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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공예디자인벨트 총괄코디

여행에서 돌아오면 어김없이 여러 날을 앓아야 했다. 고단한 일정이나 시차적응의 문제가 아니다. 낯선 경험과 새로운 문화충격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기 때문이며, 급변하는 세상에 미처 대응하지 못해서 찾아오는 허탈감과 자괴감 때문이다. 중국 닝보시를 다녀와서도 한참동안 가슴이 답답했으며, 슬픔에 젖어 눈물까지 토해야 했다.

'2016 동아시아문화도시'인 중국 저장성의 닝보시 사람들은 한 마디로 시대를 읽고 시간을 다룰 줄 알았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부산떨지 않으면서도 역사와 생태와 문화와 문명과 삶의 조화를 통해 그들만의 길을 자박자박 걷고 있었다. 500년 전에 세워진 거대한 도서관 속에서, 폐공간의 문화재생을 통해서, 한 땀 한 땀 장인들의 열정을 통해서, 도심공원 속의 생기발랄한 사람들의 풍경 속에서, 그리고 삶에 스미는 시민들의 삶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 장서각(도서관)인 천일각(天一閣)박물관은 40여 동에 달하는 중국 전통의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조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고서(古書)만 30만여 권에 달하며 문화재급의 다양한 유물도 수백여 점에 달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의 도시, 책의 도시라는 그들의 자부심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불태우는 나라,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는데, 이들은 지식의 최전선이 신앙이자 삶의 일부였던 것이다.

필자가 머물렀던 초고층 호텔 바로 옆에는 폐교를 활용한 문화공간이 고즈넉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개발논리에 밀려 진작에 헐렸을 법도 한데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박물관, 미술관, 공연홀, 레스토랑, 쇼핑몰 등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단정한 정원,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밤이면 빛의 공간으로 더욱 빛나고 있었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닝보시내에는 오래된 가옥거리가 있다. 일명 '노가(老家)'라고 부르는데 2㎞에 달하는 거리에 송나라부터 명·청까지의 고택들이 도열해 있으며 건물마다 먹거리, 살거리, 놀거리로 가득했다. 다양한 생태적 환경이 방문객들을 유혹하고 곳곳에 쉼터와 공공미술을 통한 공간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니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잘 가꾼 공간 하나로 지역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며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또 어떤가. 도시 곳곳에 잘 정돈된 공원이 있고, 공원에는 어김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리네 같으면 노인들의 피난처였을 법도 한데 그곳의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동서고금의 악기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를 읊고, 먹향 가득한 풍경을 즐기며, 숲속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풍경 속에는 검박하되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자족감이 숨어 있었다. 그러면서 첨단산업과 세계를 항해하는 글로벌 시각은 방문객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나는 알았다. 도시는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꿈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그리하여 오랜 경험과 그 존재의 가치를 통해 가없이 아름다운 자신들의 멋스러움과 불멸의 향기를 만든다는 것을,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끝없는 성찰과 진한 사랑만이 도시를 도시답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은 공간적 상상력도 문화적 해석력도 없다. 존재의 가치를 찾는 것이 사치일 뿐이다. 당장의 이익에 눈 멀어 폐기의 문화만을 양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문화도시를 외치고 있으며 문화가 답이라고 웅변하고 있으니 온 가슴이 부르트고 멍들도록 스스로에게 채찍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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