 많다는 것이다. 또 보드카를 좋아하는 사람은 단순하고 즉흥적이되 유머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 할 것이며, 와인을 즐기는 사람은 고품격의 스타일리시한 성품이라고 한다. 또 전형적인 서민의 술인 소주는 인정이 많고 바라는 꿈도 그리 크지 않은 서민 중의 서민을 대표하며,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교성이 강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한 게 특징이란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나카르시스는 "술 한 잔은 건강을 위해, 술 두 잔은 즐거움을 위해, 술 석 잔은 방종을 위해, 술 넉 잔은 광란을 위해"라며 애주가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베토벤의 사망원인이 매독이 아니고 지나친 음주에 위한 납중독이었을 것이라는 과학적인 견해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 시대에 술맛을 돋우기 위해 포도주를 납 병이나 납 항아리에 넣어 두고 마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백제의 의자왕은 술과 방탕으로 나라를 몰락의 길로 빠뜨렸고, 숙종 시절 술을 즐겼던 대제학 오도일은 임금이 친히 기우제를 지내는 자리에서 술에 취해 음복주를 엎지른 죄로 귀양살이 했다. 중국 은나라의 주왕은 술과 여자 때문에 몰락하는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술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개인의 생각을 혼미하게 하고 삶을 파괴시키며 나라 전체를 망국의 길로 빠트릴 수 있다.

누구는 술 권하는 사회라며 슬픈 자화상을 노래하는데, 차라리 자신을 보듬고 이웃을 보듬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베옷을 입고 옥을 품어라"는 노자의 말처럼 검박한 삶과 변하지 않는 생명의 근원을 만들면 좋겠다. 그리고 나보다 더 아프고, 더 궁핍하고, 더 춥고 배고픈 사람을 보듬으면 좋겠다. 그들과 함께 작지만 아름다운 문화파티를 열면 어떨까.

헤르만 헤세는 "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흘러가는 강물에게 물어라. 그러면 강물을 웃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시인은 "벼락과 해일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일지라도, 오라, 길이여, 그 길을 가마!"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 꺼져가는 화덕에 불을 피우자. 벌거벗은 나무들 속에는 수많은 잎눈과 꽃눈들이 숨어 있다. 북풍한설을 이겨내고 봄이 오면 그것들이 밖으로 밀려나와 초록의 빛을, 붉은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우리도 이 아픔을 딛고 일어나 더 멋진 신세계를 일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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